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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애리조나 드림을 잠시 접으며

by 방가房家 2023. 5. 20.

(2006.6.19)

어찌 보면 우울한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줄도 몰랐던 고장을 떠나, 이상하리만치 들떠있는 한국에 들어와 일주일을 보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남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까다로운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사고 휴유증이라 할 만한 것인데, 어디가 특별히 아픈 것은 아니고 힘이 나지 않을 뿐이다. 힘이 안 나니, 먹고 자는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지만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글을 써나갈 힘이 나지 않아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까먹고, 써야할 논문 다 못 쓴 채 한국 가서 써서 보내주겠노라고 배째고 돌아와 누워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작년 말에는 블로그 쓸 여력은 충분했는데, 최근에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제 “재기”를 하겠노라고 부모님 집에 돌아온 마당이니, 글쓰는 준비운동을 하나둘 해보는 중.


자기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언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언어 없음’은 ‘당위 없음’이라는 느낌을 주게 되고, 그래서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초에 철학원은 운영하시는 사촌 형님이 내 올해 운세를 봐 주신 적이 있다. 올해 운세는 “재운은 있으나 학문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 공부하는 이에게 최악의 운세가 아닐 수 없으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점괘는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기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외부의 시각에서 기술된 나의 상황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로부터 나는 나의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언어는 아직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 보았을 때, “올해는 학문이 땅에 떨어지는 해라서 그래요”라고 답하는 것은 좀 망설여지는 일이긴 하다. 다만 나의 좌표를 설정할 단초를 얻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틀을 제공하는 것, 나는 그것이 점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괘가 주는 다른 위안은 “땅에 떨어진다”는 물리적인 표현에서 비롯된다. 점괘는 순환적인 세계 내에 존재한다. 떨어짐은 이후의 상승을 내포한 표현이다. 지금이 바닥이라는 진단은 더 나빠질 것이 없으며 앞으로는 회복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방식으로 점괘는 위안을 제공한다.
그나저나 적어도 일 년을 한국에서 쉬겠다고 들어와 버렸다. 향후 일정은 가변적이다. 내게는 약속의 땅이었던 황무지 애리조나, 종교학이 꽃피는 사막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나중에 그 곳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내 블로그의 중요 카테고리 중 하나인(비록 글 수는 얼마 안 되지만) “사막살이”도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이다. 몇 년간 누리던 애리조나 드림은 당분간 아름다운 사막에 대한 기억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Arizona Dream" OST (Iggy Pop & Goran Breg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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