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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

기독교의 대안적 할로윈, “trunk and treat”

by 방가房家 2023. 5. 29.

할로윈 데이가 조용히 지나갔다. 작년처럼 싸돌아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잠이나 잤다.
할로윈의 가장 대표적인 풍습은 "trick or treat"이다. 아이들이 동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trick or treat”라고 외치며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풍습이다. 어른들은 사탕과 초콜렛을 준비했다가 주는 것이 상례이다. 아무것도 안 주면 아이들은 집에가 계란을 던진다. 내가 사는 곳이야 인도 학생들이 주로 있는 아파트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을 턱이 없지만, 그래도 소심한 나는 마음을 좀 졸였다. 사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요구하는 초식은 “대접해줄래요(treat), 아니면 해코지 당할래요(trick)?”이다. 이것은 밥 달라고 돌아다니던 귀신들의 모습이 남은 흔적이다. 귀신도 밥을 먹어야 산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밥먹이는 것이 중시되지 않았던가.

이 귀신 시끄러운 날에 대항해서, 몇 년 전부터 미국 교회에서는 귀신의 날인 할로윈에 대해 대안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름하여 “trunk and treat".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강탈하는 풍습 대신 부모들이 자동차 트렁크에 할로윈 장식을 하고 사탕을 채워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공원이나 교회 주차장에 교회 사람들이 모여 건전하게 행사를 치루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안기고 집에 같이 돌아온다. 부모님이 다 해줄테니 밤개 이웃 괴롭히지 말고 1시간 내에 끝내자는 것. 원래 할로윈보다 속성으로, 건정하게,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지 않게 해치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코지 접속사 'or'는 베풂 접속사 'and'로 바뀌었다. 이교도 풍습을 순치시켜 크리스마스처럼 만들어버리는 모습이다.
“trunk and treat"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 한국 교회에서도 이교도 풍습으로부터 아이들을 방어하려는 대책을 모색하는 점이 눈에 띈다. 교회에서 내가 받은 팜플렛에는 교회의 할로윈 행사가 안내되어 있다.
“할렐루야 NIGHT”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야 물러가라
세상에서는 귀신들의 풍속을 쫒는 할로윈을 즐기지만 사랑하는 우리 OOO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 영혼들은 교회게 모여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섬기는 자세를 통해 재미있고 유익하고 귀한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마귀야 물러가라’하면서 물풍선을 던지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될래요’ 게임을 하고, 나무십자가 만들어 마귀 이기는 놀이를 하고, 열심히 기독교 상징을 모아서 게임을 만들었다. 그들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교훈을 얻기 위한 게임,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잘 못한다.
교회가 상징 싸움을 걸고 있다. 그 싸움을 판가름하는 것은 속성상 ‘옳은 게 우리 편’ 보다는 ‘재미있는 게 우리 편’이라는 논리일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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