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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34-39) * 조선일보_1934년 12월 09일 서양의 크리스마스 풍습을 소개하는 사진들.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가 도입되는 분위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아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복학으로 고생하던 아이도 기뻐한다는 설명. 복학의 뜻은, 복학(腹瘧)〖한의학〗어린아이에게 생기는 병의 하나. 배 안에 자라 모양의 멍울이 생기고, 추웠다 더웠다 하며 몸이 점차 쇠약하여지는 병이다. ≒별복03(鼈腹)‧별학(鼈瘧)‧자라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 소개글 * 조선일보 1934년 12월 25일 "질거운 크리스마스" * 조선일보 1936년 12월 4일 "크리스마스 티켓 금지" * 1936년 12월 25일 "토산 크리스마스" * 1937년 11월 30일 "가장 무희 엄금" * 193.. 2007. 12. 13.
<<동광>>(1926)의 크리스마스 관련 기사 ** 두편의 기사가 실려 있다. 앞의 추호(秋湖)의 글은 상당하다. 서양의 풍속에 대한 상당한 경험과 조예를 자랑하는 글이다. 크롬웰의 크리스마스 금지를 언급할 정도면 역사적 지식도 상당히 뛰어나다. 마지막에 한국의 크리스마스 풍속이 점차 세속화되어감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직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잡지명 제8호 발행년월일 1926년 12월 01일 기사제목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필자 秋湖 추호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秋湖 The time draw near the birth of Christ; The moon is hid, the night is still; A single church below the hill Is p.. 2007. 12. 12.
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24-1932)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1925-1932년 조선일보 기사들 1. 1924년 12월 24일 2. 1925년 12월 25일 3. 1926년 12월 24일 4. 1926년 12월 26일 5. 1927년 12월 20일 6. 1932년 12월 24일 2007. 12. 2.
1933년의 크리스마스 선물 1933년 12월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다. 가격별로 어떤 선물이 적당한지가 남녀별로 안내되어 있어 당시의 선물 풍속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표기 안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당시 표기법대로 입력하였다. 일본식 영어 "푸레센트"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용되었던 말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활동한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크리스마스 앨범 제목은 였다. “크리스마스 푸레센트 -BOYS에게”, 7-12 (1933년 12월): 90-91. 사나이에게는 안 보내도 관계업다지만 그래도――당신의 귀한 이에게 이런 것이 어떳습니까? ● 1,2원 정도 우선 담배――그러나 마코-를 보내기는 무엇하니까요. 2원은 잇서야 합니다. 피죤 한 통은 보내야 보낸 보람이 잇슬것입니.. 2007. 12. 2.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크리스마스 1933년 12월 24일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김영섭 씨 말로는, 일본인들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그루시미마쓰(クルシミマス=苦しみます)라고 신소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2001), 605-6. 1935년 12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조선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신성함에 대해 자기와 똑같은 감정이나 느낌을 가졌으면 하고, 아니 이 신성한 시즌을 기뻐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건 분명히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감정이 원숙해.. 2007. 11. 30.
1893년 크리스마스 **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노블 부인의 일기에서 번역한 내용. Mattie Noble, "1893년 12월 25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36-38. 189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나는 큰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여러 날 계획을 짜고 준비하였다. 내가 이번 달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홀 박사 내외, 아서 박사와 나--를 위한 식사를 맡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자두 푸딩의 레서피를 구해 며칠 전에 만들어 놓았다가, 오늘 데워서 멋진 드레싱을 입혔다. 그리고 가득 채운 오리고기, 호박 파이, 감자 등을 먹었다. 저녁 식사는 성공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2007. 11. 27.
거짓교를 삼가 할 일 「사설」, 『신학월보』,4-5 (1904년 5월) 이것은 이단에 대한 논의의 일종이다. 여기서 '미혹교'라고 이야기하는 종교집단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된 바가 없어 구체적으로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 집단으로 추측되는데, 여기서 논자는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짝하지 마라"(고후6:14)는 배제의 논리를 전형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공주 등지로 다니시며 전도하시는 맥길 목사께서 한 편지를 월보사(月報社)로 보내셨기로 글을 본즉 참 세상을 유혹하는 교로다. 우리가 다니며 전도하는 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여 모든 백성들이 참 이치를 알아서 전에 행실을 고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전에 지은 죄를 예수 공로로 사함을 얻고 이후 천당 가게 하는 것이거늘, .. 2007. 6. 27.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 한국 전통 신앙상 비판 S.A. Moffett,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Vol. Ⅶ, No.12. December, 1894, pp. 595-596. 평양에서 활동한 선교사 마펫의 눈에 비췬 평양은 이교가 판치는 사악한 고을이었다. 그러한 묘사는 이후에 평양이 '한국의 예수살렘'이 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 사용된 유교 개념의 불분명함에 대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Practical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in Korea 최근에 한국의 두 번째 도시인 평양으로의 여행 중의 일이다. 나는 주일을 맞아 작은 마을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나는 이교(heathenism)에 대해 지극히 잔인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침을.. 2007. 6. 27.
신학월보-개종 자료 에 실린 아래 초기 개종 이야기들에서서 전통 문화와의 충돌 과정을 볼 수 있다. '우상', '마귀' 등으로 표현되는 전통(주로 무속)에 대한 거부 과정에서, 개신교인들은 때로는 전통에 의해 탄압받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들에 대한 승리를 보고하기도 하였다. 3-10(1903년 10월, pp. 347-352. 인내로 이김 교동군 인현리에 사는 황신철씨의 실내 방씨부인은 지금 29세인데 4년전에 예수씨 세상 구원하신 도리를 듣고 혼자 믿은지 두 해에 그 시부가 죽으매 제청을 배설하고 우상을 숭봉케 되었다. 방씨는 그때부터 예수를 증거하면서 우상에게 절을 안하니 그 시집과 친가는 교동에 높은 양반이라 대경소피하여 황신철씨는 방씨를 무수히 때리며 군욕하되 방씨는 조금도 마음을 동치 않고 날마다 갖은 고초를 당하여도.. 2007. 6. 27.
일일 학교와 전도부인들 일일 학교와 전도부인들 Mrs. M. F. Scranton, "Day Schools and Bible Women," The Korea Mission Field 3-4 (April, 1907): 53. 전도부인의 역할에 주목할 것. 그들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치병과 축귀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속의 힘을 대체하면서 동시에 연속성을 지니는 모습이 이 자료에서 보고되고 있다. 수원 감사가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자기 도시에 개설되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고서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보내왔다. 그는 환영 받았고, 보고 들은 것에 기뻐한 것 같았으며, 내가 한 일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보냈다. 그는 심지어 작은 도울 일이 있으면 해주겠다는 뜻도 비추었다. 그의 승인은 지역에서 유.. 2007. 6. 27.
길가의 우상들 길가의 우상들 Alexandis Poleax, "Wayside Idols," The Korean Repository 2 (April, 1895): 143-144. 이 글은 구한말 외국인에 눈에 관찰된 장승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서구인들은 세련되지 않은 장승의 모습에 경악하고, 지난해의 장승을 썩든 말든 그대로 두는 풍습에 다시 경악했을 것이다. 썩는 장승에서 종교의 퇴락을 읽어냈을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 종교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설명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볼 필요가 있다. ‘장승’은 조잡하게 깎아놓은 통나무로, 공공 도로 지역에서 주의를 끄는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다. 서울과 제물포 사이의 길에는 장승이 여러 개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들은 8피츠 길이의 목재로 되어 있고 꼭대.. 2007. 6. 27.
한 무녀의 개종 한 무녀의 개종 Miss L. A. Miller, "The Conversion of a Sorceress," Korea Mission Field 2 (Feb., 1906): 65. 이것은 무속인의 개종 사례이다. 이 여인의 과거는 사탄의 힘에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개신교인들이 모여서 귀신과 대결한 엑소시즘 장면도 흥미롭고, 그런 일을 보고 듣지도 못 했을 서양 여선교사가 사탄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장면도 재미있다. 성령 체험과 신들림 체험을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여인의 대답이 또한 주목할만하다. 부평 작은 마을에서 성경 공부를 지도할 때, 나는 매일 내 바로 앞에 앉아 말씀의 가르침을 듣는 한 여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 얼굴에 떠오른 평화롭고 행복한 표정에 이끌.. 2007. 6. 24.
한국인의 정령 신앙(spirit worship) Heber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2(1901) 중에서(37-41). 한국인의 정령 신앙(spirit worship) 존스의 글에는 한국의 종교에 대한 논의가 잘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그동안 한국에 종교가 있다/없다의 서구인들의 논쟁은 기실 종교 정의의 문제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불완전하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주목할만한 언급을 보여준다. 헐버트의 자료에서 지적되었던 한국인들 종교의 중층다원성은 여기서 먼저 언급되었다. 이 내용은 여러 선교사들에게 받아들여져 각기 발전된 내용으로 나타.. 2007. 6. 24.
예수교 있는 고을 “내보”, 『대한크리스도인 회보』, 3-9, 1899.3.1 개신교인들 많은 고을에는 부임하지 않겠다는 재미있는 기사이다. 이만열의 지적(, 433)처럼, 이 기사를 통해 개신교인들이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의로운 모습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항거'는 '외세의존적 성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임에 유의해야 한다. 개신교인들이 관리의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비빌 언덕이 있음을 의미한다. 관에 복종해야 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개신교인들은 정부 말고도 다른 '힘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신교를 통해 찾을 수 있었고, 그 외부적 힘이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어떤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 2007. 6. 22.
개신교 초기 장례에 대한 신문자료 “강형댁여집씨 별세한 일”, 『대한크리스도인 회보』, 1898.11.30 초기 개신교인의 장례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강여집씨는 개신교 의료의 혜택을 받은 이로, 신실한 신자로 지내다가 "천당간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죽었다.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당시 개신교가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장례식에는 기도와 찬송이 부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인천 교우 강여집씨는 봉교한지 육 년이오 나이는 사십 칠세라. 육년 전에 신병이 있어 정동 시병원으로 병 고치러 갔다가 하나님 지덕과 구주지은으로 병이 나음을 문득 깨닫고 생각하되 내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이 더욱 심히 크게 들었으니 하나님께 빌어 내 영혼의 병을 고쳐 주옵시기를 간절히 빌고 그때부터 회개하고 주를 밤낮 생각하기를.. 2007.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