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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40

성공회 용인교회(천리) (2011.2.12) 용인시의 기독교사를 증언하는 가장 오래 된 유적 중 하나가 성공회 성당 건물이다. 성공회 교세가 그리 강하지 않은(않아 보이는) 이 지역에서는 약간 의외인데, 어찌 되었던 옛 건물이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천리에 보존되어 있어 찾아보았다. 기사 “성공회 용인교회 용인 상륙 100년, 어제와 오늘”(2007년 5월 23일)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908년경이었다. 천리교회(현재 이름은 성공회 용인교회)는 수원교회의 선교교회로 설립된 것으로 2대 주교 터너(단아덕)의 활동과 관련된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교회가 이 자리에 있던 한천서원(1865년에 대원군에 의해 철폐)의 매입을 통해 세워졌다는 것. 유교 사당 및 교육기관.. 2023. 5. 24.
서양인이 구경한 용미리 석불 19세기말 20세기초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그들이 상상했던 ‘우상’을 보기 위해 많이 갔던 곳으로 보도각 백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많지는 않지만 서양인들이 경기도 북부를 지나다가 파주의 용미리 석불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눈에 띈다. 이 거대한 석불이야말로 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장관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우선 최근에 눈에 띈 것은 두 개의 자료이다. 인용하기에 앞서 내가 본 용미리 석불입상(파주시 광탄면)의 모습. 하나는 선교사 게일의 1895년(글 쓴 시기는 1894년)의 언급. 고려조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전승을 소개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사실이 아니다. 고려 때의 조성 설화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울에서 60리.. 2023. 5. 24.
서양인들이 시각적으로 재현한 원각사지 논문을 쓰다보니 탑골공원에 가고 싶어졌다. 무심하게만 지나치던 곳인데, 그 곳이 내 논문에 나타날 줄이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별 탈이야 있겠느냐마는, 쉽게 볼 수 있는 곳을 상상하면서 쓴다는 게 가려워서 주말에 잠시 탑골공원에 들러보았다. 논문에 들어간 건조한 글에 그날 찍은 사진을 보태어 구성한 포스트. 서양인들이 서울에서 종교, 그 중에서도 불교의 흔적을 볼 수 있게끔 해주었던 예외적인 유물로는 도성 내에 있었던 원각사지 석탑과 그 옆의 비문이 있었다. [원각사(圓覺寺)는 고려 때부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던 사찰로, 조선 태조 때 조계종의 본사가 되었고, 1464년(세조 10)에 세조에 의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 2023. 5. 24.
기도원의 준수사항 10년_7월_파주_오산리 평범해 보이는 표지판이지만, 여기에는 기도원이 그동안 감내한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있다. 초창기의 종교적 감성(빅터 터너는 이것을 ‘코뮤니타스’라고 부른다)으로 이루어진 종교 공동체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만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제도화와 규율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 마라’는 명령문이 등장하기까지는 그동안 저질러진 ‘함’에 의한 고통의 축적이 있었을 터이다. “시설물을 아껴 사용하라”는 당부 이면에는 부주의에 의해 파손된 시설물을 쓰다듬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소지품 관리”의 당부 이면에는 숱한 도난이 있었을 것이며, 하다못해 “주차와 차량 관리”에 대한 당부에도 무분별한 주차와 차량 파손의 경험이 있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더 중요한 부분은 “반드시.. 2023. 5. 24.
유교 테마파크를 다녀오다 소수서원을 포함한 ‘순흥문화 유적권’을 둘러보고 나서 남긴 기록. 짧은 분량으로 글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루 일정을 압축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에, 다소 불친절한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이라는 짧은 지식만을 가진 채 소수서원을 방문하였다. 퇴계 이황의 제자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만난 것은 뜻밖에도 소수서원이 숙수사(宿水寺) 터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리는 당간지주였다. 서원 경내에서도 뜻밖의 유물들을 만났는데, 그것은 제관들이 손을 씻는 그릇이 놓였던 관세대(盥洗臺), 해시계를 놓았던 일영대(日影臺) 등이었다. 이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여느 서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2023. 5. 24.
소수서원에서 곁눈질한 것들 이제야 처음으로 찾아간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그 명성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알고 있던 것보다는 깊은 내력을 지닌 곳이었다. 서원을 들어서면서 듣는 안내는 이황의 제자 4천명이 배출되었다느니 하는, 유교의 전통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띄는 것은 정통성의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서원에 들어서기 전의 계곡에는 경자(敬字)바위가 있다.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했다가 죽임을 당한 원혼들의 울음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경’(敬)자 위에 붉은 칠을 하여 제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분명 선비에게는 공부하고 수양하는 것 외에도 지역공동체로부터 요구받는 임무들이 있기 마련이다. 원혼을 달래는 역할, 혹은 축귀의 역할도 그 하나였으리라. 서원 입구에는 예기치 않게 당간지주와 만난다. .. 2023. 5. 24.
조선신궁 있던 곳 서울역 건너편 힐튼 호텔에서 시작해서 길 건너 계단을 이용해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린이 놀이터와 백범광장, 안중근기념관, 교육과학연구원(옛 어린이회관),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남산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영역은 일제시대 건립한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자리하던 영역이다. 지금 이곳에는 일제 시설에 대한 어떠한 표시도 남겨놓지 않고 여러 동상들과 비문들을 비롯한 국가의 기호들이 과잉으로 들어앉아 있다. 다만 계단의 배치와 지형이 주는 느낌을 통해서 일제가 그들의 성소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아 마련한 공간이라는 어렴풋한 느낌만을 받을 뿐이다.김대호의 논문에서 얻은 자료에 따르면 일제 당시 서울 중심부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 현재 지도에서 조선신궁 자리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신사의 일반적인 구조를 잘.. 2023. 5. 24.
용미리 석불입상 ### 광화문에서 703번을 타면 벽제, 고양을 지나 ‘용암사입구’ 정류장에 갈 수 있다. 용암사 대웅전 뒤에는 거대한 한 쌍의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용미리 석불입상이다. 고려시대의 지방 양식이 완연한 이 분들을 서울 근교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반갑다. (다른 사진들을 보려면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할 것.) ‘미륵불’이라고 주로 불리는 이 석불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의 조성 설화가 전한다.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선종(宣宗, 재위 1084∼1094)은 뒤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후궁인 원신공주(元信公主)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그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겨라. 그러면 소원을 들.. 2023. 5. 24.
월악산 덕주사 근방 ## 나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종교학도인지라 제단에 무엇이 올려지는지를 문득문득 보게 된다. 아직 철저하게 관찰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조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제주도에서 굿당을 갔을 때,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가 기억이 난다. 대부분 막걸리와 제주도 소주의 빈 병들이었는데, 제주도 신들이 어떤 술을 잡숫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돌아온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월악산 송계 계곡에 있는 충주 덕주사에서 찍은 산신각 모습이다. 돌틈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지은 산신각이 인상적이었고, 산신을 위해 모신 제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찍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것이 인상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소주를 담기 위해 찍은 사진일텐데, 그것은 아마 충청도 소주였.. 2023. 5. 24.
안성 아양동 미륵 # 경기도 안성 아양동 주공아파트 뒤편 마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미륵 한 쌍이 모셔져 있다. (안성 지방 미륵에 대해서는 전에 개괄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못생긴 부처님을 찾아서 1 2 ) 사진에 잡힌 것은 할아버지 미륵. 내가 아양동 미륵에서 느끼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모심을 잘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융숭하지는 않되 정성이 느껴지는, 미륵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미륵모심이다. 넓지 않은 경내는 잘 청소되어 있어, 매일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제단에 정갈하게 올려져 있는 박카스! 때는 초여름 정도의, 약간의 더위가 느껴지는 날씨였다. 아침에 올린 것이 틀림없는 이 박카스는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병뚜껑까지 따 놓았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 2023. 5. 24.
인왕산 선바위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인왕사” 표지판을 따라 올라간다. 무악 현대아파트를 오른편에 끼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곧 인왕사 일주문에 다다르게 된다. 일주문 뒤에는 주차장과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위에는 여러 채의 집들이 붙어 있는데, 이 집들은 점치는 ‘보살’들이 거하는 곳이다. 작은 골목을 통과하면 국사당(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에 이르고 거기서 올려다보면 선바위(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가 보인다. 선바위라는 이름 ①현재 이 바위의 공식적인 명칭은 선(禪)바위이다. 그 형상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했다는 것이다. ②이 바위의 다른 이름으로는 “부부암”이 있다. 일제 강점기 민속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책에는 부부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조와.. 2023. 5. 24.
사슴 계곡 암각화 (The Deer Valley Rock Art Center)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북부에 위치하는 디어 밸리 암각화 센터(The Deer Valley Rock Art Center)는 북미원주민들이 남긴 바위 그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입구를 지나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 벌판을 조금 걸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바위들로 온통 뒤덮힌 기이한 언덕이 나타난다. 특이한 바위들이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데, 이곳은 애리조나 지역에 살던 여러 북미원주민들에 신성한 장소였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부족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그림들의 의미를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의례를 행했던 장소였다. 이곳에만 모여 있는 이 검은 바위는 오랜 동안의 태양열의 작용에 의해 검게 변색된 것이라 한다. 변색 작용에 의해 이 바위 표면에는 주황색과 검은색의 두 층이 형성되.. 2023. 5. 24.
산 자비에르 성당(Mission San Xavier del Bac) 1860년대 멕시코 전쟁으로 미국에 편입되기 이전에, 미국 서남부 지역은 스페인에 의해 식민화된 지역이었고, 예수회(나중에는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에 의한 가톨릭 선교가 이루어진 곳이다. 애리조나 투산 남쪽, 산 자비에르 보호구역 내에 있는 산 자비에르 성당은 이 지역 밑바탕에 덧칠되어있는 가톨릭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며 애리조나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산 자비에르 성당(Mission San Xavier del Bac)이 있는 지역에 키노(Kino) 신부가 들어와서 토호노 오담(Tohono O'odham) 사람들에게 선교하며 가톨릭 공동체를 형성한 것은 1692년의 일이다. 이후 1700년대 중반부터 이 성당 건설에 들어가 1797년에 완공하게 된다. 정치적 사정 때문에 1820년대에 버려진 적도 있.. 2023. 5. 24.
Mission in the Sun 애리조나 남쪽 투산 북쪽 교외에 작고 예쁜 예배소가 있다. "미션 인 더 선"(Mission in the Sun)이라는 곳이다. 그라지아(De Grazia)라는, 애리조나에서는 가장 이름난 예술가가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평생을 바쳐 만들고 가꾼 곳이다. 예배당 옆에는 그의 갤러리가 있다. 실용적 측면이나 종교 행사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이 예배당은 상당히 예쁘다. 선인장들로 둘러싸인 곳에 진흙으로 빚어만든 작은 건물이 서 있다. 건물의 외관상 특징은 토착적인 아도브(adobe) 양식을 취하고 있다. 작은 나무문으로 내부가 엿보인다. 문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은 양철을 잘라 만들어붙인 것들이다. 내부 공간. 현관에 어둡고 작은 기도실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 보이는 것이 내부의 거의다이.. 2023. 5. 24.
카사 그란데 유적 ‘큰 집’이라는 뜻의 카사 그란데(Casa Grande Ruin National Monument)는 1300년대에 호호캄 인디언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4층짜리 거대한 건물이다. 애리조나 피닉스 남쪽, 투산 가는 길 중간 쯤, 쿨리지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북미원주민 유적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일 것이다. 이곳은 1892년에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미국 정부가 처음 지정한 보호 유적이다. 지금은 커다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원래는 대규모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많은 양의 집터가 주변에 남아있어 당시의 마을의 규모와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카사 그란데는 황야 복판에 서있지만, 이 마을에 사람들이 살았을 때에는 강물이 이 근처를 지났다. 호호캄 사람.. 2023.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