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배움320

카사 그란데 유적 ‘큰 집’이라는 뜻의 카사 그란데(Casa Grande Ruin National Monument)는 1300년대에 호호캄 인디언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4층짜리 거대한 건물이다. 애리조나 피닉스 남쪽, 투산 가는 길 중간 쯤, 쿨리지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북미원주민 유적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일 것이다. 이곳은 1892년에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미국 정부가 처음 지정한 보호 유적이다. 지금은 커다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원래는 대규모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많은 양의 집터가 주변에 남아있어 당시의 마을의 규모와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카사 그란데는 황야 복판에 서있지만, 이 마을에 사람들이 살았을 때에는 강물이 이 근처를 지났다. 호호캄 사람.. 2023. 5. 24.
몬테주마 못, 주거지 / 버드 요새 애리조나 중부, 피닉스와 플래그스탭을 잇는 고속도로 주변, 세도나에 조금 못 미친 지역에 몇 곳 한적하고 아름다운 유적지들이 흩어져 있다. 캠프 버드(Camp Verde)라는 작은 마을과 시나구아 인디언 유적지인 몬테주마 못[淵]과 주거지가 그들이다. 백인들의 근대와 북미 원주민의 중세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공존하는 곳이다. 1. 버드 요새 유적지 (Fort Verde State Historical Park) 북미 원주민 부족 중에 미국에 최후의 항전을 벌인 이들이 아파치족이다. 용맹스러운 지도자 제로니모(Geronimo)를 중심으로 벌인 아파치족의 투쟁은 꽤 유명하다. 제로니모를 소재로 한 영화가 최근에 제적되기도 했다. 실제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미국애들이 높은 데서 떨어질 때 “Geronimo”.. 2023. 5. 24.
후기성도교회 애리조나 메사 성전 근처에 있는 몰몬교 애리조나 메사 성전(The Mesa Arizona Temple)을 방문했다. 이곳은 이 근처에서 명소이다. 12월이 되면 화려한 등불 장식을 하고 저녁 7시마다 무료 콘서트를 열어주기 때문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내가 찾아갔던 것은 낮이지만 밤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찾아 같이 올린다.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의 본 명칭이다.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후기성도라는 번역을 사용하고 있다. 편의상 몰몬교로 부른다. 정식명칭이 너무 길고 어느 것이 올바른 줄임말인지 몰라 편의상 애칭을 그대로 사용한다.]에서 성전(temple)은 그냥 교회 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침례 의식을 행할 수 있는, 매우 중심적인 장소이다. 회중들이 .. 2023. 5. 24.
피닉스 민속촌 미국 서남쪽 구석의 사막지대인 애리조나는 가장 뒤늦게 미국 땅이 된 곳 중 하나라서, 미국 사람들 들어와 근대적인 삶을 구가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곳이다. 대략 19세기 말부터 미국 사람이 들어와 살았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문호를 열고 근대화를 시작한 시점과 얼추 비슷해 약간이나마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애리조나가 미국 땅이 된 것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겨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지역을 획득한 1850년이다. 1863년에 애리조나라는 이름의 준주(準州, territory)로 지정된다. 그 이후 캘리포니아로 가는 66번 길(Route 66)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와 여기저기 금광을 찾아 정착하면서 조그만 도시들이 생겨난다. 피닉스 지역에 마을이 생기고 애리조나의 중심지로 지.. 2023. 5. 24.
바하이교 본부, 템피 지역 (2005.8.14) 내가 지금 임시로 머무르는 곳 바로 앞에는 바하이교 본부(혹은 정보 센터)가 하나 있다. 바하이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란에서 시작된, 세계 종교의 가르침을 아우르려는 평화주의적인 종교운동이고, 그 조직이 정부 단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 정도. 우리나라에도 바하이 본부가 후암동에 있다. 체류 중에 한 번 가보려 했는데, 게으름 때문에 못 갔다. 그 좋아하는 야구도 한 판 안보고 온 정도이니, 그 게으름이란. 애리조나의 종교 지도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이고, 그 시작으로 피닉스와 템피 지역의 종교지도부터 틈틈이 해 놓을까 한다. 지도라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주변의 종교 시설들 사진 찍어 놓고 블로그에 올려놓는 일 정도. 2023. 5. 23.
한국SGI 광고 지하철역 서울역에서 본 광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SGI가 종교 단체라는 것도 잘 모르기 때문에 무슨 기업체의 이미지 광고인 줄 알고 지나가는 사람도 꽤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의아할 정도로 영문 이니셜을 많이 사용한다. 영어 약자 작명은 SK에서 시작되어, 어느 샌가 KTF나 KTX처럼 한국이 들어가는 회사 이름은 모조리 영어가 되어있고, 올해 보니 구씨와 허씨가 갈라지며 LG가 GS로 분할되어 있었다. 나는 미국 기업에서도 이렇게 약자가 쓰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해, 과연 이러한 작명이 국제적인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들 이름은 의미가 소통되지 않는 언어임에는 틀림없다. 소통되지 않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주술적인 언어나 옛 투의 성경 언어에서 볼 수 있듯이,.. 2023. 5. 23.
못생긴 부처님을 찾아서 불현듯 생각이 나서 옛 글을 뒤져보았다. 안성 지방 답사를 준비하면서 옛날(학부 시절이니까 7-8년은 되었겠다)에 쓴 글이다. "못생긴 부처님을 찾아서"라... 제목은 그럴듯 하다. 모난 돌처럼 튀는 표현들, 소화되지 않은 용어와 인용문들, 그리고 내 글의 특징인 터무니 없이 과감한 가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겠으나 눈을 질끈 감고 올려버린다. 어쨌거나 나는 이 글을 준비하면서 “종교와 아름다움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을 던져 보았고, 아직도 가끔 그 질문을 떠올려보곤 한다. 나에게 너무 벅찬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답사 자료집의 서문격의 글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 짧막하게 이야기하자면, 안성 지방은 이상하게도 미륵불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 2023. 5. 23.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 (2004.7.4) 합정역에서 내려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있다. 대표적인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이 많이 묻혀 있는 곳이다. 개신교 초기 기록들을 살펴보면 선교사들이 의외로 많이 죽어나갔다. 아펜젤러처럼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지만,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허다하다. 한국이라는 오지의 “풍토병”에 선교사들이 시달렸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병사한 선교사도 많고 갓 태어난 선교사 자제가 죽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선교 초기부터 양화진 언덕에 선교사들이 하나둘 묻히기 시작하여 외국인 묘지가 형성되었다. 외국인 묘지인만큼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묘역이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된 모습이었는데, 그 정리는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여기 묻힌 .. 2023. 5. 23.
장승으로 표현된 신격들 (2004.6.26) 충청도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장승들이 무수히 꽂혀 있는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다양한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표현들이 장승을 통해서 시도되어 있었다. 시대의 심성을 담아냄으로써 장승이라는 표현양식이 “살아있는” 것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마당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다양한 장승들을 감상하였는데, 하필 내 카메라에 담긴 것은 불교와 기독교의 신격들을 담고 있는 장승들이었다. 관음보살을 표현한 장승들이다. 불교와 장승의 만남 자체는 낯설지 않다. 장승의 원래 역할은 마을지킴이였지만, 적지 않은 절에서 장승은 절에 가는 길을 지켜주는 역할도 하였다. 일주문보다도 바깥에, 절의 영역 바깥에서, 사천왕상과도 같은 정규 직원은 아니었지만 친근한 미소로 절에 가는 길을 인도하.. 2023. 5. 23.
천도교 교당 (2004.6.1) 낙원상가와 안국역 사이, 운현궁 맞은편에 유서 깊은 천도교 교당이 있다. 지금은 초라하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지만, 일제 시대 때 이 건물은 명동 성당, 총독부 건물과 더불어 서울의 3대 건물이었다. 교당 건물 앞에 기껏해야 공터라고 불러줄만한 약간의 공간이 있다. 정말 믿기 힘든데, 이 공간은 당시 명동성당 앞과 함께 중대한 사회적인 사안들이 논의되던 “광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시청 앞 광장이 하는 역할, 즉 여론을 모으고 행동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일제 시대에는 이 좁은 공터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3-1 운동 때 독립선언문 배포처라는 작은 기념비가 이 공터 앞에 서 있다. 아무리 역사적 상상력을 발동해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커다란 천도.. 2023. 5. 23.
Danforth Chapel Danforth Chapel: 애리조나 주립대학(ASU) 한복판, 중앙도서관과 학생 회관 사이의 광장에 작은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다. 건립 비용을 기부한 기업가의 이름을 따 “Danforth Chapel"이라고 불리는 이 예배당은 1948년에 지어졌다. 이 교회당 지붕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지 않다. 거기엔 약간의 사연이 있다. 처음 이 교회당이 지어질 때에는 십자가가 달려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학교 관계자들은 공립학교의 특성상 이 계획에 마뜩치 않아 했지만,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개관식이 있기 며칠 전, 한 학교 관계자가 톱으로 그 나무 십자가를 베어 버린다.(!) 5년 뒤인 1953년에 십자가는 복구된다. 37년간 자리를 지키던 그 십자가는, 그러나, 1990년에 벼락을 맞아 날아.. 2023. 5. 23.
책꽂이 한 칸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의 꿈은 꼭 필요한 내용의 글만 적게 쓰는 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도서관을 전전하다가 제목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이런저런 논문을 엮어 만든,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책들에 물렸던 터였다. 보석 같은 책 몇 권만 남긴 학자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책으로 종이 낭비를 하는 학자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2021년 나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재작년부터 나는 학술적 글을 생산하는 공장 안에 들어와 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지금 우리 학계는 논문의 생산을 강요하는 체제이다. 학자는 논문의 생산량으로 평가받는다. 나 역시 연간 논문 편수를 계약 조건으로 하는 연구직에 있다 보니, 내 학문적 관심은 오직 적당한 크기로 잘라 논문을 만들 재료를 찾는 일.. 2023. 5. 22.
징조, 신호, 예감 어느 선생님께서는 내가 전에 큰 사고를 당했을 때의 정황을 가끔 물어보신다. 그런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삶의 보호막이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자신의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느냐고 물어보신다. 그런 나의 무감각은 큰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하시면서. 처음에는 무슨 점쟁이같은 말씀이냐고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큰 사건이 닥칠 때 내게 신호를 보내오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이 온다. 뚜렷한 근거를 찾은 것은 아니나 삶에는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징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무감각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감각을 계발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발터 벤야민은 의 “두 번째 .. 2023. 5. 22.
자랑 ...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기독교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는 房家는 번역원고의 앞부분을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 교회 관련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적절한 기독교 교회 용어 등을 알려주어 큰 도움을 주었다... (이종경, “옮긴이 후기,” 피터 브라운, (새물결, 2004), 512-513쪽.) 올해 귀국해서 처음 책방에 들렀을 때, 이 출판되어 나와있는게 첫 눈에 띄었다. 작년 12월에 출판되었으니 아직 따끈따끈한 책이다.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책을 보니 마치 선물을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이 나왔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몇 년 전에 좀 도와드린답시고 들쑤셔놓고 간 일이었.. 2023. 5. 22.
이름 없는 대상 10·29 참사 이후 정부가 주도한 추모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대상을 추모할 수 있느냐이다. 직감적으로도 구체적인지 않은 숫자만 앞에 놓인, 그것도 사망자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 대답은 명확하다. 위패 없는 제사는 불가능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제대로 된 의례적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진오귀굿 이야기에서 이름 없음의 의미(혹은 무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아래는 김동규 선생의 발표에서 소개받은 사례를 약간 수정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사례 속의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여인의 존재이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그는 메인 무대인 ‘본과장’에서 달래질 수 없었고, ‘뒷전’에서 임시적으로.. 202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