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 Hulbert - 1886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로서 한국 이름은 할보(轄甫)였다. 그는 고종의 뜻에 따라 신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고, 독립운동에 힘썼던 외국인이었다. 인용된 글에서는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서술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종교상황은 영혼 숭배사상을 기초로 중층 다원적 성격으로 인식했다. 이처럼 한국종교의 중층다원성에 기반을 둔 종교인식의 모습은 게일(J.S. Gale, Korea in Transition, p.67-79)이나 존스(G.H.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 2(1901):37-41)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혼재되어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여러 의례(cults)들은 논리적으로는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지만, 내적으로는 어떠한 반목도 없었고, 오히려 수세기 동안에 서로가 익숙해져 하나의 종교적 혼성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국인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요소를 선택하고 선택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종교적 혼성물의 어느 한 측면만 배타적으로 고수할 필요는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불교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떤 때는 조상숭배를 믿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한국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는 영혼숭배자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종교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보면 알게 된다. 만약 그때 그들이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종교일 것이다. 한국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신앙은 토속적인 영혼 숭배사상이며 그 밖의 모든 문화는 그러한 신앙 위에 기초를 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영혼 숭배사상이라는 것은 정령설(animism), 샤머니즘, 물신숭배(fetishism) 그리고 자연숭배 사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수세기 전이며, 곧이어 유교가 들어왔다. 불교는 너무 신비주의적이기 때문에 그것의 철학적인 면모를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없었지만, 국교로 되면서 그것의 독특한 특징은 오히려 커다란 장점이 되었다. 반면, 유교의 경우 지나치게 냉담하고 물질주의적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감정적 측면에 호소할 수 없어서 단순히 정치적 체계가 되면서 그것의 도덕적 요소는 대중의 큰 추종을 받지 못했다. 이런 두 종교는 점차로 토속적인 영혼숭배사상과 혼합되면서 하나의 종교적 혼성물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상한 소리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종교란 외부에서 들어온 의례와 아무런 관련 없고, 원시적 자연 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나님(Hananim)에 대한 믿음이다.....
『The Passing Korea 』 p.403-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