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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83

지볼트 기록에 나오는 조선 종교 기술 1823-29년에 일본에 체류했던 독일인 의사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위키 항목)는 20권에 달하는 일본에 관한 기록 을 출판하였다. 그 중 한 권이 조선에 관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은 나가사키에 있는 인공섬 데지마에만 머물 수 있었다. 지볼트는 데지마에 머무는 동안 표류해온 조선 어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 표류해 온 조선 어민들은 나가사키로 이송되어 머물다 조선으로 보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지볼트는 조선 귀환을 기다리는 어민들과 이웃해 있던 관계로 그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제한된 환경에서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소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이 꼼꼼한 독일인은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언어학적인 견지에서.. 2023. 4. 26.
혼마 규수케가 본 한국 종교 이번에 읽은 개화기 자료는 다소 특이하다. 일본인 낭인(浪人)이라고 할 수 있는 혼마 규스케가 비판적인 눈으로 조선을 기록한 책이다. 혼마 규스케, 최혜주 옮김, (김영사, 2008[1894]). 이 책에도 ‘종교’라는 항목에 대한 서술이 등장한다. 한국 전통 종교들의 난맥상을 기술하는 내용은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고 당시 조선을 기술하는 다른 서술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종교 없음’이라는 서술 방식은 당시 선교사들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종교가 없는 나라’라는 선교사 담론을 이미 수용한 채 한국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이니 ‘종교’(宗敎)라는 용어를 적용한 초기 기록에 해당된다. 원문에서도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국립중앙전자도서.. 2023. 4. 26.
<성호사설> 중에서 귀신, 무속 이야기들 이익의 을 읽다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익의 중 중에서도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 몇 개를 뽑아 실은 책(이익, 민족문화추진회 엮음, [솔, 1997].)을 읽다가,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가는 몇 가지를 골라 찾아보았다. 내 눈길이 갔던 것은 대부분 당시 무속에 대한 내용들과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실학자’ 이익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유학자로서의 성호가 갖고 있던 무속에 대한 관점과 귀신론이 드러나는 자료들로서 흥미롭게 읽었다. 인용된 내용은 민추 웹페이지의 것이라 책과는 다소 번역이 다를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 하기 위해서 일단은 링크와 약간의 발췌를 해 놓았다. 제7권 무(巫): 합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무속을 부.. 2023. 4. 26.
조너선 스미스의 <Religion...> 중에서 조너선 스미스의 논문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의 처음 한페이지 반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종교 개념에 대한 대표적인 논문이어서 많이 언급되고, 특히 나도 자주 써먹는 대목이다. 예를 들면 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이번에 아예 필요한 부분을 번역해버렸다. 이 논문의 대강을 보려면 이 발제문을 참고할 것. Jonathan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in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179-180. “신세계”(New World)에 대해서 영어로 쓰여진 두 번.. 2023. 4. 26.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타자 Bernard S. Cohn, "History and Anthropology: The State of Play,"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22-2 (1980): 198-221. 파일: Cohn-History_Anthropology.pdf 버나드 콘의 글은 인류학과 역사학의 현황과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황 판단이 예리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제시해주는 앞날의 그림(그중 많은 것들은 이제는 실현된 것이지만)에서 공감이 가는 바가 크다. 그는 서두에서 인류학과 역사학이 인식론적 차원(the epistemological level)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공통의 과제를 역설한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는 “타자”(othernes.. 2023. 4. 26.
'천주' 발견의 뒷이야기 최근에 내가 했던 일은 한국 기독교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쓰이기 시작하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가 기독교를 만나(혹은 동학을 비롯한 민족종교들을 만나) 쓰임을 받았다는 믿음은 일종의 신화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하느님’은 기독교와의 만남의 계기에서 출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만남을 추적하는 일을 아직 많이 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천주(天主)’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처럼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아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천주가 사용된 것은 마테오 리치의 활동을 통해서이다. 리치가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뒷이야기가 있다. 리치의 2권 3장에 나.. 2023. 4. 26.
서학에 대한 유학자들의 반응 중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서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체계에 대한 반응을 보일 때, 일단 그것은 그들의 지적인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남인 계열 일부의 유학자들의 서학 수용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밀려나 있는 데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인가? 천주교를 공격한 유학자들은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사상(더 나아가 근대화)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것인가? 처음에 서학을 받아들였다가 이후 배교(背敎)한 성리학자들은 자기 한계를 벗지 못하여 철저한 기독교 신앙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일면적이고 잘못된 방향의 설명을 이끌어낸다. 단 베이커(Don Baker, "A Confucian Confronts Catholicism," 6(1979-1980))는 연구 과정에서 한국 학자들의 위.. 2023. 4. 25.
종은 주인의 돈이다 1850년대, 남아프리카 선교사 콜렌소(John William Colenso)는 줄루족 은기디(William Ngidi)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서를 읽던 은기디는 다음 부분에서 아연실색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남종이나 여종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 종이 그 자리에서 죽으면, 그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나 이틀을 더 살면, 주인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20-21) 은기디가 읽은 성서에서는 재산이 “돈”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종을 돈이라고 일컫는 구약의 비인륜적인 태도에 은기디는 항의한다. 콜렌소 선교사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당시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 지성적인 현지 기독교인과 함께 .. 2023. 4. 20.
스테파노스의 종교 스테파노스(Stephanos)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한 폴란드인이 1700년대 말 (지금의 남아공에 있는) 케이프 타운에 도착하였다. 그는 원래 용병으로 그 곳에 온 것이었는데, 용병 일이 끝나고 나서는 한 가게에 자리를 구했다. 그는 가게에서 위조 지폐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위조 사실이 적발되고, 그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녹슨 못으로 티크 나무로 된 벽을 갉아내고, 나무 부스러기는 자기가 먹고 빈자리에는 빵을 채워넣는 방법으로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스테파노스는 북쪽으로 가,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 Society)의 새 선교 본부로 피신한다. 선교사들은 스테파노스가 자기들을 죽을까봐 겁이 나 그를 쫓아냈지만, 기독교인다운 친절로 성경, 고기, .. 2023. 4. 20.
한국이라는 컨텍스트 한국 문화가 성서에게 어떠한 컨텍스트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처음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개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19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이 이 미지의 땅에서 오히려 자기 땅보다도 성서의 맥락에 친숙한 면들을 만나 경이로워했다는 기록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러니까 본국인 북미보다도 한국 땅에서 성서의 배경인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에 근접한 모습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발견들은 우연한 것들이고 본질적인 연관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가 흔히 그렇게 하듯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우리 생각 방식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러한 발견은 당사자의 삶에서 중요하다. 성서를 삶의 텍스트로 살아오던 이.. 2023. 4. 20.
만남 이야기들 에는 한국인들과 기독교의 만남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감사할 노릇. 다만 이 책에서 견지하고 있는 신학적 관점에는 이론이 있다. 전통의 상징체계와 기독교 상징체계의 상호교섭을 일종의 난맥상으로 보고 이런 것을 고쳐 “기독교 정통”을 잘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적인 태도가 은연중 드러난다. 관점의 차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아쉽다. 새로운 이론적 성찰의 조명을 받고, 기독교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언어를 구성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좋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매달리고 있는 게 그런 작업인데, 나 역시 아직 그럴듯한 언어를 제공하지 못하는 마당에 남 작업에 아쉽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처지는 못된다. 이제 다 .. 2023. 4. 20.
수용과 만남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문화의 만남이란 본질적으로 하나의 상징/표상과 또 다른 상징/표상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그것을 종교문화의 ‘수용’이라고 언표한다면 그것은 다른 ‘우주론’과 ‘신화-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수용’이라는 개념은 문화 현상의 기술에서는 그 적합성을 승인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수용’에 대칭되는 ‘만남’의 개념이 지닌 함축을 고려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이란 이미 사실 기술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독교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우주론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 수용’이라는 표현은 참 가볍다. 우주론은 다른 것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지 전면적으로 교체될 수 있는 .. 2023. 4. 20.
'바로 옆에 있는 타자' 개념 뒤집어보면, 남을 열나게 욕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란 점, 타자 개념은 자아 개념을 확립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 조나단 스미스는 종교사의 사례들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멀리 있는 타자보다는 인접해있는 타자가 더 위험하고 문제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멀리있는 다른 종교보다는 같은 교단 안의 적에 대해 이단이라고 소리치며 피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이다. 유사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특히 종교의 담론이나 상상력에 널리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하여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 양 꾸며 정복자 신화를 창조해서, 자기 주변의 비슷한 사람들 (그 방법이 아니면 구분될 수 없는 사람들인) 가나안인들과 자기를 차별화한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그리스 .. 2023. 4. 20.
주니페로의 기록 중에서 비슷한 고도에서 이방인(캘리포니아 원주민) 두 명이 다시 보였다. 우리 인디언들이 가서 도망가지 못하게 주의하면서 그녀석들을 잡아왔다. 한 녀석은 우리 손에서 빠져나갔으나 다른 한 녀석은 다시 잡혔다. 우리 인디언들은 그 녀석을 묶얶다. 이건 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은 자신을 데려갈 수 없다고 항변하면서 무릎과 다리가 까질 정도로 땅바닥에 세게 꼴아박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녀석을 내 앞에 데려왔다. 내 앞에 데려와서는 무릎을 꿇렸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요한의 복음서를 낭송하였다. 성호를 긋고나서 풀어주었다. 그는 극단적으로 겁먹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정부 관리에게 데리고 가서 안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George Tinker, Missioanry Conquest, .. 2023. 4. 20.
혹정필담에서 “혹정필담” 편은 연암이 중국의 선비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인데, 연암과 왕혹정이 천주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대목이 나온다. 둘 다 천주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왕혹정은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저 이른바 야소는 마치 중국말에 현인을 군자라 하는 것과 번속에 승려를 나마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야소는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공경하며 온세계에 교리를 전했으나, 나이 서른에 극형을 입었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이 몹시 애모하여 야소회를 설립하고는 그의 신을 높여 천주라 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교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눈물지며 슬퍼하여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글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날카로운 맛이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약자들의 원한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 202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