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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278

종교로서의 애니미즘에 대한 불만족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의 보고서 제4권에는 애니미즘 종교를 다루는 장이 있다.(이 자료를 웹상에서 볼 수 있는 곳) 이 글에서 "종교로서의 애니미즘에 대한 불만족"이라는 소절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전통에 불만족을 갖고 있는 지식인 계층(전통적인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서구적 영향에 민감한 계층)의 이야기들을 모아놓고, 그것이 선교의 좋은 기회, 혹은 선교를 위한 자원이 됨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이 선교 보고서 내용들이 한국 상황과 오버랩되어 눈에 밟히는 것은 한두 곳이 아니다. 우선은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의 다양한 전통들로부터 참 비슷한 내용들을 파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전통이 '애니미즘'이라는 단일한 표제 하에 묶인 것이 예사롭지 않거니와, 그 '어리.. 2023. 5. 30.
감옥 안의 영들은 누구인가? “그[그리스도]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 19) 이것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성서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생기는 중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 텍스트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 텍스트를 이해하게 해주는 종교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spirit’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감옥 안의 영들’은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어디로 간 것인가? 그가 선포한 내용은 무엇인가?”(96) William J. Dalton, "1 Peter 3:19 Reconsidered," Bo Ivar Reicke, William C. Weinrich (eds.) (Mercer University Press, 1984) 이 구절의 해석을 다룬 대표적인 다음 .. 2023. 5. 29.
바울의 아레오바고 법정 연설 조너선 스미스는 기독교와 다른 전통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텍스트는 신약성서 중에서 누가의 아레오바고 법정 이야기(사도행전 17:16-34)와 고린도전서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19세기 선교사들의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나는 그 지적이 타당한 것임을 여러 번 느끼고 있다. 오늘 음미하고 싶은 것은 사도행전 17장이다.(고린도전서에 대한 스미스의 글에 대해서는 이글을 참고할 것)바울은 아테네에 선교 여행을 갔을 때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였지만, 아레오바고 법정에 서서는 다음과 같이 차분히 연설을 시작한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 2023. 5. 29.
트롤로프의 한국 불교 이해 우리나라 성공회 주교를 역임했던 트롤로프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선교사였다. 그의 다음 글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글이지만 이해의 깊이는 충분히 느껴진다. 1914년 글으로, 그전의 한국 불교에 대한 서양인의 논의에 비하면 한국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글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클락(Clark)이 평가했듯이(, 12), 한동안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한 글로 남아있게 된다. M. N. Trollope,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Buddhism in Corea," 8 (1917): 1-40.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서양인의 이해의 잘못을 잡아주는 글의 도입부나, 삼귀의(三歸依)를 하나하나 설명함으로써 붓다 개념, 불교 교의, 승가 집단을 차.. 2023. 5. 29.
중국인의 절에 대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태도 우리나라 개신교계에서 절하는 것은 이단적인 행위로 취급된다. 몇 해 전 강남대학교 교양학부 이찬수 교수가 해임된 것은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서였다고 알고 있다. 종교 상징 앞에서 절하는 행위를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 행위라는 일컫는 공고한 담론이 형성되어 있다. 문상(問喪)에서도 개신교인의 절은 금지된다. 사자의 영정은 우상으로 해석되기에 절하는 대신 국화꽃을 사용하는 관행이 정착되었으리라. “절하기=우상숭배”라는 신학은 한국적 상황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양 선교사들의 중국 이미지를 분석한 책을 보면서 그것이 중국 선교 상황에서 발생한 담론임을 알 수 있었다. 라인더스(Eric Reinders)의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2023. 5. 29.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 이번에 두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게일의 경우에는 전에 조사한 것을 참고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 구성된 내용이다. 언더우드는 잘 정돈된 연구자라고는 하기 힘들다. 독창적이지 못한 부류의 연구자는 그가 무엇을 읽고 들었는가에 따라서 주장이 확확 바뀌는데, 그런 연구자를 통해 당대의 담론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더 좋은 점이 있다. 언더우드의 관점은 “개신교적인 편견”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데, 그의 서술에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편견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그 편견들 중에는 언더우드에 의해 형성된 것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번에 언더우드의 를 읽으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신학적인 종교 이론', 특히 자기의 하느님 관념에 꿰.. 2023. 5. 29.
정길당 이야기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정길당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 있었다. 개항한 지 얼마 안 되는 1900년 언저리에 그녀의 행적들은 참 낯설다. 이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그녀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본다. 정길당에 대해서는 이만열의 “한말 러시아 정교의 전파와 그 교폐 문제,” (기독교문사, 1987)가 유일한 연구이지 않을까싶다. 이 논문은 정길당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전후 사정을 당시 문헌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논문에서 사용된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이상의 연구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길당(貞吉堂)의 아버지는 1860년대에 러시아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정길당은 러시아에서 태어.. 2023. 5. 29.
허시모 사건 ‘허시모 사건’은 한국 기독교사 중에서 매우 자극적인 사건이었고, 사회적인 물의도 많이 일으킨 사건이다. 허시모(許時模)는 미국인 안식교 선교사 헤이스머(C. A. Haysmer)의 한국이름인데, 기독교사 책에 실린 설명에 따르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25년 여름에 자기 집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따먹은 그 지방 어린이(12세) 김명섭의 뺨 좌우에, 염산으로 ‘됴적’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한 시간 동안이나 볕에 말린 후 풀어놓았으니, 이로 인해 됴적이라는 두 글자는 영원토록 그 아이의 뺨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미국 선교사가 어린아이의 얼굴에 해놓은 짓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미제 선교사를 욕하는 북한의 출판물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가 된다. 모퉁이돌 선교회 웹 게시판에 있.. 2023. 5. 29.
과달루페의 성모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Lady of Guadalupe)는 멕시코 가톨릭을 넘어서 멕시코 자체를 대표하는 종교 상징이다. 과달루페 성모에 대해서 우리말 자료도 다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은 생략할 수 있다. 우선, 어떠한 기적이 일어났는지 가톨릭 교회의 자료를 통해 보자. 성모께서 요한 디에고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은 한 아즈텍인(원명은 쿠아틀라테우악: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발현하신 것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의 일이었다. 영세 후 날이 갈수록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던 요한 디에고는 12월 9일, 지금의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이른 새벽.. 2023. 5. 29.
인디언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 카테리 테카크위타(Kateri Tekakwitha) 북미 원주민의 기독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낯선 성인 하나를 만나 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인디언 전통과 천주교 전통이 어떻게 결합하였는가라는 쟁점이 흥미롭고, 한 명의 인디언 성인을 배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부분도 흥미롭다. 결국에는 북미 원주민에 대한 바티칸의 정치적 배려에 의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북미 지역을 방문하기 몇 년 전에 복녀로 인정받게 된다. 1650년대 예수회는 이로쿼이 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667년 테카크위타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세례를 주게 된다. 이 인디언 이름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녀는 손으로 민다,” “길을 더듬어 걷는 이,” “열심히 일하는 여자,” “가지런히 정리하는 이,” 등. 이 소녀는 세.. 2023. 5. 27.
휴런 인들에게 기독교는 처음에... 유럽인들이 처음 북미 대륙에 진출한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몇몇 에피소드를 발췌해본다. 옛날에 “뉴 프랑스”라고 불리던 지역, 지금의 캐나다 온타리오, 퀘벡, 미국의 메인 주에 해당하는 북아메리카 북동쪽 지역에서 활동한 기록이다. 정치적으로 프랑스가 지배하던 지역이었는데, 예수회가 그 지역 원주민(휴런족, 이로쿼이족, 알곤킨족, 몬태냐족 등)에게 선교하는 과정에서 남긴 기록들이다. 휴런 인들은 예수회 주거지에서 우연히 본 똑딱시계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시계의 기계적인 움직임과 소리 때문에 그들은 시계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의 대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신부들은 시계의 기계적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원주민에 대해 점잔을 빼며 우월감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 2023. 5. 27.
첫 출발의 설레임, 그 오버 1860년에 일본인 사절이 미국 방문을 했을 때, 그들이 남긴 기록에는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설렘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여행기를 분석한 마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다에 있을 때 거의 모든 여행자들은 배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감격했던 것 같다. 이것은 매일 기록되어 여행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일기에서 배의 위도와 경도를 표시하는 부호에 날씨나 기온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덧붙여진 것이 그 날에 대한 기록 내용을 구성한다. Masao Miyoshi,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9), 100-1. 이어서 마사오는 배 안에서의 흥분이 역사적으로 섬 밖으로 지평을 넓혀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이 느끼는 흥분이라고 설명.. 2023. 5. 22.
120년 전에 한국에 온 애리조나 사람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은자의 나라”(the hermit nation)와 함께 개항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구인들이 붙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명이다. 지금은 대항항공 기내지의 이름으로나 남아있는, 낭만적이면서도 지금 우리 모습과는 동떨어진 이름이지만, 오랫동안 서구인들의 머릿속에는 극동에 있는 정체된 작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저서는 퍼시벌 로웰의 (1888)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중요하다. 우리나라 이미지를 생성하여 유포시킨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로웰이 개항 초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고종의 어전을 처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옮긴이 조경철 박사가 그런 책을 19.. 2023. 5. 20.
제국주의, 술, 복음 1910년 선교 대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선교사 애비슨(O. R. Avison)은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기독교 선교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보고하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사역에서 일본의 영향과 연관되는 위험은 다음과 같다. 만일 선교사들이 일본과 협력하면, 일본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한국 백성의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일본 맥주와 위스키가 엄청난 양으로 수입되어 왔으며, 술의 소비가 그에 따라 급증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런 습관은 복음 전파에 반대가 되고 있으며, 이 시점의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애비슨이 에딘버러 선교대회(1910)를 위해 작성한 보고서. 안교성, “선교와 제국주의의 관계: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를 중심으로”에서 재인용) 제국주의와 .. 2023. 5. 19.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 대부분의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일제에 관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입장이었지만, 수뇌부의 선교사 중에는 일본에 대놓고 우호적인 이들이 있었다. 한일병합 당시에 한국과 일본 양국 감리교 감독이었던 해리스는 친일적인 성향을 가진 이였다. 그가 당시 일본에서 했던 인터뷰 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요즘 어떤 신문은 내가 합병론 찬성자인 것처럼 전하지만, 이것은 나의 진의를 오해한 것이다. 나는 정의의 기초 위에 세워진 한일 합동의 정책을 기독교주의의 견지에서 주장했을 뿐, 하등의 정치적 의미는 없었다. 내가 열망하는 바는 한국인의 안녕과 행복에 있다. 내가 한국에서 인민에게 말했던 것은 한일 양국이 잘 접근하여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의 지도자임은 하늘의 섭리라 해야겠다. .. 202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