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피스(Griffis, William Elliot)는 서양인들의 한국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은둔의 나라, 한국>>을 저술한 목사이다.(위키 항목) 그는 일본에서 집필활동을 하였는데, 그의 주전공영역은 한국이라기보다는 일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한국 이해는 일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즉 서구인으로서 일본이라는 동양국가를 이해할 때 적용되었던 이해의 틀이 한국에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일본의 종교>>에서 찾아본 몇 구절들. 이 책은 한국에 대한 저술들이 나온 이후 집필된 것이어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일본 이해에 영향을 준 것인지, 일본 이해가 한국에 영향을 준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좀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Griffis, William Elliot, The Religions of Japan, from the Dawn of History to the Era of Meiji (4th ed.;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12[1895]). 이번에 살핀 것은 책의 1장 앞부분이다.(첨부파일: Griffis_Religions_of_Japan_ch1.pdf )
1. 앞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종교학, 그의 표현을 따르면 비교종교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사가 종교학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태도로, “현대 학문 중에서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종교학”(4)이라는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굉장하다.
종교학(the science of Comparative Religion)은 기독교의 자식이다. … 종교학은 예수의 종교가 낳은 직계자손이다. 이것은 두드러지게 기독교적인 학문이다. “왜냐하면 종교학은 기독교 문명의 결과이며 기독교가 키워온 물음의 자유에서 추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학자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종교학이 무엇인지를 비추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종교학의 탐구를 시작했고, 원칙을 세웠으며, 자료를 수집하였고 그 장대한 구조를 형성해왔다.(4-5)
2. 그는 일본인들이 종교를 지니고 있는 모습을 “신도, 유교, 불교의 혼성(amalgam)”(11)이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유불도를 지니는 모습을 묘사하는 다른 서양학자의 묘사에서 틀을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저술들과의 선후관계는 따지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이후 한국인의 종교심성을 묘사하는 존스나 헐버트의 묘사의 틀이 여기서 분명히 제시된다는 점이다.(그들은 그리피스의 책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피스는 일본인이 종교를 간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기독교 신학의 용어를 써서 말하면, 신도는 신학을, 유교는 인간론을, 불교는 구원론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일본인은 신도로부터 신들을 배우고 애국심을 향한 열망을 얻으며, 유교로부터 사회생활과 윤리에 관한 교훈을 배우며, 불교로부터 그가 구원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희망을 얻는다.(11)
존스(Heber Jones)의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1901)에 나오는 다음 부분과 비교해볼 만하다.
한국인들은 이론적으로는 유교, 불교, 샤머니즘이라는 세 숭배의 성격을 구분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어지럽고 채 소화되지 않은 가르침과 믿음의 덩어리가 가망 없이 뒤섞이고 혼란스러운 채로 놓여 있다. 한국인은 셋 모두를 믿는다. 그는 개인적으로 유교식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부인이 후사를 위해 부처님께 기도드리도록 보내고, 아플 때에는 무속의 무당과 판수에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한국인은 세 체계들의 연합된 도움으로 복된 삶에 이르리라는 희망으로 셋 모두를 따른다.
헐버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불교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떤 때는 조상숭배를 믿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한국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는 영혼숭배자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종교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보면 알게 된다. 만약 그때 그들이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종교일 것이다. 한국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신앙은 토속적인 영혼 숭배사상이며 그 밖의 모든 문화는 그러한 신앙 위에 기초를 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영혼 숭배사상이라는 것은 애니미즘(animism), 샤머니즘, 주물숭배(fetishism) 그리고 자연숭배 사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H.B. Hulbert, <<The Passing Korea>>, 403-404.
3. 기층문화로서의 민간신앙을 인식하는 대목. 그리피스가 신도와 민간신앙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해당 부분을 읽어보아야겠다. 그가 사용한 주물숭배, 샤머니즘, 자연숭배 등의 용어는 선교사들이 한국의 민간신앙을 탐구할 때 사용된 용어들이다. 대나무가 일본 특유의 잡풀로 인식된 비유가 흥미롭다.
학자들은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으로 인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종교들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는 미신의 무성한 잡풀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주물숭배, 샤머니즘, 자연숭배, 혹은 수많은 형태의 이교주의 등, 그것을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간에, 거기엔 엄청난 실체가 존재한다. 일본 토지의 가시와 엉겅퀴 자리에 활발하게 가득 자라나는 죽순과도 같이, 그것은 어디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해서 없애기 힘든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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