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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120년 전에 한국에 온 애리조나 사람

by 방가房家 2023. 5. 20.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은자의 나라”(the hermit nation)와 함께 개항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구인들이 붙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명이다. 지금은 대항항공 기내지의 이름으로나 남아있는, 낭만적이면서도 지금 우리 모습과는 동떨어진 이름이지만, 오랫동안 서구인들의 머릿속에는 극동에 있는 정체된 작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저서는 퍼시벌 로웰의 <<Chosun: The Land of Morning Calm>>(1888)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중요하다. 우리나라 이미지를 생성하여 유포시킨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로웰이 개항 초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고종의 어전을 처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옮긴이 조경철 박사가 그런 책을 1980년대에야 미국 천문대에서 우연히 만나 국내에 소개했다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설마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서울대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최근에 들어온 마이크로필름 외에는 자료가 없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던 자료가 맞는 것 같다. 조경철 박사가 그런 수고까지 해야 했다니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이상한 것은 이 책은 원래 1980년대 말에 한 번 출판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경철 선생은 이 책이 2001년에 처음 나온 것인 양 옮긴이의 말을 썼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에서 울림을 받는 것은 책이 지닌 중요성과 그 안의 종교에 대한 서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웰이 애리조나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리조나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로웰은 애리조나 플래그스탭에 터를 잡고 천문관측소를 세워 죽을 때까지 관측을 하고 살았던 천문학자이다. 이 천문대에서 그는 명왕성을 발견에 기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비록 얼마 전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제외된 바람에 그 의미가 좀 퇴색되긴 했지만. 애리조나는 습도가 낮고 맑은 하늘을 가졌으며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 많아 별을 관측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지닌 곳이어서, 세계적으로 천문학이 발달한 지역이다. 로웰이 20세기 초에 천문대를 운영하고 업적을 세운 것은 지금 애리조나에 천문학이 강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조경철 박사가 투산의 애리조나 대학에서 연구를 하다가 로웰의 자료와 만났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플래그스탭에는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다. 그랜드 캐넌에 갈 때 꼭 들려야 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두시간 거리이면서도 피닉스의 사막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냉대 기후의 지역이라 눈구경을 한다든지 다른 자연 환경을 맛보러 가게 되는 곳이다. 로웰 천문대(http://www.lowell.edu/)는 도시 남쪽, 북애리조나 대학 서쪽 맞은편에 있는데, 지금은 천문대 기능이 아니라 과학 박물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에 관심이 없는 나는, 그 곳에서 뭔가 발견되었다고는 하던데 발견되었다는 게 명왕성(내가 영어로 이 단어를 몰랐던 탓에)인지 토성의 한 위성인지도 잘 몰랐고, 돈내고 구경할 마음이 들지 않아 지나치기만 했다. 그 때 그 천문대가 한국과 그렇게 관련이 있었던 학자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꼭 가보았을 텐데, 지금 와서는 후회막급이다. 역시 뭐든지 부지런히 보아 놓아야 했다.

단지 천문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진 찍으며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 때 나는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사막에 살면서 가을을 완전히 상실했던 나는 플레그스탭에 있는 단풍든 나무들을 보고 뻑이 가버렸다. 지금 보면 평범해 보이는 도서관 뜰에 있는 나무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천문대 구경할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한 채.


명왕성 발견에 기여한 저명한 천체물리학자가 무슨 연고로 알려지지 않았던 동아시아 구석의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놀러온 것도 아니고 외교적 임무도 띄고 조선의 고위 관리들과 교류하며 1년 가까이 머물다 돌아갔다. 로웰은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만만치 않은 지식과 이해를 보여준다. 그의 서술은 그저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통찰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많다. 문장도 매우 수려해서 그 시대 학자들은 역시 종합적인 지식인이라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과학자 이미지랑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가 한국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은 상당히 냉정하며, 때로는 ‘서구인의 편견’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것들도 상당히 포함된다. 부정적인 서술은 사실 책 제목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빅토리아 시대 지식인의 진화론적인 사유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문장으로, 타일러의 잔존물(survival)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책의 1장은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아름다운 제목인데, 그는 여기에서 조선(朝鮮)이라는 나라 이름으로부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별명을 짓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 자체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잠이 덜 깬 그곳의 고요함은 정착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해주었고, 아예 잠들어 버리게 했다. 다른 세계 역시 자신들과 같은 환경에서 잠자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안심하고 아주 깊이 잠들어 버렸다...
그곳에는 마치 동화 속 궁전처럼 거의 모든 것이 몇 세기 전 그대로 고이 간직돼 있다. 그곳에서는 변화란 의미 없는 것이며 시간은 정지해 있다... ‘살아있는 화석화’, 즉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몇백 년 전의 옷, 예절,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양식 등이 옛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퍼시벌 로웰, 조경철 옮김,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예담, 2001), 17.)

표현은 시적이지만 내용은 단호하다. 수백년간 발전이 없었던 나라가 그가 느낀 조선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멋진 표현에는 “잠이 덜 깬”이라는 섬뜩한 의미가 숨어있음을 주의해야 겠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동기는 역시 종교에 대한 내용 때문인데, 책의 19장은 아예 “종교의 부재”가 제목이다. 서구인의 종교 없음의 서술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예로서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그가 종교 없음을 생각한 이유는 어찌 보면 소박한데, 그것은 그가 체류한 서울 시내에서 종교 건물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전역에 걸쳐 종교에 관련된 건물은 단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승려들이 성문 내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153) 그래서, “종교건축물의 절대적 결핍 현상은 눈에 보이는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암시한다. 즉 이러한 현상은 한때 지배 세력을 이루었던 종교의 갑작스런 소멸을 말해준다.”(153) 결론적으로, “서울을 통해 우리들은 종교가 부재한 사회, 즉 상류 계층에서는 유교의 윤리가 하류 계층에서는 옛 미신의 잔재가 자리잡은 사회를 보게 된다.” (156)

그는 소위 세계 종교라고 불리는 전통들만 종교로 보고 나머지는 풍습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의 종교 개념에 따라 종교가 부재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믿음 현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어서 20장에서 “영혼에 대한 숭배”를 다룬다. “조선인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외에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갈망을 신앙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으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신앙은 악령 숭배라고 할 수 있다.”(162) 이러한 서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종교/미신의 이분법(기본적으로 ‘우리의 종교/그들의 종교’ 구분의 한 갈래)이 역시 등장한다: “조선에서의 종교의 역사란 매우 특이해서 잠시 머물렀다 곧 사라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낡은 미신밖에는 달리 의지할 데가 없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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