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배움307 다문화사회 종교시설: 불교(2) (2012.10.29) 지난 달에 갑자기 참여하게 된 작업이 다문화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덕분에 관련된 종교시설 현장을 직접 누비고 다닐 기회가 있었다.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보고서로 제출한 글을 아래 덧붙여 놓는다. 딱딱하고 특정 목적을 위한 글이라 제대로 된 글은 아니지만 따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상부(?)에 제출한 내용 그대로 참고삼아 실어놓는다. 아래는 부천 석왕사에서 찍은 사진들 부천 석왕사 ㅇ현황 석왕사는 부천 지역의 대표적인 조계종 사찰로 장례식장, 룸비니 어린이집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시설과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석왕사에서는 불교.. 2023. 5. 25. 다문화사회 종교시설: 불교(1) (2012.10.29) 지난 달에 갑자기 참여하게 된 작업이 다문화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덕분에 관련된 종교시설 현장을 직접 누비고 다닐 기회가 있었다.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보고서로 제출한 글을 아래 덧붙여 놓는다. 딱딱하고 특정 목적을 위한 글이라 생각대로 쓴 것은 아니지만 따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상부(?)에 제출한 내용 그대로 참고삼아 실어놓는다. 아래는 관악구 명락사에서 찍은 사진들 명락사 명락빌리지 ㅇ현황 명락빌리지는 천태종이 서울 지역에서 운영하는 결혼이주민 여성의 쉼터이다. 이곳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이혼 후 갈 곳이 없는 이주민 여성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취업을 위한 도움을 제공한다. 명락빌리지는 명락사에서 약간 떨어진 별도의 건물을 임대해 .. 2023. 5. 25.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서 생산되는 신앙 더운 여름날 찾아갔던 용인의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눈길을 끄는 전시물들이 많지는 않았다. 순교자에 관련된 유물들이 적어서 그랬는지 개신교사에 관련된 사진이나 전시물들로 공간을 많이 채웠는데, 오히려 그쪽에 더 눈이 갈 정도였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기념관은 1989년에 개관되었다. 상당히 놀랐다. 내가 실제 이곳에서 가장 많이 받은 느낌은 급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20년이 넘은 곳이었다니! 꽤 오래되었음에도 급조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컨텐츠의 부족이 이 공간의 고유한 속성에 가까움을 암시한다. ‘비어있음’을 이 공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를 잘 보여주는 전시물은 내가 무심코 찍어두었던 거울이리라. 거울 아래에는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인상적인 글귀가 쓰.. 2023. 5. 24. 토제인면상이 말해주는 종교 휴가지 양양에서 우연히 들른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종교 관련 유물도 하나쯤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정말로 딱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하나 있는 것이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었고, 딴 것에는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그 하나만 유심히 쳐다보고 나왔다. 그 유물은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土製人面像)이었다. 전시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진이 흐릿하기 때문에 모조품 사진을 제시한다. 이 사진은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냉장고 자석이다. 내 방 냉장고에 부착된 모습. 사람 얼굴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표제어가 없다면 사람 얼굴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찰흙 판에 손가락으로 구멍 다섯 개를 눌러 놓은 것이 다다. 입은 그럴 듯하지만 구멍 네 개를 눈이라고 어떻게 봐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공식적.. 2023. 5. 24. 이스라엘수도원 서울 집회소 자리(상도동) 교세는 거의 없었지만 한국 기독교계 신종교사 흐름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녔던 김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 해방 직후에 이스라엘수도원은 경기도 파주 파평면에 본부를 두었지만 서울 집회소는 상도동에 있었다. 내 주거지와 가까운 곳이라 구체적인 주소가 어디인지 찾아보았는데, 매우 불확실한 자료(인터넷 게시판의 찌라시성 글)에 따르면 그곳은 “상도동 494-1번지”였다. 확인이 필요하고 현재 주소와 일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보를 따른다면 이곳은 현재 숭실대입구역 근처 우리은행 뒤의 건물(금정빌딩)이 있는 곳이다. 맨날 지나다니는 곳이다. 당장 나가 사진을 찍어 왔다. 1. 김백문 이스라엘수도원의 위상을 간단히 말하면, 김성도(새주파, 성주교회), 백남주, 김남조, 예수교회 그룹(이용도와 관련된) 등 신유 계.. 2023. 5. 24. 사육신묘, 신화와 역사 종교학에서는 가끔 신화와 역사의 관계를 논하기도 한다. 얼핏 보기에 이 둘은 대립되는 것 같다. 신화는 허구이고 역사는 진실이라는 식으로.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금세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는 얼마나 많이 믿음에 근거하고 있으며, 신화는 또한 생각보다 많은 현실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가. 이 말을 역사가 허구라는 뜻으로 오해말기를 바란다.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요소가 개입한다는 말이다. 역사와 신화의 대립이 그리 유용하지 않은 사례를 우리 동네에서 만나게 된다.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사육신묘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된 70여 명 중 젊은 육신의 묘역이다.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2023. 5. 24. 성공회 용인교회(천리) (2011.2.12) 용인시의 기독교사를 증언하는 가장 오래 된 유적 중 하나가 성공회 성당 건물이다. 성공회 교세가 그리 강하지 않은(않아 보이는) 이 지역에서는 약간 의외인데, 어찌 되었던 옛 건물이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천리에 보존되어 있어 찾아보았다. 기사 “성공회 용인교회 용인 상륙 100년, 어제와 오늘”(2007년 5월 23일)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908년경이었다. 천리교회(현재 이름은 성공회 용인교회)는 수원교회의 선교교회로 설립된 것으로 2대 주교 터너(단아덕)의 활동과 관련된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교회가 이 자리에 있던 한천서원(1865년에 대원군에 의해 철폐)의 매입을 통해 세워졌다는 것. 유교 사당 및 교육기관.. 2023. 5. 24. 서양인이 구경한 용미리 석불 19세기말 20세기초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그들이 상상했던 ‘우상’을 보기 위해 많이 갔던 곳으로 보도각 백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많지는 않지만 서양인들이 경기도 북부를 지나다가 파주의 용미리 석불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눈에 띈다. 이 거대한 석불이야말로 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장관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우선 최근에 눈에 띈 것은 두 개의 자료이다. 인용하기에 앞서 내가 본 용미리 석불입상(파주시 광탄면)의 모습. 하나는 선교사 게일의 1895년(글 쓴 시기는 1894년)의 언급. 고려조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전승을 소개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사실이 아니다. 고려 때의 조성 설화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울에서 60리.. 2023. 5. 24. 서양인들이 시각적으로 재현한 원각사지 논문을 쓰다보니 탑골공원에 가고 싶어졌다. 무심하게만 지나치던 곳인데, 그 곳이 내 논문에 나타날 줄이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별 탈이야 있겠느냐마는, 쉽게 볼 수 있는 곳을 상상하면서 쓴다는 게 가려워서 주말에 잠시 탑골공원에 들러보았다. 논문에 들어간 건조한 글에 그날 찍은 사진을 보태어 구성한 포스트. 서양인들이 서울에서 종교, 그 중에서도 불교의 흔적을 볼 수 있게끔 해주었던 예외적인 유물로는 도성 내에 있었던 원각사지 석탑과 그 옆의 비문이 있었다. [원각사(圓覺寺)는 고려 때부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던 사찰로, 조선 태조 때 조계종의 본사가 되었고, 1464년(세조 10)에 세조에 의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 2023. 5. 24. 기도원의 준수사항 10년_7월_파주_오산리 평범해 보이는 표지판이지만, 여기에는 기도원이 그동안 감내한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있다. 초창기의 종교적 감성(빅터 터너는 이것을 ‘코뮤니타스’라고 부른다)으로 이루어진 종교 공동체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만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제도화와 규율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 마라’는 명령문이 등장하기까지는 그동안 저질러진 ‘함’에 의한 고통의 축적이 있었을 터이다. “시설물을 아껴 사용하라”는 당부 이면에는 부주의에 의해 파손된 시설물을 쓰다듬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소지품 관리”의 당부 이면에는 숱한 도난이 있었을 것이며, 하다못해 “주차와 차량 관리”에 대한 당부에도 무분별한 주차와 차량 파손의 경험이 있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더 중요한 부분은 “반드시.. 2023. 5. 24. 유교 테마파크를 다녀오다 소수서원을 포함한 ‘순흥문화 유적권’을 둘러보고 나서 남긴 기록. 짧은 분량으로 글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루 일정을 압축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에, 다소 불친절한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이라는 짧은 지식만을 가진 채 소수서원을 방문하였다. 퇴계 이황의 제자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만난 것은 뜻밖에도 소수서원이 숙수사(宿水寺) 터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리는 당간지주였다. 서원 경내에서도 뜻밖의 유물들을 만났는데, 그것은 제관들이 손을 씻는 그릇이 놓였던 관세대(盥洗臺), 해시계를 놓았던 일영대(日影臺) 등이었다. 이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여느 서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2023. 5. 24. 소수서원에서 곁눈질한 것들 이제야 처음으로 찾아간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그 명성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알고 있던 것보다는 깊은 내력을 지닌 곳이었다. 서원을 들어서면서 듣는 안내는 이황의 제자 4천명이 배출되었다느니 하는, 유교의 전통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띄는 것은 정통성의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서원에 들어서기 전의 계곡에는 경자(敬字)바위가 있다.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했다가 죽임을 당한 원혼들의 울음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경’(敬)자 위에 붉은 칠을 하여 제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분명 선비에게는 공부하고 수양하는 것 외에도 지역공동체로부터 요구받는 임무들이 있기 마련이다. 원혼을 달래는 역할, 혹은 축귀의 역할도 그 하나였으리라. 서원 입구에는 예기치 않게 당간지주와 만난다. .. 2023. 5. 24. 조선신궁 있던 곳 서울역 건너편 힐튼 호텔에서 시작해서 길 건너 계단을 이용해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린이 놀이터와 백범광장, 안중근기념관, 교육과학연구원(옛 어린이회관),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남산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영역은 일제시대 건립한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자리하던 영역이다. 지금 이곳에는 일제 시설에 대한 어떠한 표시도 남겨놓지 않고 여러 동상들과 비문들을 비롯한 국가의 기호들이 과잉으로 들어앉아 있다. 다만 계단의 배치와 지형이 주는 느낌을 통해서 일제가 그들의 성소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아 마련한 공간이라는 어렴풋한 느낌만을 받을 뿐이다.김대호의 논문에서 얻은 자료에 따르면 일제 당시 서울 중심부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 현재 지도에서 조선신궁 자리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신사의 일반적인 구조를 잘.. 2023. 5. 24. 용미리 석불입상 ### 광화문에서 703번을 타면 벽제, 고양을 지나 ‘용암사입구’ 정류장에 갈 수 있다. 용암사 대웅전 뒤에는 거대한 한 쌍의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용미리 석불입상이다. 고려시대의 지방 양식이 완연한 이 분들을 서울 근교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반갑다. (다른 사진들을 보려면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할 것.) ‘미륵불’이라고 주로 불리는 이 석불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의 조성 설화가 전한다.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선종(宣宗, 재위 1084∼1094)은 뒤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후궁인 원신공주(元信公主)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그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겨라. 그러면 소원을 들.. 2023. 5. 24. 월악산 덕주사 근방 ## 나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종교학도인지라 제단에 무엇이 올려지는지를 문득문득 보게 된다. 아직 철저하게 관찰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조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제주도에서 굿당을 갔을 때,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가 기억이 난다. 대부분 막걸리와 제주도 소주의 빈 병들이었는데, 제주도 신들이 어떤 술을 잡숫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돌아온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월악산 송계 계곡에 있는 충주 덕주사에서 찍은 산신각 모습이다. 돌틈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지은 산신각이 인상적이었고, 산신을 위해 모신 제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찍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것이 인상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소주를 담기 위해 찍은 사진일텐데, 그것은 아마 충청도 소주였.. 2023. 5. 24. 이전 1 2 3 4 5 6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