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1)
낙원상가와 안국역 사이, 운현궁 맞은편에 유서 깊은 천도교 교당이 있다. 지금은 초라하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지만, 일제 시대 때 이 건물은 명동 성당, 총독부 건물과 더불어 서울의 3대 건물이었다.
교당 건물 앞에 기껏해야 공터라고 불러줄만한 약간의 공간이 있다. 정말 믿기 힘든데, 이 공간은 당시 명동성당 앞과 함께 중대한 사회적인 사안들이 논의되던 “광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시청 앞 광장이 하는 역할, 즉 여론을 모으고 행동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일제 시대에는 이 좁은 공터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3-1 운동 때 독립선언문 배포처라는 작은 기념비가 이 공터 앞에 서 있다. 아무리 역사적 상상력을 발동해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커다란 천도교 회관 건물이 서 있는 자리가 당시에는 비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의 명물은 지금 퇴락하여, 노인 분들 몇 분이 볕은 쬐고 있는 한가로운 공간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교당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경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당 뒤에 고합 빌딩(현재는 리모델링중이다)에는 예전에 토플 시험을 관장하는 ETS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고, 나는 그 건물에서 토플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창문 너머 뜻밖에 천도교 교당 건물을 보게 되었다. 한국 안의 미국과도 같은 낯선 느낌을 주는 토플 시험장(이 공간은 미국인에 의해 관장된다) 안에서 울적한 마음에 젖어있는 나의 시야에 들어온 이 건물은, 뭐라고 하기 힘든 야릇한 감정을 자아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쓸쓸한 역사적인 건물은, 유학길에 들어선 내게서 멀어져가는 한국을 상징하고 있는 걸로 느껴졌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