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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개신교와 무속

by 방가房家 2007. 5. 31.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특히 접촉이 많았던 종교는 무속이었다. 선교사들은 다른 전통들 보다도 무속을 선교의 주경쟁자로 꼽았으며, 그래서인지 개종 성공 이야기에서 무속으로부터의 개종이 많이 등장한다. 흔히 이 개종에는 '미신 타파'의 논리가 많이 적용된다.
한편 무속과 기독교에는 공유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축귀(逐鬼)였다. 귀신쫓기의 행위는 두 전통 간의 공통 언어를 제공하여 만남의 지점이 되었다. 흔히 예수교는 귀신을 쫓는 능력이 더 큰 종교로 인식되었고, 이것은 무속적 세계관이 한국인들의 기독교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재료가 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들은 소문이 있기로 대강 기록하노라. 유월 삼십일은 장로교회 중에 사랑하는 교우 오경선 씨의 대부인 장사하던 날이라. 이 날에 교중 여러 형제들이 함께 모여 양주 연서라 하는 땅에 가서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에 홍제원을 지나 무학현을 향하고 오더니 한 미력(미륵) 집이 있고 장님 수인이 그 안에서 경문을 읽거늘 교우들이 그것을 보고 자비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미력집에 들어가 그 장님을 보고 구세주의 도를 전파하여 하나님을 숭배하고 마귀의 종노릇을 말라 하니 그 장님이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되 내가 여러 해 미력을 섬긴고로 벌역이 있을까 하여 배반하지 못하였노라 하거늘 이때에 교우들이 크게 성신에 감동하여 그 장님을 위하여 그 미력을 한 번 치매 곧 땅에 엎드려 부서지거늘 그 벽 위에 붙인 그림과 부적을 떼어 불 지르고 송경하던 북을 떼어 장님을 주니 보는 자 다 이상히 여기더라. 또 성신의 인도함을 입어 한 곳에 이르니 큰 당집 하나가 있는데 그림 들보와 붉은 난간을 하였으며 석가세존과 귀두라찰의 화상을 벽 위에 가득히 붙이고 삼색 실과의 일쌍 황촉을 그 앞에 벌여놓고 허다한 부녀들이 화려한 의복으로 취대를 수그리며 옥수를 합장하여 화상 앞에 절을 하고 무녀들은 장구를 치며 화관을 쓰고 활옷을 입고 방울을 흔들며 이상한 모양으로 춤추고 낭랑한 소리로 마귀를 불러 사람의 이목을 현황케 하는지라. 교우가 들어가며 전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우니 그대들은 회개하라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무당의 굿하기를 금단하거니와 우리는 경무청에서 오는 순검도 아니오 왕명을 받든 사람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백성을 구원하신 예수씨의 도를 믿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옥 불에 빠질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고 어둔 곳에 사는 자를 밝은 데로 오게 하노니 그대들도 쓸데없는 화상에게 절을 말고 하나님을 존경하여 금생에 복을 받고 내생에 영혼을 구원케 하라. 무녀들이 낙심하고 기색하여 마구의 말은 간데없고 살려 달라 청하거늘 교우들이 일시에 여러 가지 화상들을 일일이 떼어 불사르고 어리석은 부녀들로 공연한 재물을 헛되이 쓰지 말게 하였으니 지각 있는 사람들은 상쾌하게 생각하는 지라. 이 교우들이 만약 성신의 감화함이 아니더면 어찌 이 같은 무서움이 없이 미력과 화상을 패망케 하였으리요. 참 믿음으로 행한 고로 아무 걱정이 없었는지라.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런 교우들은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나라 법령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아노라.


<<죠션그리스도인회보>> 1권 25호, 1897년 7월 21일, <미력의 배함이라>
 


백천 지척면 새장거리 거하는 김만보의 처 이십세된 여인이 금년 삼월분에 무당이 나린즉 만보가 원통히 여겨 매일 한탄하더니 본읍 구름다리 회당에 와서 말하기를 성교는 능히 마귀를 쫓는다 하니 무당 마귀를 떼어달라 하기로 교중에서 무당을 데려오라 한즉 만보가 제 처를 회당으로 데려오거늘 한 주일을 회당에 두고 전도하였더니 그 여인이 점점 마귀지설을 아니하고 제 집에 가서 과연 마귀를 제 손으로 불놓고 그 후에 점심을 지어 따라간 교우 4인을 대접하여 보내고 지금은 아주 완인이 되었다더라.

<<죠션크리스도인회보>> 1-6 (1897년 3월 10일), <회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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