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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나시레마 사람들의 몸 의례

by 방가房家 2023. 5. 16.



수업 때문에 <<American Anthropologist>>(Vol.58, No.3, 1956, pp.503-507)에 실린 “나시레마 사람들의 몸 의례”(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라는 글을 읽었다. 이상한 글이었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간 어디엔가 사는 나시레마 사람들은 몸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미개인들로 몸을 학대하는 갖은 의례를 지니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육체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동반된 온갖 의례들을 몸에 수행한다. 몸에 대한 거리낌 때문에 노출이나 배설 행위는 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 개인적인 비밀 의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만은 예외가 된다고 한다. 특히 이상한 느낌이 든 대목은 다음이었다: “뚱뚱한 사람들은 날씬하게 만드는 제의적 단식들과 날씬한 사람들은 뚱뚱하게 만드는 의례적 향연들이 있다. 또한 여자의 가슴이 작으면 크게 만들고, 크면 작게 만드는 다른 의례들도 사용된다. 가슴 모양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불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상적인 형태가 실질적으로 인간의 다양성의 범위 바깥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미개인들의 다양한 엽기 의례들을 나열하기만 하고, 그 사람들은 주술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그래도 이런 이상한 관습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글이 이상하게 짧고, 미개인이라는 오래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주는 이 옛날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상당히 의아했다. 이론적인 통찰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이 글을 말이다.
의문은 수업 시간에 이내 풀렸다. 선생은 “나시레마 사람들이 어디 있는 사람들입니까?”라고 묻더니, 칠판에 나시레마(NACIREMA)의 철자를 거꾸로 썼다. "AMERICAN"! 미국 사람들을 풍자한 글이었던 것이다. 아니, 학술지에 이런 장난을 쳐도 되나 싶은 배신감이 들긴 했지만, 긴 글은 아니어서 봐줄만 했다. 글의 목적은 분명했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외부의 시선으로 한번 바꾸어서 성찰을 해 보자는 것. 원시인을 바라보던 그 시선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는 것.
미국에선 꽤 유명한 글이었나 보다. 나시레마를 구글로 검색해보니 많은 페이지가 검색된다. 나시레마 사람들 웹 페이지를 만들에 더 많은 자료들을 보충해 놓기도 하는 등,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이 많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종교학 하시는 분들은 이미 이 논문을 읽고 좋은 글들을 썼다. 유기쁨씨와 정경일씨의 글은 깊은 통찰을 곁들여 이 논문에 대한 소개도 상세히 하고 있다. 그 글들 보니 이 포스트 괜히 올린다는 느낌도 들 정도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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