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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죽음의례

추도 예배, 한국 개신교의 의례

by 방가房家 2023. 5. 29.

추도 예배는 한국 교회에만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면 잘 믿지 않는다. 하기사 교회사 공부하시는 분들께 그 얘기를 했는데 펄쩍 뛰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할 정도인데, 일반 교인들이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의례체계는 관혼상(冠婚喪), 거기까지이다. 천국에 가면 끝이니까. 죽은 조상을 기리는 제(祭)에 해당하는 의례는 서양 교회에는 (가톨릭 교회의 몇몇 의례를 제외하고는, 예를 들어 모든 성인 축일)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추도 예배는 제사에 반대되는 행위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이해한다. 둘은 연속선상에 있는 의례이다. 제사가 있던 자리에 추도 예배가 생겨났으며, 제사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추도 예배가 생겨난 것은, 장례식장에서 개신교인들이 국화꽃을 꽂는 행위를 하게 된 계기와 비슷하다. 조문을 하러 가서 남들은 절하는데, 성서에서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상한 이유로 혼자 꼿꼿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을 안 하는 대신에 “무언가”를 해야했기에 국화꽃을 갖다놓게 된 것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서 요구되는 것을 기독교의 방식을 통해 해결한 것이다. 추도 예배도 그러하다. 명절이라고, 기일이라고 모였는데 뻘쭘하게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인 김에 음식도 하고, 기독교인이니 기도도 드리다보니 자연스레 의례가 형성되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그 무엇이 개신교 의례로 표현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적인 의례이다.
이전에 개신교 의례에 대한 논문을 쓸 때, 난 부끄럽게도 추도 예배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게 언제 시작된 건지 알지 못했고, 교회지도자의 명령이 아니라 신자 집단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개신교 예식서에 추가되었다는 사실만 갖고 엉뚱한 이야기만 논문에 채워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 즈음에 읽던 논문에서 추도 예배에 대한 자료를 드디어 찾았다. 개신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이 의례가 한국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옥성득의 논문(The Indigenization of Christianity in Korea, p.347)에서 인용한 것으로, 원산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 스왈른이 보낸 서한의 내용이다.

오씨는 제사(sacrifice)가 치러져야 할 밤중에 기독교인 둘과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제사가 마치는 시간인 자정에 제사를 지내는 대신에 위패와 제기(fetish)와 그 외 제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교(heathenism)의 우상들을 이렇게 빨리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하기도 전에 축복을 내려주시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우리는 가서 이교도 의식 대신에 그에게 하느님을 예배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성서를 읽고 기도드렸습니다.
(엘린우드(Ellinwood)에게 보내는 스왈른의 서한, July 1896, CP)

이것은 언뜻 개신교가 이교 의례 제사를 정복한 기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제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제사를 제거한 그 자리에 나타난 좀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사에 사용된 물건을 파괴한 것이 핵심이 아니라 제사 “대신에” 무언가 의례가 요구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다음 자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1897)에 정동감리교회 교인인 이무영이 추도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가 불신자들처럼 음식을 나누고 제사를 드릴 수는 없다. 그러나 효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첫 번째 기일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회중 신문,” 조선그리스도인 회보, 8월 11일, 1897)

한국인이기에 “사람으로서” 기일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기일에 예배를 드렸고, 지금은 하나의 개신교 의례로 자리잡았다. 명절이면 개신교 가족들도 다들 한 자리에 모이고, 음식도 열심히 장만한다. 제사 음식과 약간 다르고 절을 하지 않을 뿐, 비슷하게 지낸다. 어떤 개신교인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게 아니냐고.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그 말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우상은 무슨, 누가 위패를 신격으로 생각하고 절을 올렸겠는가. 그저 조상들의 상징물에 감사 인사를 올렸을 뿐인데. 조상 귀신이 진짜 들어와 밥을 먹었는지가 아니라, 친척들이 모여 그간 잘 살았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추도예배는 기독교가 한국 종교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례이다. 찾아보니 이 점을 명확히 이야기한 이가 영국학자 그레이슨 교수이다. 그는 어느 한국학자보다도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나로서도 배울 것이 많은 학자이다. 그가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레이슨 교수…추도예배의 기원을 찾아서 (뉴스앤조이가 링크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이라 전문을 블로그에 퍼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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