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 양양에서 우연히 들른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종교 관련 유물도 하나쯤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정말로 딱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하나 있는 것이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었고, 딴 것에는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그 하나만 유심히 쳐다보고 나왔다.
그 유물은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土製人面像)이었다. 전시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진이 흐릿하기 때문에 모조품 사진을 제시한다. 이 사진은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냉장고 자석이다. 내 방 냉장고에 부착된 모습.
사람 얼굴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표제어가 없다면 사람 얼굴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찰흙 판에 손가락으로 구멍 다섯 개를 눌러 놓은 것이 다다. 입은 그럴 듯하지만 구멍 네 개를 눈이라고 어떻게 봐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공식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土製人面像)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얼굴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 와 세로의 폭이 각각 4.3cm와 5cm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神像)의 하나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전시된 형태나 홍보 형태를 보아 이 유물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다. 그 중요성은 나중에 검색한 신문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양양오산리 '토제인면상' 30년만에 귀향) 이것을 상품화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고, 심지어는 캐릭터화해서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박물관 홍보영상에서 이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한다.(토이니라고 불렀던 것 같다) 캐릭터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손가락으로 찍찍 눌러 만든 것 같은 이 조형물이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인 유물이냐는 것이다. 그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 인물상은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유물 옆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국 다른 지역과 동아시아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들의 사례들을 친절하게 그려놓았다. 우선 이것이 얼굴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풍요를 위한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상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 맞는다면, 또한 가장 오래된 종교유물 가운데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풍요를 비는 상징물인지 확신은 아직까지 갖고 있지 못하다.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의 해석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상징의 해석은 추정과 상상의 영역에 가깝다. 얼굴상을 갖고 어떠한 종교 행위를 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니 의미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상상의 근거는 다른 지역의 출토품들과의 비교 말고는 뾰쪽한 것이 없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정에서 종교에 대한 중요한 관점 하나를 얻게 된다. 그것은 인간에게 종교가 왜 필요한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이다. 선사시대 인간,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는 그들이 종교를 갖는다면, 그것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해달라는 소망 때문이라는 것이라는 가정이다. 나는 이 가정을 거부할 수 없다. 종교는 삶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비록 지금은 종교가 정신적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물질적 바람이 기복주의로, 종교 본연에서 탈선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는 시대이지만, 그것이 종교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고 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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