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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당 이야기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정길당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 있었다. 개항한 지 얼마 안 되는 1900년 언저리에 그녀의 행적들은 참 낯설다. 이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그녀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본다. 정길당에 대해서는 이만열의 “한말 러시아 정교의 전파와 그 교폐 문제,” (기독교문사, 1987)가 유일한 연구이지 않을까싶다. 이 논문은 정길당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전후 사정을 당시 문헌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논문에서 사용된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이상의 연구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길당(貞吉堂)의 아버지는 1860년대에 러시아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정길당은 러시아에서 태어.. 2023. 5. 29.
허시모 사건 ‘허시모 사건’은 한국 기독교사 중에서 매우 자극적인 사건이었고, 사회적인 물의도 많이 일으킨 사건이다. 허시모(許時模)는 미국인 안식교 선교사 헤이스머(C. A. Haysmer)의 한국이름인데, 기독교사 책에 실린 설명에 따르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25년 여름에 자기 집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따먹은 그 지방 어린이(12세) 김명섭의 뺨 좌우에, 염산으로 ‘됴적’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한 시간 동안이나 볕에 말린 후 풀어놓았으니, 이로 인해 됴적이라는 두 글자는 영원토록 그 아이의 뺨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미국 선교사가 어린아이의 얼굴에 해놓은 짓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미제 선교사를 욕하는 북한의 출판물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가 된다. 모퉁이돌 선교회 웹 게시판에 있.. 2023. 5. 29.
기독교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호감 인터넷 상의 대세는, 기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비호감이다. 네티즌을 어떻게 규정할 지, 현실과의 관계는 어떠한 지, 미리 논의해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일단 내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러하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회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는 것은 이것이 인터넷 사용 이후 달라진 정보 유통과 여론 형성 과정에 의해 새로 나타난 추세이며 앞으로의 종교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 십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전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평가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교인들끼리 알고 지나가는 일들이었다. 유명한 목사들이 조찬기도회를 통해 전두.. 2023. 5. 29.
강아지들의 천국 깜찍한 어린이의 질문이 세련된 신학적인 대답을 이끌어낼 때도 있지만(그래, 버지니아야, 산타 클로스는 있단다), 신학의 급소를 때릴 때도 있다. 꽤 오래된 일인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어딜 가고 있을 때였다. 특이하게도 버스 기사 아저씨는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았다. 전형적인 기독교인 목소리의 디제이가 한 어린아이의 편지를 읽어주고 있었다. 대충 내용이 이랬다. “어제 제가 사랑하는 강아지 **가 죽었어요. **는 하늘나라에 갔겠지요?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 사연을 읽고 나서 디제이가 멈칫하는 것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지나갔다. “하하... 귀여운 어린이의 사연이죠?” 그리고는 딴 이야기로.... 사실 대답은 “강아지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답니다”이다. .. 2023. 5. 29.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1897년 (The Sun)지 독자란에 버지니아(Virginia O'Hanlon Douglas)라는 이름의 소녀가 질문을 보낸다. “저는 여덟살이에요. 내 친구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해요. 아빠는 ‘썬 신문에 나오는 게 맞는 거야’라고 하고요. 뭐가 맞는 건지 말해주세요. 산타클로스는 있는 건가요?” 이 꼬마 독자에 대한 신문의 답변이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라는 제목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글이 되었다. 프란시스 처치(Francis P. Church)가 쓴 이 글은 매년 사람들이 찾는 글이 되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신문에 실렸다. (이 신문이 망한 1959년까지) 나중에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며(1974년, 1991.. 2023. 5. 29.
라디오 신부님, Charles Coughlin 라디오 신부님이라고 하면 다정한 어감이 들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Radio Priest"는 미국의 유명한 대중선동가(demagouge)이자 꼴통 보수 신부 카글린(Charles E. Coughlin)의 별명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에 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당시 중요한 대중 매체였던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많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매주 4천만명의 미국인들이 카글린 신부의 설교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가톨릭 교인들만이 아니라 개신교인들 역시 그의 팬이었다. 그의 강연 내용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사회가 극도로 암울하던 시기였다. 카글린 신부는 “사회 정의”를 외치며 불만에 가득찬 대중들의 정서를 자.. 2023. 5. 29.
기독교의 대안적 할로윈, “trunk and treat” 할로윈 데이가 조용히 지나갔다. 작년처럼 싸돌아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잠이나 잤다. 할로윈의 가장 대표적인 풍습은 "trick or treat"이다. 아이들이 동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trick or treat”라고 외치며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풍습이다. 어른들은 사탕과 초콜렛을 준비했다가 주는 것이 상례이다. 아무것도 안 주면 아이들은 집에가 계란을 던진다. 내가 사는 곳이야 인도 학생들이 주로 있는 아파트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을 턱이 없지만, 그래도 소심한 나는 마음을 좀 졸였다. 사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요구하는 초식은 “대접해줄래요(treat), 아니면 해코지 당할래요(trick)?”이다. 이것은 밥 달라고 돌아다니던 귀신들의 모습이 남은 흔적이다. 귀신도 .. 2023. 5. 29.
과달루페의 성모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Lady of Guadalupe)는 멕시코 가톨릭을 넘어서 멕시코 자체를 대표하는 종교 상징이다. 과달루페 성모에 대해서 우리말 자료도 다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은 생략할 수 있다. 우선, 어떠한 기적이 일어났는지 가톨릭 교회의 자료를 통해 보자. 성모께서 요한 디에고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은 한 아즈텍인(원명은 쿠아틀라테우악: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발현하신 것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의 일이었다. 영세 후 날이 갈수록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던 요한 디에고는 12월 9일, 지금의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이른 새벽.. 2023. 5. 29.
추도 예배, 한국 개신교의 의례 추도 예배는 한국 교회에만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면 잘 믿지 않는다. 하기사 교회사 공부하시는 분들께 그 얘기를 했는데 펄쩍 뛰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할 정도인데, 일반 교인들이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의례체계는 관혼상(冠婚喪), 거기까지이다. 천국에 가면 끝이니까. 죽은 조상을 기리는 제(祭)에 해당하는 의례는 서양 교회에는 (가톨릭 교회의 몇몇 의례를 제외하고는, 예를 들어 모든 성인 축일)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추도 예배는 제사에 반대되는 행위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이해한다. 둘은 연속선상에 있는 의례이다. 제사가 있던 자리에 추도 예배가 생겨났으며, 제사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추도 예배가 생겨난 것은, 장.. 2023. 5. 29.
욥에 관하여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구약성서의 욥기는 보고싶어하는 측면으로만 독해되는 텍스트 중 하나이다. 욥기는 한 의로운 신자 욥이 고난을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갑자기 재산이 날아가고, 자식들이 몽땅 죽고, 자신은 병을 얻어 온 몸에 종기를 뒤집어 쓴 비참한 몰골로 “잿더미” 위에 앉아있는 신세가 된다.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욥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지만 담담히 어려움을 받아들인다. 어려움에 처한 욥에게 헛똑똑이 친구들이 찾아와서 신학적 충고를 한다. 친구들이 갖고 있는 신학이란 게 지금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인과응보에 기반한 논리였다. 전에 어느 집사들이 나눈 대화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 예수를 믿는데 왜 강도를 만나?" / "예수 헛 믿은 거지 뭐…." / "그러게 말이야, 아 예수.. 2023. 5. 28.
자매님과 결혼할 수 있을까 학문의 무력함을 느끼는 일이야 허다하지만, 그걸 내 눈앞에서 가장 생생하게 느꼈던 순간은 교회다니는 여자와 연애 실패한 사람과 술을 마실 때였다. 종교가 뭔데 사랑을 갈라놓는 거냐고 피눈물을 쏟는 후배, 친구 등을 만날 때면 나는 궁색해지기 이를 데가 없다. 과연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이냐는 따가운 질문에 힘써 답하는 정도였다. 속시원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내 배움과 깨달음의 일천함을 곰씹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청춘남녀에게 개신교가 뜻밖의 변수로 등장하는 일이 자주 있다. 내 주변에서도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와 비기독교인을 사랑할 수 없는 그녀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여기 지식거래소 검색해봐도 그런 사연들이 쌔고 쌨다. 그런 사연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원론적.. 2023. 5. 28.
심한 말씀들 성서 뒤쪽에, 맨 마지막은 아니고 요한계시록의 바로 앞 편에 보면 한 두장짜리 작은 책들이 달랑달랑 붙어있다. 학술적으로는 공동 서신(Catholic Epistles)이라고 분류되는 작은 책자들. 이 녀석들 중에는 신약성서에 포함 될랑말랑 하다가 간신히 막차타고 경전 안으로 들어온 것들이 많다. 저술 연대가 상당히 후대이고 특정 신앙공동체의 의견을 담은 것이 많은 탓이다. 이들 책들은 예수 시대가 거의 백년이 지난 후에 쓰인 것들이라고 추정된다. 백년이면 기독교라는 새 종교가 상당히 성장했을 때이다. 그래서 이 책들엔 당시 종교의 변화상이 담겨있고, 종교사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 중 도드라지는 것은 당시 시점에서만 해도 신학적인 이견들이 많이 표출되었다는 것. 어떻게 예수를 믿는 .. 2023. 5. 28.
추수감사절이라는 미국 명절 이전에 논문에서 한국의 추수감사절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에겐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추수감사절이란 게 도대체 어떤 날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지금 한국 교회에서 그 날이 어떻게 모셔지는지를 잘 몰랐다는 것. 두 번째 문제는 여전하지만, 미국에 온 후로 적어도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어떤 날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감각을 얻어가고 있다. 그동안 내가 얻은 느낌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추수감사절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날이라는 것이다. 내 자신이 개신교 의례의 일환으로 이 날을 서술했고, 우리나라에서 개신교회에 의해 이 날이 소개되고 지켜지기 때문에 이 날을 기독교의 맥락에서 생각하지만, 사실 이 날은 미국적 가치가 구현된 날이다. 이 날을 종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기독.. 2023. 5. 28.
예수님, 이판사판 아닙니까 누가복음에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는 짧지만 묘미가 있어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2023. 5. 28.
그중에 으뜸은 사랑이라 오늘은 아름다운 성경 구절을 놓고 이야기해 보련다. 바울이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한은 주로 여러가지 복잡한 교회 문제들을 다룬다. 그런데 시시콜콜한 여러 논변들을 펼치다가 바울은 갑자기 눈에 띄는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하나 선보인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겸손한 운을 떼고 바울이 들려주는 사랑 노래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 202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