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벌레966 120년 전에 한국에 온 애리조나 사람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은자의 나라”(the hermit nation)와 함께 개항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구인들이 붙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명이다. 지금은 대항항공 기내지의 이름으로나 남아있는, 낭만적이면서도 지금 우리 모습과는 동떨어진 이름이지만, 오랫동안 서구인들의 머릿속에는 극동에 있는 정체된 작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저서는 퍼시벌 로웰의 (1888)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중요하다. 우리나라 이미지를 생성하여 유포시킨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로웰이 개항 초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고종의 어전을 처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옮긴이 조경철 박사가 그런 책을 19.. 2023. 5. 20. 애리조나 드림을 잠시 접으며 (2006.6.19) 어찌 보면 우울한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줄도 몰랐던 고장을 떠나, 이상하리만치 들떠있는 한국에 들어와 일주일을 보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남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까다로운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사고 휴유증이라 할 만한 것인데, 어디가 특별히 아픈 것은 아니고 힘이 나지 않을 뿐이다. 힘이 안 나니, 먹고 자는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지만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글을 써나갈 힘이 나지 않아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까먹고, 써야할 논문 다 못 쓴 채 한국 가서 써서 보내주겠노라고 배째고 돌아와 누워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작년 말에는 블로그 쓸 여력은 충분했는데, 최근에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제 “재기”를 하겠노라고 부모님 집에 돌아온 마당이니, 글쓰는 준비.. 2023. 5. 20. 북미 여행과 팔도 유람 요즘 화장실에서 미국 지도를 많이 들여다보는 편이다. 미국의 역사 지리를 알아두는 것이 책 읽을 때나 이야기 나눌 때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시작한 일인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넓은 지역이다 보니 봐도봐도 생소할 때가 많은데, 이제는 어느 주가 어디 있는지 어렴풋이 알 정도. 도시 이름들은 여전히 쉽지 않다. 요즘 걸어다니면서 듣는 음악 중에 옛날 컨트리 가수 행크 스노우(Hank Snow)의 노래 “I'v been Everywhere, man"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할아버지는 1999년에 작고한 분이고, 이 노래는 1962년의 히트곡이다. 북미 전역을 누비고 다녔노라는 여행 노래이다. “내가 가본 곳은 여기여기...” 이러면서 속사포처럼 미국 곳곳의 지명들을 쏘아대는 재미있는 노래인데, 노래가 흥겹.. 2023. 5. 20. 내 사는 곳 (2005.12.18) 구글은 (미국 경우에) 지도 서비스도 끝내준다. 화면 꽉 차게 상세한 지도를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화살표 키만 사용해서 옆 지역을 스피디하게 훑어보는 것도 다른 찌질한 서비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빠른 화면으로 여기저기를 검색하다 보면 어느 새 도시 하나를 다 훑고 있게 된다. 게다가 지도에 곁들여 제공해주는 위성 화면.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 그 서비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늘 시간이 좀 있어, 구글 로컬을 통해 내가 사는 곳을 검색해 보았다. 일반적인 지도를 통해 내가 사는 곳을 보면 이렇게 나타난다. 학교 오른편(동쪽) 블럭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이 지역을 최대한 확대하여 위성 사진으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내 등교길을 보인 것.. 2023. 5. 20. 종교학 산업 (2005.9.4) 미국 서남부 사막에서 거대한 종교학 산업이 굴러가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종교학의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말았는데, 내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학교에서 종교학 강의가 개설되어 운영되는 규모이다. 다음이 우리 학교 이번 학기 종교학 강좌 개설 현황이다. 이 규모는 엄청나다. 종교학과에서 개설하는 강의 수가 1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400명 규모의 세계 종교 강의 3과목을 포함해 100명 이상의 대형강의 19개가 있다. 이 학교 학생의 3분의 1은 종교학 강의를 듣고 졸업한다는 말이 이 강의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학교와 비교를 해야 알 수 있겠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종교학 강의가 개설되는 학교는 미국에서도 없을 것 .. 2023. 5. 20. 경 지 * 장자 편에 나오는 소잡이 포정은 어찌 그렇게 칼을 상하지 않고 소의 고기를 잘 발라낼 수 있냐는 문혜군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 3년이 지나자 이미 소의 온 모습은 눈에 안 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있고 눈으로 보지는 않습죠.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천리를 따라 소 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 몸이 생긴 그대로를 따라갑니다.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안동림 역주, , 현암사, 93-4.) 뼈마디의 틈새를 발견하고 고스란히 그 틈새를 따라 칼을 움직이기만 하는 것, 그것이 양생(養生)의 도를 논할.. 2023. 5. 20. 더워서 하는 말 (2005.7.23) *덥다. 더워서 무슨 말을 써야할지 헛갈릴 지경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 덥다고 하면서 ‘불볕더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들으면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흐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햇빛의 강렬함 때문에 더운 것은 아니다. 태양의 뜨거움을 느끼는 건 우리나라에서 8월 초의 일이며,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사막에서 전형적으로 느낄 수 있는 더위이다. 습도와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한 요즘 더위와는 종류가 다르다. 그저 ‘무더위’라고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과장하고 싶으면 ‘찜통더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을 아끼는 성격의 나로서는 좀더 심한 상황을 위해 예비해두고 싶다. 우리는 더위를 이야기하면 흔히 온도만을 이야기하지만, 습도도 항상 같이 이야기되어야 정확한 인식을 할 .. 2023. 5. 20. 이름 없는 대상 10·29 참사 이후 정부가 주도한 추모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대상을 추모할 수 있느냐이다. 직감적으로도 구체적인지 않은 숫자만 앞에 놓인, 그것도 사망자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 대답은 명확하다. 위패 없는 제사는 불가능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제대로 된 의례적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진오귀굿 이야기에서 이름 없음의 의미(혹은 무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아래는 김동규 선생의 발표에서 소개받은 사례를 약간 수정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사례 속의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여인의 존재이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그는 메인 무대인 ‘본과장’에서 달래질 수 없었고, ‘뒷전’에서 임시적으로.. 2023. 5. 19. 종교인구 문제의 황당함 김진호 선생의 “종교인구 문제의 ‘황당함’과 ‘곤혹스러움’”은 작년에 나온 2015년 인구총조사 종교통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을 열어준 글이었다. 발표를 들으며 들었던 ‘도움 받은 생각 + 혼자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본다. 1. “황당한 개신교 신자 수, 종교학의 곤혹스러움” 2015년 통계가 발표되기 이전 개신교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좋지 않고 교단 통계도 감소세를 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는 큰 폭의 감소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967만명으로 국내 최대 종교를 기록. 학자들로서는 예상 못한 결과였다. 나 역시 이전 통계를 기반으로 뻘소리를 한 적이 있어 후끈거리는 결과. 황당하고 곤혹스러운 것이 맞다. 비유하자면 여론조사 갖고 딴소리 하던 정치평론가들이 작년 총선 이후 할 말이 없어진 상.. 2023. 5. 19.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 발표문에서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2015년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정기 학술심포지엄)을 들으면서. 이하는 전체 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내용에 대한 메모들이다. 이만열, 윤경로 두 발표자는 최근 사회적 쟁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노학자들이다. 최근의 경험들이 배어들어 글과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1-1. 이만열 선생은 1970년대까지 활발했던 기독교 운동권이 89년대 들어 퇴조하며 운동권의 주도권이 비기독교 운동권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였는가?” 운동의 퇴조를 기독교 정체성 상실과 연결했는데, 이는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렵거나 초점이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인할 사안이다. 1-2. 한국 기독교.. 2023. 5. 19. 신종교와 성소 한국신종교학회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는 “신종교와 성소 2”였다. 금강대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대순진리회의 성소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가 많았다. 몇몇 내용을 정리해 놓는다. 금강대도 옥화촌(玉華村) 1. 금강대도 본부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에 있다. 창도주 이토암이 이 위치에 금강대도의 터전을 옮긴 것은 1923년이었다. 금강대도는 1941년에 일제의 탄압을 받아 11명의 신도가 옥중 순교하고 ‘강제 기부 승낙서’를 통해 성전과 건물이 헐리게 된다.[신사사변] 주춧돌과 터만 있던 이곳은 개도 100주년인 1973년 재건되었다. 2. 옥화촌은 풍수지리를 통해서 의미화 된다. 이곳은 계룡산의 지맥에 위치한다. 계룡산의 풍수지리적 의미 위에 이 지역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합되어 풍.. 2023. 5. 19.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 운이 좋아서 김진호 선생님에 대한 논평을 여러 번 맡았다. 사실 ‘논평’이라는 말은 무거워서 엄밀히 따지면 내가 하기엔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해하는 ‘논평’은 발표만 듣기에는 아쉬우니까 무언가 발표자로부터 이야기를 더 청해 듣기 위한 빌미를 제공하는 학술행위이다. 고맙게도 발표자가 풍성한 응답을 해주었기에 여느 때처럼 배울 게 많은 시간이 되었다. 아래의 글은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문이다. 중간 중간에 그날 논의된 내용을 삽입했다. 논평의 대상이 된 발표문은 내가 올해 안에 출판될 책에 포함될 내용이고 내가 공개할 수는 없다. 대신 선생님 홈페이지에 있는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불온하다”라는 글을 참조할만하다. 발표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발표문.. 2023. 5. 19. 비엔나 학회(AKSE) 후기 제26회 유럽 한국학회(AKSE)에 참석하러 비엔나에 와 있다. 이제 이틀간의 느낌을 간명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학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느낌은 정확하게 이랬다. “Welcome to the jungle!” 학자들은 일인 기업이다. 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 나 혼자 참가하게 되어 그런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동료 학자들과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다행히 아는 학자 몇 명이 있어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멀거니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학회는 학자들이 거래하는 장터이다. 서로 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계획을 교환하고 흥정하는 곳이다. 나는 이 장터에 내보일만한 물건을 만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학자여야 했다. 어.. 2023. 5. 19. 시민K와 초기 개신교사 며칠 전에 (현암사, 2012)의 저자 김진호 선생님을 내 수업 시간에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찔끔찔끔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이 책 한권 제대로 읽는 것이 천 배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히고 저자를 모시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너무나 고맙게도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흔치 않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올해 내가 받은 여러 행운 중 하나였다. 아래 내용은 그날 토론에서 오간 내용은 아니고 이번에 선생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특히 제1부 1장(37-48)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메모한 것이다. 제1부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되짚는 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1장은 내가 관심 갖는 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특히 유심히 읽었다. 이 책에는 .. 2023. 5. 19.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평문 한 행사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고 김진호 선생님의 “교세 감소와 정치 세력화, 위험한 만남”이라는 글을 논평하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자리는 쟁쟁한 학자들로 가득 찬 행사였다.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행사여서 일반적인 소박한 발표와는 많이 달랐다. 발표회의 화두를 제공한 책 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에는 나의 논평문만 남긴다. 사실 발표문이 없는 이 논평문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발표자의 양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문은 실을 수 없었음.) 대부분 발표 내용을 긍정하고 중요한 점을 다시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기념용 포스팅. “교세 감소와 정치 세력화, 위험한 만남”(김진호)에 대한 논평 1. 한국 개신교의 정치성, 뜨거운.. 2023. 5. 19.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