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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첫 출발의 설레임, 그 오버

by 방가房家 2023. 5. 22.

1860년에 일본인 사절이 미국 방문을 했을 때, 그들이 남긴 기록에는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설렘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여행기를 분석한 마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다에 있을 때 거의 모든 여행자들은 배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감격했던 것 같다. 이것은 매일 기록되어 여행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일기에서 배의 위도와 경도를 표시하는 부호에 날씨나 기온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덧붙여진 것이 그 날에 대한 기록 내용을 구성한다.
Masao Miyoshi, <<As We Saw Them: The first Japanese Embassy to the United States(1860)>>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9), 100-1.

이어서 마사오는 배 안에서의 흥분이 역사적으로 섬 밖으로 지평을 넓혀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이 느끼는 흥분이라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항해한 태평양이라는 외부세계는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려 코스모스화 되지 않은 ‘속된 공간’이었다고 지적한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굳이 역사적 배경을 따지지 않아도, 이것은 어느 정도 첫 여행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수성이기도 하다. 여행기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비대한 것, 도착 전의 기록에 지나치게 힘을 쏟는 일은 흔히 나타난다. 배로 여행했던 19세기, 20세기초의 여행기에서는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간단히 말하면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넘치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나중에 여행기를 정리하면 처음의 ‘오버’는 어느 정도 정리되겠지만, 그래도 그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미국에 가는 일본인들이 배 안에서 느낀 바를 보다보니 십년도 지난 내 경험이 오버랩된다. 나 역시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을 가던 촌놈이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강렬한 체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 여행 메모를 찾아보았다. 정작 여행지에서는 새로운 경험에 압도되고 일정에 쫓기다가 경험을 제대로 정리해 기록하지 못했으면서도, 목적지 도착 전까지의 느낌은 비교적 상세하다. 비행기 여행이야 열 시간 남짓이니 위치를 기록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 시간이 30일이었다면 열심히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기록했을 기세이다. 그 흥분이 남아있는 추억의 메모를 올려놓는다.
생애 처음으로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다. 말하자면 일종의 탈피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24년이 걸렸다. 진짜 어른이 된 듯한 느낌. 그러나 모두 남의 돈으로 이룬 일들.
어리둥절하게 표를 받아들고는 나는 검사에 순응한다. 그리고 합격한다. 통과제의적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Duty free!" 공항의 대합실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의 대합실과는 확실히 틀리다. 여기에는 부랑아와 걸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선택받고 검증받은 자들의 구역이다.……
 
비행기 내의 메카니즘을 음미하고 있다. 계산된 얼굴과 계산된 미소로부터 시작하여 나의 쾌락은 측정받고 계산된다. ‘모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나는 제공받고 있다. 식사에 이르러 그 치밀함이 극에 이른다. 고기와 밥과 빵, 떡, 샐러드, 해산물, 비스킷, 커피 등의 먹거리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은 쟁반에서 “이래도 만족하지 않을래?”라는 자신감이 내게 전해진다. 그래도 나는 잠시 투사가 되어 반항해 보고자한다. 약간 배가 부르지만 밥 하나를 더 달라고 해서 먹어치운다. 그러나 이러한 반항은 내게 만족감을 좀 더 안겨줄 뿐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투정에 대하여 웃음으로 받아넘기면서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비행기내에서 느껴졌던 ‘정치적’의미들. 어느 유원지에 대한 감상문[롯데월드에 대한 글을 말하는 듯]에서도 드러나듯이, 벗어나고자 할 때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은 더욱 철저히 옥죄어 오는 것 같다. 이 작고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는 중국 위를 날고 있다.
 
인도의 하늘을 날고 있다. 이로써 설날이라는 축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설날 연휴 때 출발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10시간이면 설날 때 부산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인데 나는 그 시간을 바레인에 가는데 쓰고 있다.(어디가 더 먼 곳일까?) 축제를 완전히 져버리고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경유지인 UAE의 두바이에 잠시 내림. 난생 처음 밟아 보는 외국땅. 아랍인들을 만나보다. 그러나 국제적인 자유시와도 같은 공간인 공항에서의 한시간은 별다른 감흥없이 지나가다. 영양가 없는 아이쇼핑만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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