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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집단적 창작물 지난번 글의 연장선상에서 혼합현상에 대한 설명에는 창조적 개인과 비창조적인 대중의 구분이 남아있고, 이를 넘어서 대중의 창조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여러 생각을 해보는 중인데, 에 실린 웬디 도니거의 논문 "Post-modernism and -colonial -structural Comparison"에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어 옮겨놓는다. 가고일님이 지적한 개미떼가 모여 하나의 ‘초지성’을 만들어 다른 상대와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고, 대세 놀이니 드라군 놀이니 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개인적 차원과는 다른 집단적인 결과물이 생성되는 과정에도 관심을 갖는 중인데, 웬디 도니거는 “신화는 집단적 창작”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상기시켜주면서 이 문제에 대해 값진 통찰을.. 2023. 5. 16.
종교 현상에서 행위 주체(agent)의 문제 탈랄 아사드의 (Formation of the Secular) 2장에서는 “agent”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고, 개념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agent”, 어려운 개념이다. 영어 사전이 해석에 도움이 안 되는 단어인데, 나는 사회학 공부하시는 분들을 따라 ‘행위 주체’로 옮긴다. (그렇다면 'agency'는 'agent'가 하는 짓이므로 ‘행위’가 된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의미상 그러하다.) 종교학에서 행위 주체 개념이 왜 중요한가를 생각하다가, 최근 몇 년간 내가 물음으로 품고 지냈던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석사논문에서, 한국 개신교 의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혼합현상(syncretism)은 개신교 대중 전통(popular traditio.. 2023. 5. 16.
신화에서 여성의 목소리 찾기 (Implied Spider) 5장, ‘마더 구스와 여성의 목소리’를 읽으며 든 잡생각. 여기서 도니거는 남성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여성 텍스트에서 남성 목소리를 찾는 교차적인 작업을 보여주는데, 신화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아보려는 일은 글을 통해서 미지의 상대방의 성별을 짐작하는 블로그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래는 쿨짹님의 글. + 성별을 밝힐 필요는 없다. 굳이 숨기시는 건 아니라도 되도록이면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 어딘가에서는 밝혀졌을지도 모르지만 포스팅을 띄엄띄엄 읽는다던지 예전 포스팅을 마스터하지 않았다면 성별을 알게해주는 그런 구절들을 놓쳤을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다. +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꼭 한 블로거가 성별을 숨기려.. 2023. 5. 16.
아사드의 통치술 논의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면 아무래도 독서 강도가 떨어지는 편인데, 탈랄 아사드의 최근 책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서문을 읽을 때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드는 서구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리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즉 서구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듯이,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며 이들의 의견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우리가 시민 사회의 원리라고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아사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롤즈(Rawls)의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 2023. 5. 16.
성경 변개에 관한 책 바트 어만의 가 번역되어 서점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 책이 미국에 나온 것은 2005년 말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2006년 5월에 우리말 책이 나왔다. 학술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속도이다. 그렇다고 책이 어설픈 것도 아니다. 좋은 책이 선택되었고, 번역이 썩 잘 되었다. 전문성 면에서나 수월하게 읽히는 면에서나 탁월하다. 딱딱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성서 본문비평을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본문비평은 모든 비평의 기본이 되는 작업이지만 다소 지루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사본들을 대조해보면서 다른 부분을 찾아내고 비교하는 작업은, 난해한 그리스 본문들을 베끼다가 꾸벅꾸벅 졸아 실수를 하는 필사가들의 모습만큼이나 고달파 보인다. 그렇게 찾아낸 수만개의 이문(異文)들의 대부분.. 2023. 5. 16.
피에트로 성인의 믿음 화가 모로니(Giovanni Battista Moroni, 1529-78)가 그린 (Martirio di San Pietro da Verona)라는 그림이다. 성 피에트로는 숲 속에서 박해자들을 만나 순교를 앞두고 있다. 이마에는 이미 큰 상처를 입어 갈라진 사이로 피가 나온다. 박해자가 마지막 일격(가슴에 칼이 꽂힐 예정)을 가하려는 찰나, 이 성인은 바닥에 글씨를 남기고 있다. "CREDO"(나는 믿는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위 그림에서는 그냥 "Credo"라고 쓰는 것으로 나오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Credo in deum"(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썼다고 전하는데, 이는 사도신경의 첫구절이다. 또 다른 전승에는 "Credo .. 2023. 5. 16.
Whose Bible is it? 기독교 교리사 분야에 있어 대가인 야로슬라브 펠리컨(Jaroslav Pelikan)의 최근 책 는 내 기대에는 어긋난 책이었다. (방금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이 양반 올해 5월달에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이 책이 그 양반의 많은 저서들 중 마지막으로 쓴 책이 되겠다.) 이 책이 펭귄 북으로 편집되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작 알아보았어야 했는데(싸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사기도 한 거지만),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입문서 성격을 지닌다. 이 양반 책 중에서는 가장 눈높이를 낮춘 책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책을 써 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좀 들쑥날쑥하다.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부분에서는 고차원적인 문장이 튀어나온다. 일반인을 상대로 했다고 책이 재미없을 이유는 없는데,.. 2023. 5. 16.
나시레마 사람들의 몸 의례 수업 때문에 (Vol.58, No.3, 1956, pp.503-507)에 실린 “나시레마 사람들의 몸 의례”(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라는 글을 읽었다. 이상한 글이었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간 어디엔가 사는 나시레마 사람들은 몸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미개인들로 몸을 학대하는 갖은 의례를 지니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육체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동반된 온갖 의례들을 몸에 수행한다. 몸에 대한 거리낌 때문에 노출이나 배설 행위는 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 개인적인 비밀 의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만은 예외가 된다고 한다. 특히 이상한 느낌이 든 대목은 다음이었다: “뚱뚱한 사람들은 날씬하게 만.. 2023. 5. 16.
vision (환시幻視) 1. 종교적인 맥락에서 ‘비전vision’은 영적인 존재나 절대자를 만나 계시를 받거나 가르침을 받는 신비경험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영한사전의 뜻풀이에서 이 종교적 맥락을 알기는 쉽지 않다. 동아프라임(네이트 제공)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vi·sion ━ n. 1 시력(sight), 시각; 시야; 관찰 2 [관사 없이] (시인·정치가 등의) 상상력, 직감력, 통찰력; 미래상, 비전; 선견지명 3 환상, 환영, 몽상; 환각, 환시 in a vision 허깨비로 have a vision 환영이 나타나다 4 보이는 것, 눈에 비치는 것, 모양, 광경 종교적 맥락의 의미는 3번에 해당한다. 사전에서는 부정적인 맥락을 강조한다는 점이 아쉽고, 종교의 전문용어로 사용된다는 설명을 누락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2023. 5. 16.
신화의 망원경 기능 웬디 도니거는 1장에서 신화에는 현미경의 기능과 망원경의 기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신화는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나 주관적 경험의 의미들을 밝혀준다. 그것이 현미경 기능이다. 반면에 신화는 일상을 초월한 보편적인 의미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이 망원경 기능이다. 나는 웬디 도니거의 이 표현들을 참 좋아한다. 신화가, 그리고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을 너무나도 적절하게 나타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망원경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니거가 든 예는 성서의 욥기와 바가바드 기타이다. 욥기는 하느님과 사탄이 욥이라는 사람의 믿음을 놓고 내기하는 이야기인데,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은 욥이 고난에 시달리다가 하느님과 마침내 대면하는 장면이다. 그 전까지 욥은 재산을 잃고, 병을 앓고, 자식까지 .. 2023. 5. 16.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미국에서 노예제를 놓고 벌어진 교회내의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가 성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뉴 멕시코 대학에서 이 문제를 전공한 학자의 책이 나와 있다. [두 얼굴을가진 하나님] (김형인 지음, 살림, 2003). 얇고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미국 종교인들이 어떤 구절을 동원하고 어떤 논리를 구사하였는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약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답게 노예제와 관련된 학술적 논쟁들.. 2023. 5. 15.
미국 종교사의 잡다한 상식들 를 읽다가 새로 알게 된 짜투리 이야기들. 미국 역사와 문화 구석구석을 다루는 책이다보니, 막힐 때도 많다. 미국 사람들에게 상식일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좀 안다면 책이 술술 읽힐 텐데, 그래도 책 읽다 막히는 부분 있으면 찾아보는 것도 요즘처럼 시간이 남으니 가능한 일이다. 학기중이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책의 주된 논의는 제쳐 놓고, 새로웠던 사실 몇 개를 정리해 본다. 1. In God We Trust "In God We Trust"라는 슬로건. 너무 유명해서인지 책에서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넘어가는 내용이었는데, 한참 읽고서야 감이 잡혀서 얼른 내가 갖고 있는 미국돈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모든 미국 화폐와 지폐들에는 "In God We Trust"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미국의 공공생활에.. 2023. 5. 15.
Touchdown Jesus 학교 서점을 구경하다가 요즘 미국 종교사 교과서로 널리 사용되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국 종교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자가 쓴, 매우 흥미로운 주제의 책, "터치다운 지저스"라는 책을 사고야 말았다. 제목은 알쏭달쏭하지만, 부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미국사에서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뒤섞임." 터치다운은 미식축구 용어로, 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터치다운 지저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책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가톨릭 학교인 노틀담 대학은 유명한 미식축구팀을 갖고 있다. (나도 텔레비젼에서 이들의 경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학교의 미식축구 경기장은 우연히도 도서관 건물과 맞닿아 있는데, 그 도서관 벽면에는 손을 올리고 있는 예수가 그려져 있.. 2023. 5. 15.
밀러, 크리스마스 이론 Daniel Miller, Christmas: An Anthropological Lens 7-3, 2017. 대니얼 밀러(Daniel Miller)는 (Unwrapping Christmas)를 1993년에 편집하여 출판한 적이 있다. 그가 그 책에서 제안한 크리스마스 이론화 작업은 독일어판(2011)을 거쳐 이 논문에서 발전되어 정리되어 있다. 전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라 추억하며 최근 논문을 읽었다. 그는 다음 세 영역에서 ‘크리스마스 이론’을 전개한다. (1) 가족 관계 근대 크리스마스의 기본 정신은 가족이다.(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다른 측면도 있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방탕한 시기를 즐기는 축제(Carnival)의 측면이 있다. 크리스마스 역사 내내 존재하던.. 2023. 5. 15.
“고통의 문화사” 요약 “고통”이라는 제목 책. 영어본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Javier Moscoso, (Palgrave Macmillan, 2012) 아래 내용은 책 주제를 요약해 발표한 자리에서 사용한 유인물이다. 너무 간략하지만 이런 내용을 다룬 책이 있다는 정도로... [저자] 하비에르 모스코소Javier Moscoso 스페인 국립연구원(Spanish National Research Council, CSIC) 역사학, 과학사 과학철학 연구교수. [구성] 여덟 개의 주제topoi(경험이 소통되는 공통된 자리)를 통해 본 고통의 역사 [1. 재현representation] 근대 초기(중세 말)의 고통은 폭력의 쇼(spectacle of violence)에서 재현되었다. 순교한 성인의 육체, 처형당한 범죄자, 해부학 .. 2023.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