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성씨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일단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보도록 하겠다.
한국 사회에는 (대략적으로 말해서) 두 개의 방씨가 있다. 주류 방씨인 모방(方)씨와 비주류 방씨인 방방(房)씨이다. 엄밀히 말하면 두 개의 방씨(邦, 龐)가 더 있긴 하지만 숫자가 너무 적고(각각 100-200명 정도) 역사가 짧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하여튼 방씨는 하나가 아니다. 이 점을 주지시키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방씨라는 성을 가졌다는 것만 해도 특이한데, 그 성씨가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에 신경쓸 것 있느냐는 것이 대부분의 태도이다. 원래 사람들의 인식은 낯선 것을 분화시켜 받아들이는데 게으른 법이니까.
그래도 房씨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야 겠다.
일단, 방(方)씨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 성씨이다. 한국의 250여개의 성씨들 중 54위(1975년 기준)를 랭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방씨들, 예컨대 조선일보의 방씨들, 개신교의 원로 목사들, 한국 최초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방수원 선수, 위대한 배드민턴 선수 방수현과 그녀의 아버지 방수일... 이 사람들은 나 방원일(房元一)과 혈연적인 관계가 없다. (이 참에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 하나. 가수 방미(芳美)는 한문(꽃다울 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명이다. 그리고 방실이는 당연히 방씨가 아니고.)
그렇다면 방(房)씨는 어떠한가. 내가 아는 한, 이 사람들 중에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은 없었다. 머리수로 치면 250여개 성씨 중 84위를 달리고 있다. 方에 비해 30여등 뒤에 있는 이 순위는 수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숫자로 치면 方씨는 房씨보다 5배 정도 많다. 84위라는 순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참고로 85위에 해당하는 성씨는 육(陸)씨이다. 주변에서 육씨를 만난 적이 있는가? 방(房)씨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육씨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 해당한다. 그나마 육씨는 육영수를 배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알려진 성씨가 되었다는 점에서 방(房)씨보다 낫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씨(房氏)는 남한에 총 5,371가구, 22,519명 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소수파에 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내 성씨를 좋아하는 편이다. 더구나 나는 한국 사회는 김이박이라는 세 성씨에 의해 도배되는 바람에 성씨가 분류기호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는 답답한 사회의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한국처럼 획일화된 사회에서 희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특히 제도 교육에 편입되자마자 방씨(아마 변씨도 비슷한 운명이 아닐까)에게 가해진 주변 아이들의 문화적 폭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매우 사소한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어릴 적 일종의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것을 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여 개성화 시킨 과정은 내 유년기 중요한 성장 과정의 일부였다.
왜 그랬던지 나는 어릴 때부터 성씨 순위에 관심이 많았다. 1990년도 센서스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5년마다 새로운 인구 통계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 통계자료를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야된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래서 동사무소 등 내가 갈 수 있는 관공서를 찾아다녔다. 급기야 마지막에 찾아간 곳은 생전 처음 가본 파출소. 별 미친 녀석 다 보았다는 듯한 눈총만 받고 자료수집을 포기하게 된다. 나도 내가 그런 눈총 받을만 했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도 내게 어디서 구할 수 있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 내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동아대백과 사전. 성씨마다 다 찾아 순위표 만들고... 별 짓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위의 84위라는 순위는 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1975년도의 것이다.
얼마 전에 인구 통계를 제공하는 사이트(http://kosis.nso.go.kr/)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세상 좋아진 거다. 정보에 목말라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정보 접근이 용이해진 요즘 세상의 고마움을 실감하지 못할 거다. 그 사이트를 보니 파출소까지 갔던 옛날 생각이 나, 내 성씨 랭킹을 확인해 보았다. 2000년도 조사 결과이다.
3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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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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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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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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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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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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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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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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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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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방씨는 무려 7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 흔한(?) 소씨, 주씨, 설씨, 마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10등이 올랐다. 왜 순위가 올랐을까?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가문만 무식하게 종족 번식에 열을 올렸을 리도 없는데... 연구대상이다.
새 자료에 근거해 위의 글에 몇가지 사실을 보탠다.
1. 모방(方), 방방(房)씨 외의 다른 방씨, 나라 방(邦)씨와 방통의 방(龐)씨를 무시한 것은 내 좁은 소견의 소치이다. 자신이 비주류라는 의식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더더욱 소수파 방씨를 무시한다는 게 말이 되나? 다른 두 방씨는 각기 1500명과 1000명 정도의 인구를 거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2. 모방 씨는 비슷한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전히 50위권 밖이었다. 모방씨가 방방씨보다 5배 많다는 것은 과장이고, 이번에 보니 2.5배 정도 되었다.
3. 방방씨와 비슷하게 있던 육씨는 90위권 정도였다. 사반세기 동안 방방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육씨를 저 뒤에 제쳐 놓고 이렇게 급격히 불어나다니...
4. 위의 표를 보니, 내가 소수파에 속하는 성씨라는 근거 없는 의식은 말끔히 사라졌다. 소씨, 설씨, 마씨... 어느 자리에 그런 성씨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하나 없지 않은가? 나도 그런 성씨를 가진 보통(?)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