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4)
미국 서남부 사막에서 거대한 종교학 산업이 굴러가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종교학의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말았는데, 내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학교에서 종교학 강의가 개설되어 운영되는 규모이다. 다음이 우리 학교 이번 학기 종교학 강좌 개설 현황이다.
이 규모는 엄청나다. 종교학과에서 개설하는 강의 수가 1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400명 규모의 세계 종교 강의 3과목을 포함해 100명 이상의 대형강의 19개가 있다. 이 학교 학생의 3분의 1은 종교학 강의를 듣고 졸업한다는 말이 이 강의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학교와 비교를 해야 알 수 있겠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종교학 강의가 개설되는 학교는 미국에서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3명이라는 엄청난 교수 숫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못지 않은 수의 강사와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 숫자가 비슷한 다른 학교는 보았어도 이렇게 많은 강사 숫자는 본 적이 없다. 교수, 강사를 합치면 50명이 넘는 종교학 박사들이 이 학교에 우글대고 있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하면, 내가 보기에 이 나라의 강사는 한국의 강사와는 종류가 다른 사람이다. 이 나라에서 강사는 엄연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강사는 공고를 내서 뽑는 다년 계약직으로, 생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다. 내가 아는 이 곳 강사들은 십년 이상 강의한 이들이다. 나랑 가장 친한 찰스 에머슨 할아버지는 22년간 신약성서 강의를 맡아온 이 학교 터주대감이다.
이 학교의 종교학과 운영은 아직까지 학부 중심이다. 박사 과정이 생긴지 얼마 안 되어 대학원 수업은 아직 적은 편이다. 많은 수의 교수와 강사가 학부 수업에 투입되고, 더구나 대형 강의를 주로 도맡아하는 강사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서, 나는 애리조나 주립대가 미국 최고 규모,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학 수업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투입되는 인력, 오고가는 학생들, 수업에 사용되는 교과서의 양들을 보면 이것을 하나의 산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수업 조교로서 주로 대형 강의에서 강사들을 돕기 위해 투입되기 때문에, 이 산업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거고.
(대규모의 학부 교양 강좌 개설을 통해 학과를 꾸려나가는 이 방식을 통해, 이 학교 종교학과가 커왔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아직 학과 역사를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니기에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내 수업에서 쓰는 교과서에는 “종교학은 인문학 교육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다.”라는 문장이 있던데, 한국에서는 선언적인 의미를 지닐 이 말이 미국에서는 평범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학교의 서점에 가면 종교학의 규모를 다시 느끼게 된다. 학교 서점은 그냥 책파는 곳은 아니고, 주로 학교 수업에서 사용되는 교재들을 신청받아 파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강사들은 학기 몇 달 전에는 사용될 교재를 미리 신청해놓아야 한다. 처음에는 교재만 파는 곳이라서 그저 그런 규모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이 백여 개이다 보니 여기서 볼 수 있는 종교학 책도 엄청나다. 사진에 보이는 긴 복도 양편에 종교학 교재들이 가득 차 있다. 이 학교 서점에는 이런 복도가 11개가 있으니 종교학이 차지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비중이 짐작이 갈 것이다.
나같은 촌놈에게는 이곳이 그저 교재 판매처가 아니라 종교학 산업의 중심부를 엿보는 좋은 시장 조사 거점이다. 어떤 책들이 나와서 중요한 책으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 게다가 새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중고 책들도 들여와 싸게 팔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책을 쉽게 살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심심할 때마다 이곳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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