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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천주교와 무속의 만남

by 방가房家 2007. 5. 29.
 (1) 동티에 대한 비판

고목에 대한 신앙을 미신으로 공격하는 글이다.  성 보나파키우스가 게르만 사람들에게 선교할 때 그들의 성스러운 나무를 찍어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기독교 선교사에서 수많은 성목(聖木)들이 선교사에 의해 베어졌고, 우리나라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도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과학적 담론을 통해 미신을 배격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경향잡지 1912. 9. 30 제6권 262호, “미신(迷信)”(류기정), pp.419-421.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 대저 우리 조선에 소위 동티니 벌력이니 하는 허황된 미신으로 말미암아 생겨, 토목금수어별 등 물(物)을 위하고 혹은 고목을 버히면 동티가 난다 배암을 죽이면 벌력을 입는다 하여 부지 중 미신에 혹(惑)함이 있으니 이는 혹 어떤 이가 여러 해 된 고목을 담대한 마음으로 버힌 후 곧 위석하여 알거나 혹은 죽는 일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귀신에 어두운 자는 조금 이상한 나무를 보면 그 나무에서 무슨 벌이나 아니할까 공연히 두려운 마음을 발하여, 심한 자는 당장 그 나무로서 귀신의 호령이 내리는 듯이 생각하여...  무당을 청하여 음식을 차려가지고 그 나무 밑에 가서 빌며 낫기를 구하니 어찌 이것이 다 어리석은 자의 미신이 아니리오...

이같이 어리석은 일을 행함은 몽매한 종족에 빠지기를 자처하는 큰 수치로다.  대저 세계에서 미개한 야만으로 들리는 아프리카의 수단 지방에 토민같이 사람을 살육하는 종족들은 배물교(拜物敎)를 행하려니와 사천여년 문화에 젖은 종족으로서 어찌 저 미천한 아프리카 토민들과 같이 무령(無靈)한 물건을 숭배하리오.  이는 도무지 자연계(自然界)에 밝지 못한 연고라.

그 위하는(그들이 모시는) 나무는 항용 고목이니 발육이 성한 것이 별로 없고 몸도 굵고 속은 다 썩어버린 빈 나무라.  이러므로 공기가 온 대에 부유(浮遊)하던 탄산까스라는 기체가 이런 속 빈 나무 속에 쌓여 있으니, 만일 사람이 이 나무를 버히면 나무가 넘어질 때에 그 속에 쌓여 있던 탄산까스가 일시에 일어나는데, 만일 사람이 호흡할 때에 이 기체를 마시면 사람은 당장 현기증과 두통이 나며 심하면 숨이 막혀 위험한 지경에 이르는지라...  그런즉 공기 중에 유독한 기체가 있어 고목나무 속 같은데 쌓여있음을 주의할 것이오, 부질없이 마귀의 소위로 알고 무령한 나무에 가서 빌지 말지로다.



(2) 무당의 대세

무당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은 문맥상 생활상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신병이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임종할 때 개신교를 거부하고 신부님을 불러 세례를 받았다는 대목도 재미있다.


경향잡지 1925. 2. 15. 제19권 559호, “무당이 대세를 밧고 별세,” p.60.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경기도 고양군 행주 본당에 한 무당이 있어 어려서부터 마귀를 심히 섬기다가 십구세부터 무당질로 생애를 할 세, 성당 가까이 사는 고로 열심한 교우의 착한 행실도 보고 간혹 성교(聖敎) 도리의 말씀도 들음으로써 성교의 진실함을 알아 비록 생명에 곤란이 막심하나 그 후로는 몇 해간 무당질을 아니하고 지내다가 너무 빈한하여 기갈이 자심하므로 자기 양심에는 비록 반대되나 다시 무당질을 시작하여 여러해 동안을 하다가 우연히 중병에 걸려 날이 갈수록 점점 병이 중하여 마침내 임종에 다한지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여 달라하고 또 죽은 후에는 자기를 위하여 미사까지 드려달라 하며 간절히 청하거늘, 곁에 있는 사람 중에 외인 하나가 병자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예수교인들이 곁에 있으니 청하여 오리까” 하매, 병자가 대답하기를 “아니라. 윗마을 성당에 가서 속히 신부님과 류마리아 부인을 청하여 오라”하며 자기 어린 딸을 보내어 기별하매, 신부는 이 말을 듣고 즉시 가보니 병가가 벌써 이왕에 이단하여 놓았던 물건들을 다 불사르고 바삐 세를 달라 청하는지라... 

무당으로서 이와 같이 세를 받고 선종함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평시에 주의 진실한 씨가 그의 마음 가운데 떨어진 연고이니 그 씨가 악마의 잡풀에 싸여 비록 일찍이 충실히 자라지는 못하였으나 그 때가 이르매 바야흐로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었으니...



(3) 축귀 기사

개신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축귀를 통해서 무속 전통이 기독교로 포섭되는 장면이 천주교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아니, 엑소시즘 전통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천주교에서 그런 기록이 더 풍부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906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 2], p. 36.

그 여자는 아름답게 꾸미고 곧 나타났습니다...  본인(로베르(Robert) 신부)은 그 여자를 내보내려고 성수를 뿌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사지를 떨며 땅에 쓰러졌습니다.  “왜 내게 물을 뿌리시오?”  그 여자는 그것이 성수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목이 비틀어져 머리가 완전히 삐뚤어졌습니다.  그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옆집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거기서 그의 목이 반 치쯤 더 길어졌습니다.  보기에도 흉할 정도로 그의 어깨에서 솟아나온 것 같았습니다.  교우들은 두려워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본인은 또다시 성수를 뿌렸습니다.  그 상태로 저녁 때까지 있던 그 여자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소리쳤습니다.  “신부님 앞에서는 원하는 것을 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  미사 후 본인은 또다시 성호를 그으라고 독려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이전에 한 일이나 이야기를 전연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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