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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음악

북미 여행과 팔도 유람

by 방가房家 2023. 5. 20.

요즘 화장실에서 미국 지도를 많이 들여다보는 편이다. 미국의 역사 지리를 알아두는 것이 책 읽을 때나 이야기 나눌 때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시작한 일인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넓은 지역이다 보니 봐도봐도 생소할 때가 많은데, 이제는 어느 주가 어디 있는지 어렴풋이 알 정도. 도시 이름들은 여전히 쉽지 않다.

요즘 걸어다니면서 듣는 음악 중에 옛날 컨트리 가수 행크 스노우(Hank Snow)의 노래 “I'v been Everywhere, man"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할아버지는 1999년에 작고한 분이고, 이 노래는 1962년의 히트곡이다. 북미 전역을 누비고 다녔노라는 여행 노래이다. “내가 가본 곳은 여기여기...” 이러면서 속사포처럼 미국 곳곳의 지명들을 쏘아대는 재미있는 노래인데, 노래가 흥겹기도 하고 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게 좋기도 해서 자꾸만 듣게 된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리스닝’에 도전하곤 한다. 몇 개나 알아들을 수 있나 해보자고 덤비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어내는 도시 이름은 맨날 거기서 거기다. 역시 아는 것만이 들릴 뿐인데, 여기 나오는 이름들은 정말 구석진 곳들이 많아 모르는 이름들이 태반이다. 큰 도시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궁벽진 곳들이다. 예들 들어, 이 노래에서 등장하는 애리조나 지명은 하나 눈에 띈다. 윈슬로(Winslow). 애리조나 있는 미국 사람들도 그런 곳이 있는지 모르는 이들 많을 거다. 그런 작은 곳들까지, 행크 스노우는 직접 발로 누비고 다닌 경험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참고 삼아 가사를 올려놓는다. 심심한 사람들은 리스닝에 도전해 보시길.


**(반복)
(I've been everywhere, man
I've been everywhere, man
Crossed the deserts bare, man
I've breatherd the mountain air, man
Travel - I've had my share, man
I've been everywhere)
I've been to:
Reno Chicago Fargo Minnesota Buffalo Toronto Winslow Sarasota Whichta Tulsa Ottowa Oklahoma Tampa Panama Mattua LaPaloma Bangor Baltimore Salvador Amarillo Tocapillo Pocotello Amperdllo
**

I've been to:
Boston Charleston Dayton Lousiana Washington Houston Kingston Texas(County) Monterey Fairaday Santa Fe Tollaperson Glen Rock Black Rock Little Rock Oskaloussa Tennessee Tinnesay Chickapee Spirit Lake Grand Lake Devil's Lake Crater Lake
**

I've been to:
Louisville Nashville Knoxville Omerback Shereville Jacksonville Waterville Costa Rock Richfield Springfield Bakersfield Shreveport Hakensack Cadallic Fond du Lac Davenport Idaho Jellico Argentina Diamondtina Pasadena Catalina
**

I've been to:
Pittsburgh Parkersburg Gravelburg Colorado Ellisburg Rexburg Vicksburg Eldorado Larimore Adimore Habastock Chadanocka Shasta Nebraska Alaska Opalacka Baraboo Waterloo Kalamazoo Kansas City Souix City Cedar City Dodge City

이 노래에 대한 거대한 번안 작업이 있었다. 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서수남과 하청일이 이 노래를 “팔도유람”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것은 위대한 문화적 번역의 사례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땅의 스케일이 완전 다르고 지명이 완전 다른 이 번안에서, 서수남과 하청일이 원작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멜로디와 땅에 대한 사랑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완전한 창작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은 번역인 동시에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이다. 멀리는 유람에 대한 가사 장르가 있었고, 근대 유행가에서도 전국 여행의 모티브는 면면히 노래되는데, 황금심의 “대한팔경”이라든지 최희준의 “팔도강산”과 같은 노래들이 대표적이다. 서수남 하청일의 번역 작업은 그 전통 위에 서 있다. 남한땅만 돌아다니면서 굳이 팔도를 고집하는 것은 전통에 대한 확고한 의지일 것이다.

스케일이 다른 여행이다보니, 미국처럼 많은 지명만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서수남과 하청일 노래에는 내러티브가 삽입되어 있다. 전국을 시계방향으로 돌아 서울에서 마무리하는 동선을 그리고,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할 때의 방법이 제시된다. 우리의 맥락에 맞게 “버스를 타고” 출발한 이 여행은 때로는 기차를, 때로는 배를 타고 전국을 순회한다. 게다가, 사투리와 같은 이들의 천재적인 애들립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에 대한 언급이나, 서울에서 등장하는 창경원 언급에서는 시대가 읽히기도 한다. 지금은, 전국을 팔도라고 생각하는 의식 자체가 희미해졌을 뿐더러, 동선과 유람 지역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삼십년 사이에 이 땅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으므로.

서수남-하청일, 팔도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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