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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카사 그란데 유적

by 방가房家 2023. 5. 24.

‘큰 집’이라는 뜻의 카사 그란데(Casa Grande Ruin National Monument)는 1300년대에 호호캄 인디언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4층짜리 거대한 건물이다. 애리조나 피닉스 남쪽, 투산 가는 길 중간 쯤, 쿨리지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북미원주민 유적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일 것이다. 이곳은 1892년에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미국 정부가 처음 지정한 보호 유적이다.

지금은 커다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원래는 대규모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많은 양의 집터가 주변에 남아있어 당시의 마을의 규모와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카사 그란데는 황야 복판에 서있지만, 이 마을에 사람들이 살았을 때에는 강물이 이 근처를 지났다. 호호캄 사람들은 관개 수로 기술을 이용해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그 풍요로움이 이처럼 거대한 부락을 형성한 원천이 되었음은 수이 짐작된다. 강의 수로가 바뀌어 이 근처를 지나지 않게 되자 이곳은 버려졌다. 학자들은 그 시기가 15세기 경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여기 살다 떠난 사람들이 누군지, 언제 어떻게 떠났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저 그 때 거주했던 사람들을 호호캄 사람들이라고 이름붙였을 뿐이다.
이 근처에 사는 북미 원주민들, 특히 토호노 오담(Tohono O'odham) 족이나 피마(Pima) 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카사 그란데 옛 집주인의 후예들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학자들에 의해 입증되지는 않았어도. 카사 그란데가 비어있던 기간에도 근처 북미 원주민들은 종종 이 큰 집을 찾아와 의례를 올리곤 했고, 구전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해왔다. 이 큰 집은 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로 기능했던 것이다. 고고학적 지식과는 별도로 다른 의미의 층이 살아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세월에 따라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강한 햇볕을 차단하는 보호막이 가리고 있지만, 건물 자체의 힘도 약해져 여기저기 철제 버팀목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재작년에 이 유적 근처 마을에 월마트가 들어서서 논란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근처에 큰 건물이 들어서서 지반이 약해지고 교통량이 늘어나서 안 그래도 약한 건물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항의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항의의 주체가 누구인지 피해가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에 가서 보니 월마트는 유적에서 보면 까마득한 곳에, 적어도 2km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해 있었다. 영향관계를 논하기에는 좀 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미국은 땅이 넓은 곳이고, 유물의 보존에 신경을 쓰는 곳이라 그런 문제제기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개발 때문에 유적지들이 자기 자리 유지하기도 힘에 버거운 우리나라랑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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