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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장승으로 표현된 신격들

by 방가房家 2023. 5. 23.

(2004.6.26)

충청도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장승들이 무수히 꽂혀 있는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다양한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표현들이 장승을 통해서 시도되어 있었다. 시대의 심성을 담아냄으로써 장승이라는 표현양식이 “살아있는” 것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마당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다양한 장승들을 감상하였는데, 하필 내 카메라에 담긴 것은 불교와 기독교의 신격들을 담고 있는 장승들이었다.

관음보살을 표현한 장승들이다.
불교와 장승의 만남 자체는 낯설지 않다. 장승의 원래 역할은 마을지킴이였지만, 적지 않은 절에서 장승은 절에 가는 길을 지켜주는 역할도 하였다. 일주문보다도 바깥에, 절의 영역 바깥에서, 사천왕상과도 같은 정규 직원은 아니었지만 친근한 미소로 절에 가는 길을 인도하는 장승들이 있었다. 그것을 불교와 장승의 첫째 인연이라 할 것이다. 둘째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미륵 신앙이 민간화하면서 많은 미륵들이 마을로 내려온 데서 비롯한다. 마을에 서있는 돌장승들이 미륵이라고도 불리게 된다. 게 중에는 처음부터 미륵으로 의도된 것도 있지만, 돌장승이 미륵으로 둔갑한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마을에서 못생긴 돌미륵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미륵보다는 품격 있는 분이라 그런지, 관음이 장승으로 모셔진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관음 장승은, 불교와 장승의 친근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이다. 관음의 우아한 자태는 장승의 길쭉한 형상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들이 “우상”이라고 부르는 장승이라는 형태로 모셔진 그리스도와 성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승은 기독교인에 의해 수난을 당한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근의 사건으로는, 동네를 상징하기 위해 장승백이에 세워진 장승과 민족정신을 상징하기 위해 서울대 정문 근처에 있던 장승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뽑힌 일이 있다. 하지만 이 멋들어진 장승은 그러한 헛된 상징 투쟁을 잠재우기 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승은 아니지만, 마그리트의 작품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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