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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트롤로프의 한국 불교 이해

by 방가房家 2023. 5. 29.

우리나라 성공회 주교를 역임했던 트롤로프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선교사였다. 그의 다음 글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글이지만 이해의 깊이는 충분히 느껴진다. 1914년 글으로, 그전의 한국 불교에 대한 서양인의 논의에 비하면 한국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글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클락(Clark)이 평가했듯이(<<Religions of Old Korea>>, 12), 한동안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한 글로 남아있게 된다.

M. N. Trollope,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Buddhism in Corea," <<Transaction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8 (1917): 1-40.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서양인의 이해의 잘못을 잡아주는 글의 도입부나, 삼귀의(三歸依)를 하나하나 설명함으로써 붓다 개념, 불교 교의, 승가 집단을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본문 내용에서도 기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해의 깊이가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내가 트롤로프의 글에서 느끼는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불교학 일반과 한국 불교라는 특수한 사례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불교학 일반의 지식과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괴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불교를 공부할 때 느끼는 것은 서구에서 형성된 불교학 체계와 한국에서 경험하는 불교 이해에는 아귀가 맞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트롤로프도 분명 그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불교학 일반에 맞추어 정리된 그의 글 사이사이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언뜻 스며 나온다. 예컨대 그는 불교를 설명하기에 앞서서 불교를 단일한 체계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불교는 “외부 요소를 체계 내의 것으로 흡수하는 능력”(15)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들에서 불교와 민속이 만나 지역 특유의 불교문화를 이룬 것을 예거한 뒤, 한국의 경우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불교 사원들에 칠성각(七星閣)과 산신각(山神閣)이라는, 본래의 불교와는 큰 상관이 없는 두 보조 전각이 있다.”(15)
다양한 종류의 붓다와 보살 개념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한국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미래불(未來佛) 미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이다.
“이 ‘앞으로 올 구세주’의 형상은 한국 불교 사원 제단에서 흔히 발견되지는 않지만, 미륵은 들판에 외따로 서있는 석상에 항상 붙여진 이름이 되었다. 이 석상들은 큰 규모에 오래된 것들이 많으며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미륵은 (일본의 보디 다르마처럼) 한국에서 모든 그런 석상들에 통용되는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이며, 거기엔 부처라는 이름은 붙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미륵 신앙에 대해서는 더 고찰이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다루어질 수 없다.”(18)
미륵의 개념 설명이 한국의 마을에서 신앙되는 미륵을 직접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트롤로프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 운만 띄워 놓은 채 다음 논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 차이에 대해서 그가 의식하고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한국 불교의 특수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은 글 말미에 더 연구할 것으로 제안한 네 가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한국 불교사의 인물들에 대한 연구를 강화할 것. 한국에 불교를 전한 이들과, 지공, 무학, 나옹 등에 대한 연구를 당부한다. ②한국의 불교 문헌, 특히 한국에서 어떠한 불경이 소장되고 번역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 ③한국의 여러 사찰들을 나열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를 당부. ④한국 사찰의 독특한 가람 배치에 주목할 것.

나는 마지막 “가람 배치”에 대한 그의 관심에 눈길이 간다. 왜냐하면 그는 이 가람 배치에 대한 이해는 신학적으로 접목하여 한국의 토착적 교회건축의 명작인 성공회 강화 성당을 지은 이이기 때문이다. 트롤로프는 주교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 시청 앞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 건축을 시작한 이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강화도에서 활동 하던 시절에는 강화 성당과 온수리 성당을 건축한 이이다. 온수리 성당이 한국 교인들의 입김이 더 많이 들어간, 그래서 한국적 양식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강화 성당은 온전히 트롤로프의 한국 불교와 사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신학적 기획 아래 건축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 건물의 불교적 양식에 대해서는 이덕주 선생님의 <<눈물의 섬 강화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 2002), 35-56을 읽을 것. 트롤로프의 이 “신학 작품”에 응용된 불교적 구조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다. 시간 될 때마다 강화도에 가서 더 음미하고 따져볼 요량이다.
(올 여름에 방문해 찍은 성공회 강화성당 모습)
 
Cf.
저자가 이 글에서 기독교적 편견을 드러내는 유일한 부분은 선종(禪宗)의 수도를 “끊임없이 울려대는 징과 북소리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주문을 단조롭게 외우는 것(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심지어는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계속되는)”(28)이라고 묘사한 대목이다. 이 묘사는 레인더스(Eric Reinders)의 <<Borrowed Gods and Foreign Bodies: Christian Missionaries Imagine Chinese Religion>>(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에서 지적된 바, 아시아 종교의 의례를 바라보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반의례적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어서 트롤로프는 불교의 신비주의가 공허한 것인데 반해, 기독교의 신비주의는 생명력이 넘치는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강화 성당 한켠에 있는 "조마가" 기념비. 온수리 성당에도 그의 비석이 있는 것을 보았는 데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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