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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교리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by 방가房家 2007. 5. 25.
아래 두 글은 초기 개신교에 입교했던 한국인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샤프의 글은 당시 개신교인들의 다수가 개신교를 정치적 동기에서 많이 찾았음을 보여주며, 맥켄지의 글로 추정되는 두 번째 글은 당시 잦은 전란의 와중에서 보호받지 못한 민중들에게 개신교라는 다른 힘의 실체가 느껴지는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C. E. Sharp, "Motives for Seeking Christ," The Korea Mission Field 2-10 (Aug., 1906): 182-183.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부흥은 교회 밖에서도 널리 느껴진다. 교회 바깥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존재한다. 황해도에서는 세 단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기독교로 개종해온 많은 사람들의 주요 동기는 보호와 힘에 대한 열망이었다. 시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뭉쳐왔다.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졌다. 태탄에서 있었던 일은 현재 기독교에 대한 관심 이면에 놓인 동기를 보여준다. 여러 사람들이 교회에서 제명당한 마을 유지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일진회, 저기엔 다른 단체, 그리고 또 다른 단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중 가장 이익이 되는 곳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배운 사람이고 이런 일에 대해서 우리보다 아는 것이 많습니다. 어느 곳에 가입하는 것이 좋은지 조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단순히 결속에서 오는 보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들은 대답은, 다른 어느 곳도 능가하는 유일한 단체가 있으니, 그것은 기독교회라는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다른 동기는 위의 것보다는 더 세련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20세기의 긴장 속에서 조상들의 고대 문명의 실패를 자각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에 기반한 국가들이 오늘날 고급 문화와 문명을 지닌 국가들임을 보고 옛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 대다수에게 기독교는 오직 문명을 뜻한다. 그들은 기독교 자체와 그것의 결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학교, 서구적 지식, 서구 문화를 요청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영적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기독교의 영적 본성에 대해 가르치면 이를 외면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세 번째 단계도 있다. 많은 이들의 마음에 진정한 영적 배고픔과 하느님 영의 진실된 역사하심이 존재한다. 오래 전에, 한국의 관점에서 학식이 있는 한 사람이 예비 신자가 되었지만 교회나 기독교의 영적 측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봄에 그는 세례 시험 기간 전이었다. 그는 오랜 동안 예비 신자였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겨울 그는 큰 변화를 체험하였고, 모든 것이 그에게 달라 보였다. 그는 전에도 성경을 공부했었지만, 이제 성경은 그에게 새로운 책이었다. 모든 것이 달리 보였고, 그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은 이제 촉망받는 새 집단을 이끄는 영이다. 봄에 내가 감독했던 시험에서, 겨울 동안, 특히 1,2월 사이에 성령의 깊고 진실된 역사하심이 이 선교지 곳곳에서 경험되었다.



"Seven Months among the Tong Haks," The Korean Repository 2 (Jun., 1895), 205. (이 글의 저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내용상 맥켄지의 글로 추정된다)


나는 갑자기 엄청나게 인근에서 유명해졌다. 한국 사람들이 내가 일본군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데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집 앞에 기독교 기(旗)를 걸어달라고 요청하러 온 적이 있었다. 반란자와 충신, 기독교인과 귀신 숭배자 등 모든 색깔의 믿음이 하나가 되어 성심껏 깃대를 세웠다. 깃발은 하얀 바탕에 성 조지의 십자가가 가운데 있었다. 모두 모였을 때 우리는 깃발을 게양하고 함께 “주 예수 이름 높이어”(All hail the power of Jesus name)를 한국말로 불렀다. 날마다 순수와 타인을 위한 희생의 표상은 바람에 나부꼈고, 몇 마일 밖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쉽게 이해되는 설교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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