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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초기 장례에 대한 신문자료 “강형댁여집씨 별세한 일”, 『대한크리스도인 회보』, 1898.11.30 초기 개신교인의 장례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강여집씨는 개신교 의료의 혜택을 받은 이로, 신실한 신자로 지내다가 "천당간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죽었다.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당시 개신교가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장례식에는 기도와 찬송이 부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인천 교우 강여집씨는 봉교한지 육 년이오 나이는 사십 칠세라. 육년 전에 신병이 있어 정동 시병원으로 병 고치러 갔다가 하나님 지덕과 구주지은으로 병이 나음을 문득 깨닫고 생각하되 내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이 더욱 심히 크게 들었으니 하나님께 빌어 내 영혼의 병을 고쳐 주옵시기를 간절히 빌고 그때부터 회개하고 주를 밤낮 생각하기를.. 2007. 6. 22.
창세기 해석 초기 개신교인들이 창세기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들. 1. 1897년 12월 31일, 정동교회에서 개신교가 신문명의 상징이었던 시절, 정동교회 청년부에서는 남녀가 동등한가의 주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이 토론회에 대해서는 와 두 기사가 있는데, 전자의 자료에서 종교적 해석의 측면을 더 잘 집어낸다. 1-48 (1897년 12월 29일) 4면을 보면, 참석자 중 김연근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초에 남녀를 내시매 음양이 서로 배합이 되었으니, 음이 없으면 양이 쓸데없고 양이 없으면 음이 쓸데없나니 남녀가 동등하다.” 반면에 조한규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펼쳤다. “성경에 가라사대 남자가 여인의 머리가 된다 하고, 하느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셨으며, 아담을 도와주게 하사 한 .. 2007. 6. 11.
그림 자료: 운보의 성화들 2007. 5. 31.
3. 의례문화 총론 한국 종교 의례문화에서 개신교가 가장 두드러지게 일으킨 변화는 개신교식 결혼식의 보급과 크리스마스의 소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 도입된 결혼은 간편하다는 장점을 부각시키며 ‘신식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전통 결혼의 복잡한 절차와 준비 때문에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물론 신식 결혼이 곧 개신교 결혼이 아니지만 개신교 결혼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형태의 의식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개신교 결혼 문화는 새로운 의식의 도입이라는 측면 외에도 신자들 간의 혼인이라는 새로운 풍속도 만들어냈는데, 이 점은 초기 자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한편 제사와 장례는 개신교가 전통 문화의 영향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사의 경우, 개신교는 처음부터 거부의 태도를 명확히 하였지.. 2007. 5. 31.
개신교와 무속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특히 접촉이 많았던 종교는 무속이었다. 선교사들은 다른 전통들 보다도 무속을 선교의 주경쟁자로 꼽았으며, 그래서인지 개종 성공 이야기에서 무속으로부터의 개종이 많이 등장한다. 흔히 이 개종에는 '미신 타파'의 논리가 많이 적용된다. 한편 무속과 기독교에는 공유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축귀(逐鬼)였다. 귀신쫓기의 행위는 두 전통 간의 공통 언어를 제공하여 만남의 지점이 되었다. 흔히 예수교는 귀신을 쫓는 능력이 더 큰 종교로 인식되었고, 이것은 무속적 세계관이 한국인들의 기독교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재료가 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들은 소문이 있기로 대강 기록하노라. 유월 삼십일은 장로교회 중에 사랑하는 교우 오경선 씨의 대부인 장사하던 날이라. 이 날.. 2007. 5. 31.
참혹한 소문 이 자료에는 비신자와의 결혼이 재앙을 가져다주는 죄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재앙을 전달하는 매개가 도깨비라는 전통적인 상징에서 마귀로 대체되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서울 동막 사는 복복남씨가 금월 초에 혼인하였는데 혼인한 지 불과 삼일에 난데없는 불이 주야로 그치지 아니하고 안팎으로 여기저기 불꽃이 일어나 십팔차를 하매 다행히 불이 나는 대로 끄고자 하였으나 동내 사람들의 말이 신부가 들어올 때에 도깨비가 따라 왔다하고 비방이 일어남에 복형제집에서도 도깨비 일인 줄 알고 그 신부를 쫓아 보내였는 고로 목사 몇 분이 이 소문을 듣고 가서 형제를 일변으로 위로하며 일변 권면하여 그 신부를 도로 데려다가 살게 하였더니 과연 그 형제가 그렇게 여겨 당일에 신부를 도로 데려다 놓고 여러 목사와 형제들과 자매들이 .. 2007. 5. 31.
정길당 사건 아래는 유생들이 정길당의 행패를 고소한 글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당시 민중들에게 힘의 실체로 인식된 기독교의 모습, 그리고 그 힘은 치외법권과 관련이 된다는 점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동학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이 힘에 매력을 느꼈음도 유추해볼 수 있다. 작년 겨울에 양규태 안종학 등이 정길당을 부동하야 희랍교 전도하는 교사로라 자칭하고 또 말하기를 황제 칙교 내에 내몸 대접하는 것과 가치하라 하셧다 하고 각 고을에 임의대로 출입하며 십자기를 세우고 요부한 백성을 임의로 잡아 형벌하야 전문 몃천 몃백을 특탈하며 아모아모집 부녀를 임의로 탈취하더니 근일은 수천명이 작당하야 각각 총과 창을 가지고 처처에 벌니는듯하는고로 임천 한산 서천 홍산 남포 민인 등 각군에 거하는 백성이 피난한 자가 불가승수이론지라 .. 2007. 5. 31.
천주교와 개신교의 충돌 한국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초창기부터 대립의 모습을 보였다. 다음 자료들은 양 쪽에서 서로의 교리와 실천을 공격하는 문서들이다. 선교 초기부터 경쟁 의식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① 은 1908년에 최병헌의 역술(譯述)로 정동교회에서 발행된 천주교 비판서이다. 저자는 외국어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천주교 교리를 비난하는데, 아래 부분은 천주교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외경에 대한 비판이다. 예수교회에서는 삼가 성경을 좇아 유전서 중에 성경 이치로 더불어 합한 것은 가르치되 성경으로 근본을 삼고 성경의 불합한 것은 사람에게 유익함이 없는 줄로 알아 휴지같이 버리고 천주교회에서는 더럽혀 유전서를 성경으로 더불어 같이 중요하게 여겨 그 행하는 뜻이 두 가지 있으니 교회 중 유익한 일을 하는데, 성경 중에 명백히 준행.. 2007. 5. 31.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영어 회화 수업을 들은 이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풍습을 영어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미국 관습의 무엇과 비슷하다는 초보적인 비교의 행위를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흔히 하게 된다. 이 글에서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산타클로스와 한국 풍속이 재미있게 비교되고 있다. 저자 미상, "A Reversed Santa Claus," The Korean Repository 4 (Dec., 1897): 456-457.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서울에 있는 우수한 영어 학교에 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가르치는 일은 재미가 있고, 또 그 친구는 자주 나에게 와서 자기 공부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나에게 교재를 읽어주다가 산타클로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발견하고는 이 .. 2007. 5. 31.
하나님 개념 형성 하나님 개념 형성 한국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개념에 대한 대표적인 논란은 ‘하나님’에서 ‘하나’의 의미가 영어의 ‘Great’와 상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Sky’가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선교사들의 문헌에서도 그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에 선교사의 원문을 통해서는 사실 확인이 쉽지 않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I』 (생명의말씀사, 2004), pp. 581-584. 성경의 유일신 개념을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고,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성경 번역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절대자(a supreme being) 개념, “하나님”(Hananim)을 성경의 히브리인들의 유일신 개념(God)으로 채택함.. 2007. 5. 31.
<성산명경> 최병헌, 은 1907~8년 에 “셩산유람긔”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1909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최병헌은 독실한 유교 학자였으나 신비 경험 후에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유․불․선 세 종교와 기독교의 대화 형식을 빌어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비록 ‘기독교 중심적’ 시각이 선명하지만 그의 주장을 통해 초기 개신교 신자들의 전통종교 이해의 한 단면과 ‘새로운’ ‘외래’ 종교인 개신교와 전통종교의 조화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윤리론(불교) “위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구세주를 신봉하야 천륜의 이치를 순종하며 아래로 초목금수와 곤중어별을 제어하고 다스려 물륜의 이치를 궁구하고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효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타인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야 오륜삼강.. 2007. 5. 31.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아래의 자료들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의료선교와 관련된 것으로, 그 것이 단순이 인간주의적 치료 행위나,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과학적 우월성을 표방하는 ‘문명’의 상징으로, 또 전통종교의 주술적 행위를 압도하는 ‘치병 관리’로 인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James Huntly Grayson, Early Buddhism and Christinity in Korea (E. J. Brill, Leiden, 1985), p. 105.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다른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으로의 선교사역을 임명받았을 당시,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의 보수적인 정부를 한시적으로 전복했던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왕족.. 2007. 5. 31.
선교사 자료(4) - H.B. Hulbert H.B. Hulbert - 1886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로서 한국 이름은 할보(轄甫)였다. 그는 고종의 뜻에 따라 신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고, 독립운동에 힘썼던 외국인이었다. 인용된 글에서는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서술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종교상황은 영혼 숭배사상을 기초로 중층 다원적 성격으로 인식했다. 이처럼 한국종교의 중층다원성에 기반을 둔 종교인식의 모습은 게일(J.S. Gale, Korea in Transition, p.67-79)이나 존스(G.H.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 2007. 5. 30.
개신교와 제사문제 개신교와 제사문제 18세기 말, 천주교라는 새로운 사상이 민중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진산사건’에 비롯되는 제사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사상, 타문화의 유입・수용과정에서는 고유 전통이나 민족 감정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뒤 다시 조선에서 제사문제가 큰 논란이 된 것은 20세기 초, 즉 일제 강점기이다. 이때는 일찍이 천주교를 민중 스스로가 수용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이 가해진 것과 달리, 일본의 국가권력에 의해 신도(神道)가 장려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제사문제를 논하려고 할 때, 키워드가 되는 것으로서 1) 조선총독부에 의한 포교규칙 및 신사사원규칙의 발령, 2) 동아일보에서의 논쟁과 삼종신기 모독사건, 3) 신사참배의 거부와 수용 등을 들을.. 2007. 5. 30.
천주교와 무속의 만남 (1) 동티에 대한 비판 고목에 대한 신앙을 미신으로 공격하는 글이다. 성 보나파키우스가 게르만 사람들에게 선교할 때 그들의 성스러운 나무를 찍어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기독교 선교사에서 수많은 성목(聖木)들이 선교사에 의해 베어졌고, 우리나라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도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과학적 담론을 통해 미신을 배격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경향잡지 1912. 9. 30 제6권 262호, “미신(迷信)”(류기정), pp.419-421.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 대저 우리 조선에 소위 동티니 벌력이니 하는 허황된 미신으로 말미암아 생겨, 토목금수어별 등 물(物)을 위하고 혹은 고목을 버히면 동티가 난다 배암을 죽이면 벌력을 입는다 하여 부지 중 미신에 혹(惑).. 2007.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