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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기독교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호감

by 방가房家 2023. 5. 29.

인터넷 상의 대세는, 기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비호감이다.
네티즌을 어떻게 규정할 지, 현실과의 관계는 어떠한 지, 미리 논의해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일단 내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러하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회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는 것은 이것이 인터넷 사용 이후 달라진 정보 유통과 여론 형성 과정에 의해 새로 나타난 추세이며 앞으로의 종교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
십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전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평가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교인들끼리 알고 지나가는 일들이었다. 유명한 목사들이 조찬기도회를 통해 전두환 대통령을 지원해주거나, 감리교에서 신학대 총장을 개방적인 신학으로 가졌다는 이유로 파문시키는 엽기적인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주로 교계에서 아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다. 교회 밖으로 파장이 넘치는 일은 드물었다.
교회의 일이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2000년도 대형교회 담임목사 세습 문제 때가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언론에서 다루어지며 교회 밖의 사람들도 많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였다. 그 당시 장석만 선생님을 비롯한 종교학자들이 주장한 것은 종교 문제의 공론화였다. 우리사회에는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금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견제없는, 혹은 감시받지 않는 권력인 종교 집단의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었다. 종교는 공적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문제는 ‘우리’ 교회 내부의 일인데 왜 남들이 상관하냐는 볼멘 주장들이 있다. 거기엔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2.
이후 몇 년간, 우리사회에서 종교 공론화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다. 그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추이인데, 거기엔 종교 권력의 문제를 다룬 언론과 방송의 역할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오마이뉴스>는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종교 문제들을 공공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이전 같으면, 교회의 문제를 교회 성원이 제기했다가는 해당 공동체에서 축출되고 그걸로 끝이었을 문제들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의 상식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론화된 이슈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진 이슈들을 성실히 정리하는 작업도 해야겠지만 다음 기회에...) 꽃마을 오웅진 신부 문제도 대단한 이슈였고,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최근의 오마이뉴스 특종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동이 되어 연 안티 촛불집회와 구국기도회에 대한 기사였다.


이제는 종교에 대한 뉴스가 많아졌다. <오마이뉴스>외에도 <뉴스앤조이>를 통해서도 취재가 되고 있고 그 내용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공급되어 알려진다. 순복음 교회의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고 김선일 씨를 파송한 온누리 교회에서 무슨 성명을 발표했는지, 쓰나미 참사에 대해 김홍도 목사가 주일 예배 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이명박 장로가 어느 기도회에 가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였는지, 세세하게 취재되고 있으며 교회 다니지 않는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3.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바퀴 달린 십자가 퍼포먼스도 이런 달라진 환경이 아니면 알려지기 힘든 정보였다. 사학법에 반대하기 위해 영락교회에 모인 교회 관계자들이 벌인 시위는 상세히 보도되었고("사학법 못막은 우리는 죄인" - "아멘!"), 시위 현장에서 사용된 십자가에 대한 사진과 함께 날카로운 비평이 실렸다. (바퀴 달린 십자가, 예수님이 보셨다면... ) 인터넷을 통해 이 사진을 접한 사람들은 즉각 비판적인 반응을 통해 다시 기사의 자료를 제공한다. ("언제부터 십자가가 개그 소품이 됐나?" )

바퀴 달린 십자가 이 사진 한 장만으로 많은 것들이 전달된다.
이 종교 행사는 인터넷 매체 뿐 아니라 종이신문들에서도 보도되었다. 일반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종교 공론화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실감케 하는데, 그렇다고 같은 내용으로 보도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에는  “십자가 지고 사학법 투쟁” 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학법을 반대하는 교인들의 비장함만을 전하는, 자기 입장에 맞는 쪽으로 쓴 기사이다. 조선일보니까 내용은 그렇다 치자. 신문에 편집되어 실린 사진이 문제이다. 이 신문 기사 사진을 보니 조선일보에는 사진 아래 부분이 교묘하게 잘려나가 있다. 1-2cm 정도 교묘하게 잘라 문제의 “바퀴”가 보이지 않게 해 놓았다. 이 기사의 인터넷 판을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인터넷 판에 실린 사진에는 바퀴가 분명히 보이는데, 가판 편집에서는 바퀴만 안 보이게 처리되어 있다. 종이 공간이 부족해서 사진을 자른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신문이 맨날 보여주는 악의적인 편집의 일상적인 예의 하나일 뿐이다. 인터넷 이전에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가끔 있더라도 이처럼 안전하게 가공되어 전달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하다.


4.
늘어놓은 예들에서 느껴지겠지만, 하나같이 기독교에 불리한 쟁점들이다. 연이어 수많은 논쟁거리가 제시되는데,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기독교는 백전백패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기를 펴기 힘들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목사님들 계셔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지치는 일이다. 그들이 전부가 아니며 기독교 기본 정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옳은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궁색하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의 “다수”는 아직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또 그 중 많은 분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역사의 시련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조중동, 한나라당과 함께 수구 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 연합을 이루고 있는 한 비슷한 일들이 이어지게 되어 있다. 앞으로도 국가보안법 폐지하면 교회들이 궐기하게 되어있고,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드려고 목사들이 앞장설 때 비슷한 쟁점들이 나올 것이다.
보수적인 교회 신자들이 수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러나 숫자가 모든 게 아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함께 성장하면서 사회의 흐름을 주도하는 종교였다. 사회의 표준을 제시해주는 위치에 가까이 있는 종교였다. 이제 그 주도권을 상실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수적 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성과 배치된다고 인식되는 것이 문제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 많지만 지금 사회를 이끄는 세력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기독교는 수적 다수도 아니다. 기껏해야 (개신교, 천주교를 합쳤을 때) 우리나라 인구의 사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서울에서 자란 환경 탓도 있지만, 왠지 교회를 가는 게 모범적인 거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애들 70-80%는 교회에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비율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감소하고, 대학교 입학과 함께 극적으로 줄어들지만) 게을러서 교회를 다니지 않은 나는, 교회 안 가는 게 왠지 반항적이라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요즘 애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인터넷 하다가, “뭐, 목사가 단군 목 땄다고?”하고 흥분해 게시판에 몰려가서 “개독, 개독” 실컷 욕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따 당하지 않을지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뭐, 요즘 애들 분위기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독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교회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 위기로 인해 기독교의 모습이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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