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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중국인의 절에 대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태도

by 방가房家 2023. 5. 29.

우리나라 개신교계에서 절하는 것은 이단적인 행위로 취급된다. 몇 해 전 강남대학교 교양학부 이찬수 교수가 해임된 것은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서였다고 알고 있다. 종교 상징 앞에서 절하는 행위를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 행위라는 일컫는 공고한 담론이 형성되어 있다. 문상(問喪)에서도 개신교인의 절은 금지된다. 사자의 영정은 우상으로 해석되기에 절하는 대신 국화꽃을 사용하는 관행이 정착되었으리라.


“절하기=우상숭배”라는 신학은 한국적 상황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양 선교사들의 중국 이미지를 분석한 책을 보면서 그것이 중국 선교 상황에서 발생한 담론임을 알 수 있었다. 라인더스(Eric Reinders)의 <<빌려온 신과 외국인의 몸Borrowed Gods and Foreign Bodies: Christian Missionaries Imagine Chinese Religion>>(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는 19세기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이 중국인들과 몸으로 부대끼는 과정에서 어떠한 문화적 이미지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였는지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외국인과의 만남에서 상호간의 이해를 일차적으로 매개하는 것은 몸을 통해서임을 강조한다. 우리들도 외국인에서 처음으로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생김새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몸을 통한 일차적 만남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의 7장 “우상숭배적인 몸”(The Idolatrous Body), 8장 “절하기와 절하지 않기”(Obeisance and Dis-obeisance)에서 절에 관련된 선교사들의 견해가 집중적으로 분석된다. 그 내용을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중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가졌던 전형적인 태도는 의례적인 것에 대한 혐오인데, 이것은 중국의 이교 전통에 대한 묘사와 결부되어 나타났다. 선교사들의 서술을 보면 육적인 중국 종교(bodyful Chinese religion), 의미 없는 의례적 행위의 반복에 대한 묘사가 많다. 그 중에서 우상에 절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정신이 결여된 육체적 종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개신교의 반육체적, 반의례적 태도는 반-가톨릭적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가톨릭 전례를 비난할 때 쓰이는 언어가 중국 의례를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었으며, 가톨릭 개종에 대해서는 “이단에서 다른 이단으로” 옮긴 것이라는 혹평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지녔던 빅토리아적인 정서는 건강함 정신과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표현은 당당한 육체로 나타난다. 그들은 꼿꼿한 자세를 선호하였다. 직립한 모습은 남성적인 당당함을 보여주는 것인 반면에, 중국인들이 바닥에 닿도록 절하는 모습은 여성적이고 나약한 것으로 비추어졌다. 책표지 그림이 잘 보여주듯이, 절하는 중국인을 일으켜 세우는 장면의 묘사는 어둠을 빛으로 인도하는 대목과 오버랩 되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절에 대한 당시의 선교사들의 정서는 찬송가, “From Greenland’s Icy Mountains”(전체 가사, 우리나라에서는 “저 북방 얼음산과”로 불리는 노래이다)의 한 대목에서 잘 표현된다. "The heathen in his blindness bows down to wood and stone."
 
영어 사전에는 "kowtow"라는 단어가 실려있다. 중국과의 만남에서 비롯한 단어이다.
kotow, kowtow [káutáu, -́tàu] n.【Chin.】 고두(叩頭)(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절).
kotow, howtow [káutáu, -́tàu] vi. 고두하다(to); 아부하다, 빌붙다(to).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절하는 모습은 서구인들에게 오래된 중국인 이미지 중 하나이다. 처음 영국 관리가 청나라 황제를 알현했을 때, 중국 측에서는 고두(叩頭)의 예를 강요하고 영국 관리는 “영웅적으로” 이를 거부하고 허리를 굽히는 서양식 인사를 드렸다는 에피소드는 절이라는 인사 방식을 놓고 벌어진 의미체계의 충돌을 잘 보여준다.

절을 우상숭배로 본 선교사의 견해는 분명 몸에 대한 그들의 문화적 판단과 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절이 예의가 아니라 서양인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해괴한 행동이라면, 종교적 행위로서의 절에 대한 가치판단이 우상숭배로 귀결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중국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내렸던 문화적인 동시에 신학적인 판단은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에 공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이와 관련된 한국에서의 선교사 자료들을 검색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선교는 기본적으로 중국 선교와 일본 선교의 영향 아래 존재했다. 공유된 양상을 확인하는 일과 구체적으로 한국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하지만 절에 대한 현재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 태도는 "made in China"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절에 대한 보수적 신학은 분명 한국의 상황에 대한 토착적 신학의 영역에 들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학적 판단이 우리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었는지, 그 판단에 문화적 편견이 개입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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