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찾아갔던 용인의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눈길을 끄는 전시물들이 많지는 않았다. 순교자에 관련된 유물들이 적어서 그랬는지 개신교사에 관련된 사진이나 전시물들로 공간을 많이 채웠는데, 오히려 그쪽에 더 눈이 갈 정도였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기념관은 1989년에 개관되었다. 상당히 놀랐다. 내가 실제 이곳에서 가장 많이 받은 느낌은 급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20년이 넘은 곳이었다니! 꽤 오래되었음에도 급조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컨텐츠의 부족이 이 공간의 고유한 속성에 가까움을 암시한다. ‘비어있음’을 이 공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를 잘 보여주는 전시물은 내가 무심코 찍어두었던 거울이리라.
거울 아래에는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인상적인 글귀가 쓰여 있다. 거울의 속성은 비어있음이기에 관람자의 모습을 담아낸다. 공교롭게도 사진을 찍는 내 모습도 거울에 담겼고, ‘순교자’라는 글자와 나란히 배치되었다. 이곳은 무언가를 담고 있는 곳이 아니라 생산하는 곳이다. 이곳이 ‘박물관’이 아니라 ‘기념관’인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순교자 정신(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생산이 이곳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이 모든 내용들이 압축된 공간이다. 1980년대의 개신교회의 순교자 열풍의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 기념관이 1989년에 건립되었다. 기념관의 주된 내용은 순교자들의 목록과 사진들인데, 그 대부분이 한국전쟁 전후의 희생자들이다. 그 죽음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증언하고 지키기 위한 것인데, 여기서 그 종교의 의미를 채우는 것은 ‘반공’이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기독교를 지키는 것으로 명확히 규정되고 있다. 천주교 순교자의 경우와 의미상 비슷한 점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또한 개신교 순교자 담론이 여전한 힘을 갖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개신교 성지순례 여행 프로그램에 이 기념관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에는 사실 별 느낌이 없었는데, 실제로 교회 버스에 실려 들어오는 인파를 보니 이곳이 명목상의 코스 이상의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