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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앙기도원 치병에 중점을 두는 전형적인 한 기도원의 전단지 2009. 1. 11.
휴거설 1992년엔 10월이면 종말이 온다는 휴거설로 우리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때 군바리들은 휴거를 기다렸다고 하던데...^^ 난 그 때 종교학과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모아둔 종교 전단지 묶음에 용케 그 때의 것이 하나 남아있다. 다미선교회이 것은 아니고 다베라선교회라는 곳의 전단이다. 당시 이 운동에서 이 선교회의 위상은, 찾아보아야겠다. 첫 번째 사진에서 날짜가 나중에 기입되어 있는 게 재미있다. 전단 인쇄할 당시에는 그 부분에 대한 예언이 내려지지 않았는지, 단순한 오타인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 사진에는 교회 어린아이에게 내려진 “인치심”이라는 계시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2009. 1. 11.
초기 모습을 담은 사진들 1. 초기 교회 예배 모습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남자 교인과 여자 교인이 뒤섞여 예배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 중간에 장막을 치고서 예배를 보는 것이었다. 상당 기간 이러한 형태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초기 교회 건물 양식 중에 "ㄱ자 예배당"이라는 것이 있었다. 건물을 ㄱ자로 지어서 ㄱ의 꼭지점에 목사가 위치하고 건물의 두 변에 해당하는 부분에 각각 남자 신도와 여성 신도들이 앉아 있는 양식이다. (지금은 이 형식의 예배당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출처: [사진으로 읽는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 ) 2. 십일조 할아버지 전진규 목사의 부친인 전사명 옹은 철저한 십일조 헌금을 드린 분으로 유명하여, 십일조 할아버지라 불린다. "한국 교회에 십일조가 .. 2009. 1. 11.
산타클로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되기 전 을 읽으며 얻게 된 산타클로스 그림들. 그가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하기까지의 변천사. 1. 잘 알려져 있듯이, 산타 클로스는 성 니콜라우스의 변형으로 탄생했다. 그 변신의 시점은 1800년대 중반이다. 이 그림은 산타 둔갑 직전의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1810년의 삽화이다.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 벌을 준다는(울고 있는 아이는 아마 매맞은 걸로 보인다) 주제가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 니콜라우스는 고색창연한 패션을 간직하고 있다. 주교복을 입고 있고 손에 홀을 들고 있다. 중세 성인의 도상적인 특성 그대로이다. 대중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까지는 몇십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2. 이것은 1848년의 도판이다. 산타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막 생겨난 시점이다. .. 2009. 1. 11.
그리피스의 <한국의 안팎>중 "종교" Griffis, William Elliot, Corea, Without and Within (2n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1884]), 161-71. 그리피스, , 제3부 제15장 종교 “종교에 관해 말하면, 한국인들에게 종교는 거의 없다.” 이것은 17세기 네덜란드 개신교인의 증언이다. 1883년 가을 서울과 개항장에 몇 주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성직자도 하멜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구 국가들이 보통 ‘종교’라는 용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국은 아시아 다른 나라들과는 뭔가 다르다.”1) 그 곳에 오래 머물렀던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들도, 다양한 여행객 .. 2008. 11. 18.
채필근의 종교학 관련 기사들 채필근이 에 기고했던 글 중에서 종교학이나 다른 종교에 관한 글들. 채필근, “한국교회에 미친 유교사상”, 44호(1961년 6월): 10-17. 채필근, “종교신앙과 종교연구”, 49호(1930년 1월): 7-13. 채필근, “종교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the science of Religion?)”, 71호(1933년 9월): 9-13. 2008. 5. 25.
박형룡의 <종교론> 박형룡이 1937-8년에 6회에 걸쳐 에 연재한 "종교론". 그가 유학시절 배운 종교학 수업 내용이 정리된 노트의 성격이 강한 글로, 당시 종교학의 일반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1)박형룡, “종교론”, 제91호(1937년 1월) (2)박형룡, “종교론”, 제92호(1937년 3월) (3)박형룡, “종교론”, 제93호(1937년 5월) (4)박형룡, “종교론”, 제95호(1937년 9월) (5)박형룡, “종교론”, 제97호(1937년 11월) (6)박형룡, “종교론”, 제98호(1938년 1월) 2008. 5. 25.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1924-1939) 여기에는 그림 파일을 올리기가 여의치 않아서 엠블에 올린 것을 링크해 놓는다.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1(1920년대) 1920년대는 크리스마스가 서양 풍습으로서 소개되는 시기이다.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한 상식들이 소개되는 기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직은 낯선 서양 풍속으로, 전사회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의 조선일보 기사들도 대동소이하다.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2(1930년대초반) http://blog.empas.com/bhang813/25244004 1930년대 들어서 한국 사회에 크리스마스는 익숙한 날이 되어간다. 기독교와 상관없이도 즐기는 날이 되어간다. 이것은 1930년대의 대중들의 소비적 감수성이 급속히 확산되었던 것과 관련이 .. 2007. 12. 13.
크리스마스 관련자료(1910년 무렵) *1910년 YMCA 성서 교실의 크리스마스 풍경 * 밴틀리트가 서재필 부인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1911년) * 1910년 양복점 광고 * 1912년 "경절을 당하여" *"크리스마스 유래"( 1924년) 2007. 12. 13.
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34-39) * 조선일보_1934년 12월 09일 서양의 크리스마스 풍습을 소개하는 사진들.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가 도입되는 분위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아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복학으로 고생하던 아이도 기뻐한다는 설명. 복학의 뜻은, 복학(腹瘧)〖한의학〗어린아이에게 생기는 병의 하나. 배 안에 자라 모양의 멍울이 생기고, 추웠다 더웠다 하며 몸이 점차 쇠약하여지는 병이다. ≒별복03(鼈腹)‧별학(鼈瘧)‧자라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 소개글 * 조선일보 1934년 12월 25일 "질거운 크리스마스" * 조선일보 1936년 12월 4일 "크리스마스 티켓 금지" * 1936년 12월 25일 "토산 크리스마스" * 1937년 11월 30일 "가장 무희 엄금" * 193.. 2007. 12. 13.
<<동광>>(1926)의 크리스마스 관련 기사 ** 두편의 기사가 실려 있다. 앞의 추호(秋湖)의 글은 상당하다. 서양의 풍속에 대한 상당한 경험과 조예를 자랑하는 글이다. 크롬웰의 크리스마스 금지를 언급할 정도면 역사적 지식도 상당히 뛰어나다. 마지막에 한국의 크리스마스 풍속이 점차 세속화되어감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직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잡지명 제8호 발행년월일 1926년 12월 01일 기사제목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필자 秋湖 추호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秋湖 The time draw near the birth of Christ; The moon is hid, the night is still; A single church below the hill Is p.. 2007. 12. 12.
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24-1932)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1925-1932년 조선일보 기사들 1. 1924년 12월 24일 2. 1925년 12월 25일 3. 1926년 12월 24일 4. 1926년 12월 26일 5. 1927년 12월 20일 6. 1932년 12월 24일 2007. 12. 2.
1933년의 크리스마스 선물 1933년 12월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다. 가격별로 어떤 선물이 적당한지가 남녀별로 안내되어 있어 당시의 선물 풍속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표기 안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당시 표기법대로 입력하였다. 일본식 영어 "푸레센트"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용되었던 말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활동한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크리스마스 앨범 제목은 였다. “크리스마스 푸레센트 -BOYS에게”, 7-12 (1933년 12월): 90-91. 사나이에게는 안 보내도 관계업다지만 그래도――당신의 귀한 이에게 이런 것이 어떳습니까? ● 1,2원 정도 우선 담배――그러나 마코-를 보내기는 무엇하니까요. 2원은 잇서야 합니다. 피죤 한 통은 보내야 보낸 보람이 잇슬것입니.. 2007. 12. 2.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크리스마스 1933년 12월 24일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김영섭 씨 말로는, 일본인들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그루시미마쓰(クルシミマス=苦しみます)라고 신소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2001), 605-6. 1935년 12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조선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신성함에 대해 자기와 똑같은 감정이나 느낌을 가졌으면 하고, 아니 이 신성한 시즌을 기뻐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건 분명히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감정이 원숙해.. 2007. 11. 30.
1893년 크리스마스 **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노블 부인의 일기에서 번역한 내용. Mattie Noble, "1893년 12월 25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36-38. 189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나는 큰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여러 날 계획을 짜고 준비하였다. 내가 이번 달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홀 박사 내외, 아서 박사와 나--를 위한 식사를 맡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자두 푸딩의 레서피를 구해 며칠 전에 만들어 놓았다가, 오늘 데워서 멋진 드레싱을 입혔다. 그리고 가득 채운 오리고기, 호박 파이, 감자 등을 먹었다. 저녁 식사는 성공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2007.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