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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

by 방가房家 2023. 5. 23.

(2004.7.4)

합정역에서 내려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있다. 대표적인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이 많이 묻혀 있는 곳이다. 개신교 초기 기록들을 살펴보면 선교사들이 의외로 많이 죽어나갔다. 아펜젤러처럼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지만,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허다하다. 한국이라는 오지의 “풍토병”에 선교사들이 시달렸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병사한 선교사도 많고 갓 태어난 선교사 자제가 죽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선교 초기부터 양화진 언덕에 선교사들이 하나둘 묻히기 시작하여 외국인 묘지가 형성되었다.


외국인 묘지인만큼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묘역이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된 모습이었는데, 그 정리는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여기 묻힌 선교사 중에 학교 설립자가 많은 관계로(예를 들어 연대 세운 언더우드, 이대 세운 스크랜튼 부인, 배제, 경성 등을 세운 누구누구...) 학교 재단 쪽에서 그 설립자 묘역을 정비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400기가 넘는 묘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누구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자료 정리와 연구 미진의 결과라고 한다. 이역 만리에 묻힌 사람들의 묘역이니만큼 품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그 중에서 생각나는 몇 개의 이야기들만 나열해 본다.

 


1. 헐버트 묘가 유명하다. 묘역의 앞 가운데 자리에 있다.

 


2. 양화진 묘 중에서 꽤 유명한 것이 루비 켄드릭이라 여자 선교사의 묘이다. 간호 선교사로 들어왔다가 1908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들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병사하였다. 이 아가씨가 유언으로 남긴 비문이 인상적이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대충 해석하면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한국에 다 바치리라”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이라는, 당시 정말 별 볼일 없는 지역에, 그 아가씨가 가졌던 애착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맹목적인 애정은 마음을 숙연케 하는 바가 있다.

 


3. 러시아인의 묘가 꽤 많다. 그러나 묘의 주인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연구하는 사람도 없어 무관심의 대상이다. 정교회의 특이한 십자가 덕분에 러시아인의 묘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묘비의 이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조차 몇 되지 않으니...
이 묘들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에서는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에 선교를 시작했던 정교회도 완전히 철수한 상태였다. 그런데 1919년 러시아 혁명 이후 혁명에 반대했던 일군의 러시아인들이 한국으로 도피해왔다고 한다. 지금 양화진에 묻힌 러시아인들은 주로 그 사람들일 거라고 추정된다. 양화진 묘들을 보면 여기저기 총탄 자국이 많다. 한국전쟁 때 입은 상처들인데, 이처럼 이 묘역이 총격의 대상이 된 것은 혁명에 반대한 러시아인들의 존재 때문이라고 한다. 북쪽에서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소련군이 이 묘역에 총격을 가하였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구전이다.



 


4. 이 곳에서 뜻밖에 새로운 방가(房家)를 발굴하는 소득을 올렸다. 이름하여 방거(房巨)! 방거는 선교사 벙커(Daniel Bunker, 1853-1932)의 한국표기이다. 방거는 최초 개신교 선교사들 중 한 명으로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배재학당의 교장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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