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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더워서 하는 말

by 방가房家 2023. 5. 20.

(2005.7.23)

*덥다.
더워서 무슨 말을 써야할지 헛갈릴 지경이다.

그저께 일기예보에서 덥다고 하면서 ‘불볕더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들으면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흐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햇빛의 강렬함 때문에 더운 것은 아니다. 태양의 뜨거움을 느끼는 건 우리나라에서 8월 초의 일이며,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사막에서 전형적으로 느낄 수 있는 더위이다. 습도와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한 요즘 더위와는 종류가 다르다. 그저 ‘무더위’라고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과장하고 싶으면 ‘찜통더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을 아끼는 성격의 나로서는 좀더 심한 상황을 위해 예비해두고 싶다.
우리는 더위를 이야기하면 흔히 온도만을 이야기하지만, 습도도 항상 같이 이야기되어야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습도가 낮고 온도가 무척 높은 다른 더위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사막의 더위 경험이 많지 않아, 우리말에는 이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지 않고, 그런 언어상의 제약이 드러날 때가 가끔 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을 위해 쿠웨이트 원정을 갔을 때였다. 그 때 스포츠서울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중동킬러 이동국 찜통더위에 설레설레” (인터넷판의 제목은 이와 다른 데 내가 지면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찜통더위를 제목으로 달고 있었다.)

이동국에 대한 과도한 평가에 대해서는, 논지에서 벗어나기에 토달지 않기로 한다. 더위에 관련된 부분만 살펴본다: “‘라이온 킹’ 이동국이 쿠웨이트의 찜통 더위 앞에서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최고 47도까지 치솟고 야간 훈련 때도 36도나 되다보니 사우나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찜통더위’라는 표현이다. 온도가 높다고 다 찜통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찜통은 분명 높은 습도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47도가 되더라도 습도가 10-20% 정도인 사막 지역에서는 다른 식의 더위가 존재한다. 기자가 이 점을 모른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쉐라톤 호텔에 묵고 있는 선수들이 인근 공원으로 산책을 하려고 호텔 문을 나섰다가 ‘건식 사우나’를 방불케하는 열기에 그냥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까.” 건식 사우나라는 표현이 사실에 부합한다. 다른 종류의 더위임을 알면서도, 찜통이란 말버릇이 잘못 적용되었던 것이다. 찜통보다는 불볕이 어울리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밤에도 덥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맥락에서 불볕이라는 말을 못 쓰고 찜통이 잘못 튀어나온 것이다.
동일한 내용을 다룬 부산일보의 기사의 내용도 재미있다.
44 ℃ '살인폭염' 극복하라

이 기사에서는 “땡볕 무더위”라는 적당한 표현을 신경써서 사용했다. 그런데 더위에 대한 설명이 이상하다: “현재 쿠웨이트의 낮기온은 섭씨 44도에 육박하는 데다 습도 역시 20~30%에 머무르는 '찜통 더위'여서 현지인들조차 낮에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하고 있다.” 역시 찜통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데, 습도가 20-30%에 머문다는 말이 더 이상하다. 습도가 낮아야 찜통이 된다는 생각일까?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더위이다. 내가 이전에 애리조나의 더위를 이야기하며 고백했던 비현실성을 그들도 느꼈으리라. 경험이 없었다면 알맞은 언어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덥다는 말조차도 사실 'warm'과 'hot'을 지닌 영어에 비하면 미분화되었다. 'hot'에 해당하는 날씨를 많이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그대로 옮겨 뜨거운 날씨라고 하면 좀 경박하게 들리려나? 듣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 것 같다.
불볕더위는 괜찮은 표현이지만 더 다양한 은유들이 개발되었으면 한다. 전세계에 한국 사람들이 나가 살고 있고, 사막 기후에 거주하는 한국어 사용자의 수도 상당해졌다. 그들의 생활에서 길어올린 은유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획득된 언어가 (인터넷을 통해서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한국어 공동체 안에서 소통될 때 한국어의 외연은 확장되고 더 다양한 경험들을 포괄하는 언어로 발달하게 될 것이다.
2주 후에 돌아갈 애리조나에서는 무지하게 덥다는 비보가 들어오고 있다. 급기야는 어제 한국의 텔레비전 뉴스에 애리조나의 더위가 보도되었다.
미 서부 내륙 폭염으로 사망자 속출
이 기사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사실 전달의 미흡이다. 섭씨 42도는 애리조나의 보통 여름 날씨이고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 정도 날씨에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해 애리조나는 벌써 두 달 전에 45도가 넘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그쪽 친구한테 들은 얘기로는 최고 기온이 화씨 120도(거의 47도)에 육박한다고 한다. 내가 있었을 때 최고 기온이 화씨 113도였으니 120도면 정말 죽을 만큼 더운 거다. 기사 내용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둘째 문제는 역시 ‘찜통 더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 누누이 얘기했듯이 그 쪽 지역 날씨에 쓸만한 표현이 아니다.


환경에 의해서 쓸 수 있게 되는 말이 있고 쓸 수 없게 되는 말이 있다.
나에게 “산득산득”이라는 표현을 가르쳐 준 것은 송골매의 노래 “하늘나라 우리님”이다. 그러나 그 말은 애리조나에 간다면 사용할 수 없는 말이 된다. 사랑하는 님 찾으러 ‘훠이훠이’ 산을 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 있는 산은 가끔 덤불이나 있는 모래와 바위로만 되어있는 황량한 산이다. 42도의 날씨에 작열하는 태양을 받으며 그런 산에 오른다면, 그리움에 사무친 와중에도 모자를 꼭 쓰고, 썬글라스 쓰고, 될 수 있으면 썬 크림도 발라주고, 무엇보다도 큰 물통을 챙겨야 한다. 생명에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간 산에서 “산득산득”은 발언될 수 없는 언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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