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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크리스마스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by 방가房家 2023. 5. 29.

1897년 <썬>(The Sun)지 독자란에 버지니아(Virginia O'Hanlon Douglas)라는 이름의 소녀가 질문을 보낸다. “저는 여덟살이에요. 내 친구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해요. 아빠는 ‘썬 신문에 나오는 게 맞는 거야’라고 하고요. 뭐가 맞는 건지 말해주세요. 산타클로스는 있는 건가요?” 이 꼬마 독자에 대한 신문의 답변이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라는 제목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글이 되었다. 프란시스 처치(Francis P. Church)가 쓴 이 글은 매년 사람들이 찾는 글이 되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신문에 실렸다. (이 신문이 망한 1959년까지) 나중에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며(1974년, 1991년)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성탄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영어 참고서에 실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글의 문장은 참 깔끔하고 내용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글이다.


답변은 이렇게 시작된다. “버지니아야, 네 친구들이 틀린 거란다... 그 친구들은 자기들이 본 것 외에는 믿지 못하는 거란다.” 친구들이 현대의 회의주의에 물든 거라고 지적하면서, ‘보이는 것’말고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가 있음을, 그리고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영역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구도를 잡아놓고 본격적인 답변에 들어간다.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사랑, 자비, 헌신이 존재하듯이 그도 확실히 존재하는 거란다. 너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다움과 기쁨을 준다는 걸 잘 알거야.” 구도가 점점 잡혀간다.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대립 구도. 그런데 진정 가치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해 나간다. “아무도 산타클로스를 보지 못했지만, 산타 클로스가 없다는 증거도 없단다. 세계의 가장 진정한 것들(real thing)은 어른도 아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란다.” 결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이다. “믿음, 상상, 시, 사랑, 낭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차단하고 있는) 커튼을 열어젖히고 천상의 아름다움과 저너머의 영광을 보이게 해준단다. 이런 게 참된 것 아니겠니? 버지니아야, 그런 것 말고 이 세계에 참되고 변치않는 것은 없단다.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천만에. 하느님께 감사하자. 산타는 살아있고 언제까지나 살아있을테니까.”
분명 이 글은 단지 산타가 있다고 증명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산타를 빌미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긍정, 하느님의 영역이 있음을 인지시키는 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는 글이다. 어린이를 대하는 차분함으로, 그러면서도 격조있는 언어로 나직이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다. 기독교에 전제된 세계관을 확립시키는 것이 글의 목적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구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주 능청스러운 방식으로.
 
(이건 선교의 구도이다. 기독교인에게 선교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화의 초반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버지니아 친구들의 위치에 자신이 놓이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보이는 현실 세계만 바라보고, 자신의 지적 능력에만 의존해서 살아간다고 몰리면서 보통 기독교 선교의 대화는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세계관의 전제”이다. 다시 말해 자연/초자연의 세계관을 은근슬쩍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없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졸지에 자기의 한뼘 지성만 갖고 살아가는 현대의 회의주의자로 몰리기 마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선교 대화가 한국인의 맥락에서는 아직 어설픈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자연/초자연으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내면화시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선교 대화는 필연적으로 겉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100년 후 한국에서 있었던 한 대화를 생각한다. <순풍산부인과> 206회, 찬우가 의찬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의찬이와 함께 '산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하늘에 인사를 하고 나간 다음 장면에서, 의찬이와 오중 삼촌이 나눈 이야기이다.

오중: 의찬아,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좋아?
의찬: 삼촌, 이거 아빠가 준 거 다 알아.
오중: 뭐?
의찬: 나, 다섯살 때, 아빠가 선물주고 나가는 거 다 봤어.
오중: 그런데 왜 너 아빠한테 산타가 준 거처럼 했어?
의찬: 그래야 아빠가 신나하쟎아. 삼촌, 아빠한테 비밀이야.

의찬이의 탈신화화 능력은 발군이다.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들은 평균 저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이 든다. 산타 신화의 참/거짓의 논증(정배는 그 차원에 머물러있다)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가 사람들에게 기능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그 효용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어찌보면 “종교학적 시선”으로 의찬이는 산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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