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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선교사 자료(3) - James S. Gale

by 방가房家 2007. 5. 25.
 

James S. Gale -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서 1888년에 조선으로와 한국종교연구와 한국 문학의 영역에 힘썼다. 여기서 제시된 글은 한국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 위대한 유일자로서 하나님 개념이 본래 있어왔다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기독교의 유일신관과의 유사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 전래 이전부터 한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시각으로 한국인의 종교성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서구적 신개념에 해당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앙형태를 한국에서 찾고자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내재성이 얼마나 감지되어 왔는가?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힘으로 간주되는가? 하나님은 인간사와 밀접하고 생명력 넘치는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는 방법을 갖고 있는가? 그는 위대하고 경외로운 존재인가 아니면,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감정의 소유자인가?

    이러한 물음들은 한국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특히 영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과 교감을 하려는 선교사들과 같은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영적 경험은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특히 그들의 종교적 태도를 아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는 어떠한 종교도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의 영적 세계를 지배하는 확고한 교리(dogma)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리라는 것은 항상 가장 고차원적이고 순수한 종류의 신앙만을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도, 한국인들은 하나님이 살아 있다고 뿌리 깊게 확신해 왔고, 하나님은 항상 그들 가까이에 있어왔다.

    이 글의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완전한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몇 가지 인용구와 메모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국인의 영혼(soul)에 대한 보편적인 표현들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확실하게 연구되지 않은 단군전통만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한국에서도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하나님의 첫 계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높은 곳에 앉아 세상의 덧없음, 죄, 변화, 그리고 타락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위대한 창조자의 선포는 중국으로부터 왔다. 그는 문왕과 무왕과 함께 한 주(周)왕조의 하나님이었다. 당대의 기자, 그리고 후대의 공자가 하나님과 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은 수 세기가 지나가는 동안에 지속되어왔고 확대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인들과 항상 함께 존재했고 그의 이름이 다양한 형태로 회자되어왔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엘(El), 엘로힘(Elohim), 엘샤다이(El-Shadday), 여호와(Jehovah) 등과 같이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과 관계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쓴 것처럼, 한국인들도 다양한 이름을 써왔지만 그것들은 모두 영적이고,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같은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비록 그는 보이지는 않지만, 지상의 만사를 주관하는 자이다. 그 이름들에는 하나님(Hananim), 위대한 유일자인 천(天), 최고의 통치자인 상제(上帝), 모든 것을 보는 하나님인 신명(神明), 주인인 태주재(Tai-chu-jai), 신성한 왕인 천군(天君), 천상의 조화주인 천공(天工), 완벽함의 군주인 옥황(玉皇), 창조자인 조화옹(造化翁), 신령을 뜻하는 신(神)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 존재는 발람이 알았던 하나님, 코르넬리우스의 하나님, 에픽테토스의 하나님, 아우렐리우스의 하나님, 로마서 1장의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다. 한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해왔고, 그를 기쁘게 하길 원했고, 그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그를 믿었다. 다수의 한국 작가들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져왔다는 것을 누군가 충분한 증거를 발견했다. 세상을 통치하고, 계절의 축복을 주고, 심판의 벼락을 그의 손에 쥐고 있는 하나님의 내재성은 서구의 문자시대보다 훨씬 더 명확하다.

    비록 기독교의 빛을 받지 못했지만 진정 하나님을 추구했던 세네카와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초창기부터 있었다. 터툴리안이나 락탄티우스 그리고 심지어 성 어거스틴 자신도 세네카의 말을 칭송하면서 인용한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이러한 신앙의 자료들을 읽는 사람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무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런 증거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인용문들은 수 없이 많이 있다. 여기에 제시된 인용구들은 2000년간에 걸쳐있는 백가지가 넘는 예들 중에서 선택되어진 것들이다. 나는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이것들을 열거할 것이고, 그래서 독자들은 얼마나 위대한  이름이 시대를 걸쳐서 계속되어왔는가를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A.D. 22년

    기원후 22년에 고구려의 왕은 부여 왕에 대항할 군사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는 적군의 전쟁에서 패하고 적군의 엄청난 세력에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궁지에 몰렸고 군량도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God)에게 기도했고, 하나님은 짖은 안개를 보내주어 양쪽의 군사들을 완전히 감쌌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달아날 수 있었다.


A.D. 196년

    백결 선생은 어디나 수금을 가지고 다녔다. 즐거울 때든 슬플 때든, 수금은 근심이나 기쁨을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이 새해를 즐기고 있을 때, 그는 홀로 집에 남아 극심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이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을 때, 선생은 하늘을 보고 한숨 쉬면서 말한다. “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려있고, 부와 가난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닥칠 것을 막을 수 없다. 마치 우리에게서 떠난 것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왜 그리 걱정하느냐?”


A.D. 750


    신라의 왕이 죽었을 때, 신하들은 주원(Choo Wun)을 후계자로 내정했다. 주원의 집은 경주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었다. 폭우가 쏟아져 주원의 집은 고립되었다. 그때 신하 중 한명이 왕에게 말했다. “왕권의 높은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결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비가 혹시 하나님이 우리의 결정에 마음 내키지 않는 것은 아닌지 사료되옵니다.” 모두 그가 말한 것에 동감하고, 주원에 대한 임명을 철회했다. 그 대신에 선왕의 형이 대신 임명되었다.


A.D. 857

    여덟 번째 달 가을에 왕은 병들어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다. 우리의 날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고, 나는 그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그러니 남아 있는 너희들은 나에 대해 지나치게 슬퍼할 필요 없다.”


A.D. 982

    최승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당신의 위엄이 모든 쓸데없는 희생제의와 기원을 없애버리고 대신에 하나님께 바쳐질 영혼으로 정의로운 삶과 회개의 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근심은 사라지고 축복은 내릴 것입니다.”


A.D. 1123

    임완(林完)은 왕에게 전했다. “외적 표현이 아닌, 오직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희생은 하나님께 향기를 전할 수 없고 오직 정의로운 삶으로만 가능합니다.”


A.D. 1200

    이규보는 딸의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빛나는 눈과 같은 얼굴을 한 내 작은 딸아

너처럼 밝고 총명한 사람을 전에는 본적이 없단다.

너는 달콤하고 밝게 빛나는 것을 얘기했지

앵무새보다도 더 나은 소리를 들었지

올해 너는 네 살이었단다

붓으로 너는 처음에 기초적인 수업을 받았지

아아, 슬프다. 네가 가버린 지금 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너는 섬광같이 왔다 사라지는 구나

봄날에 이제 갖 날개 짓을 시작한 너는

새장 안에 갇혀 있는 내 작은 비둘기.

이 애비는 하나님을 알기에 조용히 기다릴 뿐,

그러나 네 애미의 눈물은 무엇으로 닦아줄런지

우리에게 삶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을 걷어 가시는 하나님

우리는 돌고 있는 그의 운명의 수레바퀴에 걸려있네”


A.D. 1352

    박의중은 공민왕에게 전했다. “밤낮으로 전하의 행동을 보살피시고, 자비롭게 백성들을 위해 존경과 공덕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높은 분께서 전하께 한 약속에 대한 알맞은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D. 1389

    서울의 성벽을 쌓은 조준은 송도에 있는 고려의 마지막 왕에게 전했다. “폐하께서 하나님은 거울처럼 마음을 읽어주신 다는 것을 명심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전하께서 누군가에게 상을 내리려할 때, 우선 그 자가 하나님께서도 상을 내릴만한 자인지 생각하시고, 누군가를 벌하시고자 할 때도 우선 그 자가 하나님께서도 벌할 만한 자인가를 생각하십시오.”


A.D. 1547

    권팔(Kwun Pal)은 나이 70에 포박 당했지만, 그것을 운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친구가 와서 그의 손을 붙잡고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자, 권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젠장! 나는 당신을 위인으로 생각했소. 근데 왜 그따위로 행동하시오? 삶과 죽음, 축복과 슬픔은 하나님의 손에 있소이다. 우리는 그에 복종해야하오.”


A.D. 1600

    김덕성(Tuk-Sung)은 일곱 번이나 고위관직을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축적하거나 백성을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가 빈곤에 놓여있는 것을 보고 농으로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도울 길을 찾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A.D. 1675

    송시열은 다음과 같이 썼다. “친구를 갈라놓고 불화를 일으키는 험담을 일삼는 나쁜 놈은 자기가 한 대로 되받을 것이다. 나는 내 긴 인생경험을 통해서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거울처럼 보는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자를 벌할 것이다.”


    이것들은 지금까지의 기록된 표현들 중 소수에 불과한 것들이다. 이런 인용구절에서 정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부족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의 하나님에 대한 모든 감정들을 통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지혜의 힘, 성스러운 정의, 선함과 진실함 안에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영이다.”

   

 James Gale, "The Korea's View of God," The Korea Mission Field 12/3 (1916): 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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