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60

천주교와 개신교의 충돌 한국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초창기부터 대립의 모습을 보였다. 다음 자료들은 양 쪽에서 서로의 교리와 실천을 공격하는 문서들이다. 선교 초기부터 경쟁 의식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① 은 1908년에 최병헌의 역술(譯述)로 정동교회에서 발행된 천주교 비판서이다. 저자는 외국어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천주교 교리를 비난하는데, 아래 부분은 천주교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외경에 대한 비판이다. 예수교회에서는 삼가 성경을 좇아 유전서 중에 성경 이치로 더불어 합한 것은 가르치되 성경으로 근본을 삼고 성경의 불합한 것은 사람에게 유익함이 없는 줄로 알아 휴지같이 버리고 천주교회에서는 더럽혀 유전서를 성경으로 더불어 같이 중요하게 여겨 그 행하는 뜻이 두 가지 있으니 교회 중 유익한 일을 하는데, 성경 중에 명백히 준행.. 2007. 5. 31.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영어 회화 수업을 들은 이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풍습을 영어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미국 관습의 무엇과 비슷하다는 초보적인 비교의 행위를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흔히 하게 된다. 이 글에서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산타클로스와 한국 풍속이 재미있게 비교되고 있다. 저자 미상, "A Reversed Santa Claus," The Korean Repository 4 (Dec., 1897): 456-457.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서울에 있는 우수한 영어 학교에 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가르치는 일은 재미가 있고, 또 그 친구는 자주 나에게 와서 자기 공부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나에게 교재를 읽어주다가 산타클로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발견하고는 이 .. 2007. 5. 31.
하나님 개념 형성 하나님 개념 형성 한국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개념에 대한 대표적인 논란은 ‘하나님’에서 ‘하나’의 의미가 영어의 ‘Great’와 상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Sky’가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선교사들의 문헌에서도 그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에 선교사의 원문을 통해서는 사실 확인이 쉽지 않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I』 (생명의말씀사, 2004), pp. 581-584. 성경의 유일신 개념을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고,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성경 번역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절대자(a supreme being) 개념, “하나님”(Hananim)을 성경의 히브리인들의 유일신 개념(God)으로 채택함.. 2007. 5. 31.
<성산명경> 최병헌, 은 1907~8년 에 “셩산유람긔”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1909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최병헌은 독실한 유교 학자였으나 신비 경험 후에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유․불․선 세 종교와 기독교의 대화 형식을 빌어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비록 ‘기독교 중심적’ 시각이 선명하지만 그의 주장을 통해 초기 개신교 신자들의 전통종교 이해의 한 단면과 ‘새로운’ ‘외래’ 종교인 개신교와 전통종교의 조화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윤리론(불교) “위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구세주를 신봉하야 천륜의 이치를 순종하며 아래로 초목금수와 곤중어별을 제어하고 다스려 물륜의 이치를 궁구하고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효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타인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야 오륜삼강.. 2007. 5. 31.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초기 개신교 의료의 영향과 의미 아래의 자료들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의료선교와 관련된 것으로, 그 것이 단순이 인간주의적 치료 행위나,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과학적 우월성을 표방하는 ‘문명’의 상징으로, 또 전통종교의 주술적 행위를 압도하는 ‘치병 관리’로 인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James Huntly Grayson, Early Buddhism and Christinity in Korea (E. J. Brill, Leiden, 1985), p. 105.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다른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으로의 선교사역을 임명받았을 당시,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의 보수적인 정부를 한시적으로 전복했던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왕족.. 2007. 5. 31.
선교사 자료(4) - H.B. Hulbert H.B. Hulbert - 1886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로서 한국 이름은 할보(轄甫)였다. 그는 고종의 뜻에 따라 신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고, 독립운동에 힘썼던 외국인이었다. 인용된 글에서는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서술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종교상황은 영혼 숭배사상을 기초로 중층 다원적 성격으로 인식했다. 이처럼 한국종교의 중층다원성에 기반을 둔 종교인식의 모습은 게일(J.S. Gale, Korea in Transition, p.67-79)이나 존스(G.H.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 2007. 5. 30.
개신교와 제사문제 개신교와 제사문제 18세기 말, 천주교라는 새로운 사상이 민중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진산사건’에 비롯되는 제사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사상, 타문화의 유입・수용과정에서는 고유 전통이나 민족 감정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뒤 다시 조선에서 제사문제가 큰 논란이 된 것은 20세기 초, 즉 일제 강점기이다. 이때는 일찍이 천주교를 민중 스스로가 수용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이 가해진 것과 달리, 일본의 국가권력에 의해 신도(神道)가 장려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제사문제를 논하려고 할 때, 키워드가 되는 것으로서 1) 조선총독부에 의한 포교규칙 및 신사사원규칙의 발령, 2) 동아일보에서의 논쟁과 삼종신기 모독사건, 3) 신사참배의 거부와 수용 등을 들을.. 2007. 5. 30.
천주교와 무속의 만남 (1) 동티에 대한 비판 고목에 대한 신앙을 미신으로 공격하는 글이다. 성 보나파키우스가 게르만 사람들에게 선교할 때 그들의 성스러운 나무를 찍어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기독교 선교사에서 수많은 성목(聖木)들이 선교사에 의해 베어졌고, 우리나라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도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과학적 담론을 통해 미신을 배격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경향잡지 1912. 9. 30 제6권 262호, “미신(迷信)”(류기정), pp.419-421.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 대저 우리 조선에 소위 동티니 벌력이니 하는 허황된 미신으로 말미암아 생겨, 토목금수어별 등 물(物)을 위하고 혹은 고목을 버히면 동티가 난다 배암을 죽이면 벌력을 입는다 하여 부지 중 미신에 혹(惑).. 2007. 5. 29.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아래 두 글은 초기 개신교에 입교했던 한국인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샤프의 글은 당시 개신교인들의 다수가 개신교를 정치적 동기에서 많이 찾았음을 보여주며, 맥켄지의 글로 추정되는 두 번째 글은 당시 잦은 전란의 와중에서 보호받지 못한 민중들에게 개신교라는 다른 힘의 실체가 느껴지는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C. E. Sharp, "Motives for Seeking Christ," The Korea Mission Field 2-10 (Aug., 1906): 182-183.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 부흥은 교회 밖에서도 널리 느껴진다. 교회 바깥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존재한다. 황해도에서는 세 단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기독교로 개종해온 많은 사람들의 주요 동기는 보호와 힘에 대한 열망.. 2007. 5. 25.
선교사 자료(3) - James S. Gale James S. Gale -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서 1888년에 조선으로와 한국종교연구와 한국 문학의 영역에 힘썼다. 여기서 제시된 글은 한국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 위대한 유일자로서 하나님 개념이 본래 있어왔다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기독교의 유일신관과의 유사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 전래 이전부터 한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시각으로 한국인의 종교성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서구적 신개념에 해당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앙형태를 한국에서 찾고자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내재성이 얼마나 감지되어 왔는가?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힘으로 간주되는가? 하나님은 인간사와 밀접하고 생명력 넘치는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는 방.. 2007. 5. 25.
선교사 자료(2) - Horace Newton Allen Horace Newton Allen - 1884년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의료선교사로서 한국이름은 안련(安連)이다. 민영익(민비의 조카)의 병을 치료해 왕가의 신임을 얻어 왕의 시의로 임명됐다. 인용문에서 필자는 조선인들이 종교적이지만 그들만의 종교가 없었다고 평가하고, 기독교 선교가 조선에서 왜 성공하게 되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특히 조상숭배와 관련해 부모에 대한 효성의 측면에서 성서와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반면, 기독교 선교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조상숭배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룰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언더우드(H.G Underwood) 또한 알렌과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언더우드도 조선인이 아주 종교적이라고 인식한다. 알렌은 조상숭배가 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본.. 2007. 5. 25.
동학과의 우호적인 관계 개신교가 널리 전파된 것은 동학난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두 전통간의 만남의 시점은 짧고 그리 다양하지 않다. 그러나 1890년대 중반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한 캐나다 출신 선교사 맥켄지의 기록에는 이 두 전통이 예외적으로 우호적으로 만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선교사와 동학지도자가 신학적 대화나 실제적 관계에 있어서 일시적이나마 상호 협력의 관계를 가진 순간이 묘사된다. 유영식 옮김,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멕켄지 선교사의 일생』(A Corn of wheat or the life of Rev. W. J. McKenzie of Korea)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85[1904]), 172-197. (1894년 12월 3일 일기 중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감사한다. .. 2007. 5. 25.
선교사 자료(1) W.M. Junkin William M. Junkin - 미국 남장로교회 최초의 한국 선교사로서 한국이름은 전위렴이다. 그는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사업을 추진하다가 1908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본문에 인용된 글은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의 동학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자료이다. 최제우에 의해서 시작된 동학은 성경대전(동경대전의 오기)을 경전으로 하고, 필자는 동학과 유, 불, 선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특히 가톨릭(서학)에 대한 대응으로 동학이라는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보면서 가톨릭과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다. .....동학은 1895년 경상도 경주에서 시작되었다. 경주는 부산으로부터 북쪽으로 4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학자였고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수년간 가톨.. 2007. 5. 25.
제사 문제 자료 1. 총독부 시정 연감 중 "제사조" 91년에 국립국학원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게 있어서 그걸 참조하렵니다. 2. 韓晳曦(한석희) 저 『日本の朝鮮支配と宗教政策』 여기에 김승태 논문에 나오는 동아일보 기사(삼종신기 숭배 비판)와 관련해서 신사참배 강요와 기독교인들의 거부 반응, 운동에 대한 기술, 그리고 1915년에 공포된 "포교 규칙"의 원문이 나옵니다.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김승태 논문에 기재된 동아일보 기사. 그외 연람이 가능한 당시 동아일보 기사. 2007. 5. 25.
은혜의 결혼식 이것은 개신교 결혼식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때의 모습이다. 의식 절차에 있어서는 전통 혼인을 그대로 따르는데, 전통 혼인 이후에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덧붙여져 있다. 이 기록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개신교인은 중매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개신교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의식이 초기부터 확고했다는 점이다. 현재의 교인끼리의 결혼이라는 의식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볼 수 있다. M. F. Mrs. Scranton, "Grace's Wedding," Korean Repository 5 (Aug., 1898): 295-297. 은혜의 결혼식 모든 한국의 젊은 남녀들의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결혼이다. 그러나 결혼에 관련된 결정에 대해 그들은 거의 아무런 권한을 갖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자.. 2007.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