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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소수서원에서 곁눈질한 것들

by 방가房家 2023. 5. 24.

이제야 처음으로 찾아간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그 명성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알고 있던 것보다는 깊은 내력을 지닌 곳이었다. 서원을 들어서면서 듣는 안내는 이황의 제자 4천명이 배출되었다느니 하는, 유교의 전통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띄는 것은 정통성의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서원에 들어서기 전의 계곡에는 경자(敬字)바위가 있다.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했다가 죽임을 당한 원혼들의 울음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경’(敬)자 위에 붉은 칠을 하여 제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분명 선비에게는 공부하고 수양하는 것 외에도 지역공동체로부터 요구받는 임무들이 있기 마련이다. 원혼을 달래는 역할, 혹은 축귀의 역할도 그 하나였으리라.

서원 입구에는 예기치 않게 당간지주와 만난다. 안내판을 보니 숙수사의 당간지주이다. 소수서원은 숙수사 절터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것도 서원이 들어선 것은 폐사된지 그리 오래지 않아 서였다. 다른 종교들이 성지를 공유하는 것은 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느낌을 준다. 민간신앙의 성소들에 절들이 들어섰던 것처럼, 절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최초의 사액서원이 들어선 것이 공교롭다.


절의 흔적은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 서원 경내에는 주춧돌이며 흩어져 있는 절터의 석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석재들이 서원의 선비들에 의해 쓰임새를 다시 얻었다는 것.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이 석물들에 대한 해설에서 절에서 유래한 기원은 감추어져 있고 그냥 유교 선비들의 창안물인 양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

관세대(盥洗臺)라는 이름이 붙은 돌. 서원의 제향공간인 관성공묘 입구에 있는 돌로 “서원 경내에서 제향 때 제관들이 손을 씻던 자리”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바로 옆에 널린 석재들과 함께 절 건물의 일부를 이루던 석재임이 분명해 보인다.

해시계를 놓았던 돌받침인 일영대 역시 절의 석재를 이용한 것이다.

돌로 된 이러한 물건들은 다른 서원에서는 보지 못하던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이다. 이것은 버려져 있던 석재들을 재활용하여 쓰임새를 불어넣은 선비들의 지혜에 의해 탄생한 것들이다. 이 지혜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돌들의 불교적 기원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지금 해설문들에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서원에서 볼 것은 안 보고 유교와 다른 문화의 만남에만 곁눈질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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