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중부, 피닉스와 플래그스탭을 잇는 고속도로 주변, 세도나에 조금 못 미친 지역에 몇 곳 한적하고 아름다운 유적지들이 흩어져 있다. 캠프 버드(Camp Verde)라는 작은 마을과 시나구아 인디언 유적지인 몬테주마 못[淵]과 주거지가 그들이다. 백인들의 근대와 북미 원주민의 중세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공존하는 곳이다.
1. 버드 요새 유적지 (Fort Verde State Historical Park)
북미 원주민 부족 중에 미국에 최후의 항전을 벌인 이들이 아파치족이다. 용맹스러운 지도자 제로니모(Geronimo)를 중심으로 벌인 아파치족의 투쟁은 꽤 유명하다. 제로니모를 소재로 한 영화가 최근에 제적되기도 했다. 실제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미국애들이 높은 데서 떨어질 때 “Geronimo”라고 외칠 정도로, 그의 투쟁은 미국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파치족이 투쟁한 지역이 바로 애리조나였고(나중에는 멕시코와의 국경지대), 아파치족과 미국인들의 전쟁은 1800년대 후반 애리조나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이룬다.
버드 요새는 아파치족에 대항하기 위해 1870년대 미국군이 세운 군사 거점이다. 전략적 중요성이 상실된 1891년 이후에는 버려진다. 말로는 거창하게 요새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서부 마을이다. 원래 열 남짓한 건물들이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네 채가 남아있다. 한 채는 작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나머지 사령관의 이층집과 의사의 집 등 나머지 건물들은 공개되어 있다. 황량한 벌판 위에 있는 옛 서부의 건물들을 유유히 둘러볼 수 있다. 이 역사 공원을 중심으로 캠프 버드(Camp Verde)라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 집이나 지금 사는 사람들 집이나 크게 달리 보이지 않는 시골 마을이다. 아래는 두 장의 건물 사진과 한 장의 내부 모습(나름대로 서부 생활을 재현해 놓았다).
2. 몬테주마 성곽(Montezuma Castle)
이곳은 12세기 시나구아 인디언들이 살던 주거지로, 특이하게도 다층의 구조로 지어진 절벽 주거지이다. 백인들은 이것이 아즈텍인들의 유적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몬테주마’(이것이 왜 아즈텍과 연관되는 명칭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곽이라는 과장된 이름도 외관만 보고 잘못 붙인 이름이고.
미국 서남부에는 절벽 주거(cliff dwell)를 했던 인디언 유적들이 꽤 남아 있는데, 몬테주마 성곽은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가까이 가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고 규모도 크다. 아래의 사진이 그 모습이다. 일견 2-3층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이고, 전체 5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의 방은 20개 정도 된다. 평소에는 건물 바깥에 사다리를 놓고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곽 옆 다른 곳에도 토굴 등 주거의 흔적들이 보인다.
애리조나 중부는, 전형적인 사막이 아니라, 초원 기후의 고원 지대이다. 이 주거지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개천이 흐른다. 밑에서 이야기할 몬테주마 못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이 개천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시나구아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음이 쉽게 짐작된다. 내 관점에서 보면, 이 주거지는 배산임수를 구현하고 있다.
3. 몬테주마 못(Montezuma Well)
주거지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언덕 위에 큰 연못이 있다. 백록담을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는 훨씬 큰 것 같은, 언덕이 신비하게 둘러치고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오아시스이다. 백인들이 이름을 막 붙이기 이전에, 이곳은 오랜 동안 북미원주민들의 성지였다. 그러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곳에 가면 금세 성스러운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광활한 초원 한복판에 숨겨진 보물처럼 숨겨진 이 연못, 그곳은 고요하기 그지없고 연못의 물은 믿기 힘들 정도로 맑다. 말 그대로 생명의 근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 성스러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이곳에서 어떤 형태의 의례들이 행해졌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게 된다. 연못 근처에는 주거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된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경관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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