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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바로 옆에 있는 타자' 개념

by 방가房家 2023. 4. 20.

뒤집어보면, 남을 열나게 욕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란 점, 타자 개념은 자아 개념을 확립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 조나단 스미스는 종교사의 사례들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멀리 있는 타자보다는 인접해있는 타자가 더 위험하고 문제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멀리있는 다른 종교보다는 같은 교단 안의 적에 대해 이단이라고 소리치며 피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이다.

유사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특히 종교의 담론이나 상상력에 널리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하여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 양 꾸며 정복자 신화를 창조해서, 자기 주변의 비슷한 사람들 (그 방법이 아니면 구분될 수 없는 사람들인) 가나안인들과 자기를 차별화한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그리스 로마 종교 신자들에게는 적대적인 글을 쓰지 않았으나, 자기 가르침에 반한다고 자기가 주장한 동료 기독교인들에게는 항상 적대적인 글을 썼다. 몽골에 갔던 13세기 선교사 피안 델 카르피니의 요한과(John of Pian del Carpini)과 뤼스브렉의 윌리엄(William of Ruysbroeck)은 그 무서운 타르타르인들과 자기들의 유럽 기독교 문화 간의 많은 긍정적인 유사점들을 발견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과 교전중이었지만 말이다. 정작 그들이 가장 깊이 통감한 문제되는 차별성은 그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남아있던 경교(景敎) 기독교인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단으로부터 탈선, 퇴행, 그리고 혼합주의에 이르기까지, 같음을 주장하는 다른 것이라는 개념, 혹은 내적으로 투사되어 위장된 내부의 다른 것이라는 개념은 부정과 소외의 어휘를 숱하게 쏟아내었다. 각각의 경우, 다름의 이론은 근접한 ‘타자’에 적용될 때 ‘자아’의 이론을 서술하는 또다른 방식일 뿐이다.
(Jonathan Smith, “Differential Equations,” Relationg Religions, p.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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