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사자료278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아래의 자료들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의료선교와 관련된 것으로, 그 것이 단순이 인간주의적 치료 행위나,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과학적 우월성을 표방하는 ‘문명’의 상징으로, 또 전통종교의 주술적 행위를 압도하는 ‘치병 관리’로 인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James Huntly Grayson, Early Buddhism and Christinity in Korea (E. J. Brill, Leiden, 1985), p. 105.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다른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으로의 선교사역을 임명받았을 당시,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의 보수적인 정부를 한시적으로 전복했던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왕족.. 2007. 5. 31.
선교사 자료(4) - H.B. Hulbert H.B. Hulbert - 1886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로서 한국 이름은 할보(轄甫)였다. 그는 고종의 뜻에 따라 신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고, 독립운동에 힘썼던 외국인이었다. 인용된 글에서는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서술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종교상황은 영혼 숭배사상을 기초로 중층 다원적 성격으로 인식했다. 이처럼 한국종교의 중층다원성에 기반을 둔 종교인식의 모습은 게일(J.S. Gale, Korea in Transition, p.67-79)이나 존스(G.H.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 2007. 5. 30.
천주교와 무속의 만남 (1) 동티에 대한 비판 고목에 대한 신앙을 미신으로 공격하는 글이다. 성 보나파키우스가 게르만 사람들에게 선교할 때 그들의 성스러운 나무를 찍어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기독교 선교사에서 수많은 성목(聖木)들이 선교사에 의해 베어졌고, 우리나라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도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과학적 담론을 통해 미신을 배격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경향잡지 1912. 9. 30 제6권 262호, “미신(迷信)”(류기정), pp.419-421.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 대저 우리 조선에 소위 동티니 벌력이니 하는 허황된 미신으로 말미암아 생겨, 토목금수어별 등 물(物)을 위하고 혹은 고목을 버히면 동티가 난다 배암을 죽이면 벌력을 입는다 하여 부지 중 미신에 혹(惑).. 2007. 5. 29.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아래 두 글은 초기 개신교에 입교했던 한국인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샤프의 글은 당시 개신교인들의 다수가 개신교를 정치적 동기에서 많이 찾았음을 보여주며, 맥켄지의 글로 추정되는 두 번째 글은 당시 잦은 전란의 와중에서 보호받지 못한 민중들에게 개신교라는 다른 힘의 실체가 느껴지는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C. E. Sharp, "Motives for Seeking Christ," The Korea Mission Field 2-10 (Aug., 1906): 182-183.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부흥은 교회 밖에서도 널리 느껴진다. 교회 바깥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존재한다. 황해도에서는 세 단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기독교로 개종해온 많은 사람들의 주요 동기는 보호와 힘에 대한 열망.. 2007. 5. 25.
선교사 자료(3) - James S. Gale James S. Gale -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서 1888년에 조선으로와 한국종교연구와 한국 문학의 영역에 힘썼다. 여기서 제시된 글은 한국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 위대한 유일자로서 하나님 개념이 본래 있어왔다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기독교의 유일신관과의 유사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 전래 이전부터 한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시각으로 한국인의 종교성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서구적 신개념에 해당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앙형태를 한국에서 찾고자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내재성이 얼마나 감지되어 왔는가?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힘으로 간주되는가? 하나님은 인간사와 밀접하고 생명력 넘치는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는 방.. 2007. 5. 25.
선교사 자료(2) - Horace Newton Allen Horace Newton Allen - 1884년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의료선교사로서 한국이름은 안련(安連)이다. 민영익(민비의 조카)의 병을 치료해 왕가의 신임을 얻어 왕의 시의로 임명됐다. 인용문에서 필자는 조선인들이 종교적이지만 그들만의 종교가 없었다고 평가하고, 기독교 선교가 조선에서 왜 성공하게 되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특히 조상숭배와 관련해 부모에 대한 효성의 측면에서 성서와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반면, 기독교 선교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조상숭배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룰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언더우드(H.G Underwood) 또한 알렌과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언더우드도 조선인이 아주 종교적이라고 인식한다. 알렌은 조상숭배가 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본.. 2007. 5. 25.
동학과의 우호적인 관계 개신교가 널리 전파된 것은 동학난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두 전통간의 만남의 시점은 짧고 그리 다양하지 않다. 그러나 1890년대 중반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한 캐나다 출신 선교사 맥켄지의 기록에는 이 두 전통이 예외적으로 우호적으로 만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선교사와 동학지도자가 신학적 대화나 실제적 관계에 있어서 일시적이나마 상호 협력의 관계를 가진 순간이 묘사된다. 유영식 옮김,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멕켄지 선교사의 일생』(A Corn of wheat or the life of Rev. W. J. McKenzie of Korea)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85[1904]), 172-197. (1894년 12월 3일 일기 중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감사한다. .. 2007. 5. 25.
선교사 자료(1) W.M. Junkin William M. Junkin - 미국 남장로교회 최초의 한국 선교사로서 한국이름은 전위렴이다. 그는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사업을 추진하다가 1908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본문에 인용된 글은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의 동학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자료이다. 최제우에 의해서 시작된 동학은 성경대전(동경대전의 오기)을 경전으로 하고, 필자는 동학과 유, 불, 선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특히 가톨릭(서학)에 대한 대응으로 동학이라는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보면서 가톨릭과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다. .....동학은 1895년 경상도 경주에서 시작되었다. 경주는 부산으로부터 북쪽으로 4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학자였고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수년간 가톨.. 2007.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