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인왕사” 표지판을 따라 올라간다. 무악 현대아파트를 오른편에 끼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곧 인왕사 일주문에 다다르게 된다. 일주문 뒤에는 주차장과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위에는 여러 채의 집들이 붙어 있는데, 이 집들은 점치는 ‘보살’들이 거하는 곳이다. 작은 골목을 통과하면 국사당(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에 이르고 거기서 올려다보면 선바위(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가 보인다.
선바위라는 이름
①현재 이 바위의 공식적인 명칭은 선(禪)바위이다. 그 형상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했다는 것이다. ②이 바위의 다른 이름으로는 “부부암”이 있다. 일제 강점기 민속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책에는 부부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승과 태조 부부의 상이라는 전승이 있다. ③한편 부인들이 이 바위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일이 많아 '기자암'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 바위가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성하게 된 맥락은 자식을 원하는 부인들이 소원을 비는 곳으로서였다. 민간신앙에 의해 형성된 성지 위에 태조와 관련된 국가 이데올로기나 선(禪)과 관련시키려는 불교적 맥락이 덧씌워져서 지금의 다양한 이름의 층위를 이루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민간 신앙에서 솟아있는 바위를 ‘선돌’ 혹은 ‘선바위’라고 부르는 일은 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근숭배와도 관련이 되는 이런 이름은 주로 아이를 바라는 기자(祈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따라서 ‘부부암’(지금은 국가적으로 해석되는)이든 ‘선바위’(지금은 불교적으로 해석되는)든, 아니면 ‘기자암’이든, 모두 민간신앙에서 기원하는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①1392년 조선를 건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와 정도전 사이에서, 선바위를 도성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 무학대사는 이곳을 도성 안쪽에 넣고자 했던 반면에, 정도전은 음사(淫祀)가 행해지는 곳이라 해서 이곳을 도성 밖에 두자고 하였는데, 정도전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선바위는 도성 밖에 남는다. 그 당시 이곳이 이미 민간신앙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②이곳이 민간신앙 중심지의 성격이 더 강해진 것은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할 때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이리로 옮기면서부터 이다. 이때 이후로 이곳은 새로운 굿의 중심지가 된다. ③최근에는 인왕사가 자리잡고 이곳을 불교적인 공간으로 가꾸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선바위 근처는 무속과 불교가 함께 복합적인 종교공간을 이루고 있는, 대단히 흥미로운 곳이다. 선바위 바로 아래에는 국사당과 여러 굿당들이 몰려 있지만, 그 영역은 일주문을 입구로 하는 인왕사의 영역으로 포위되어 있다. 특히 선바위에는 불전이 설치되어 있고 “무속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어떻게 해서 이 공간에서 불교가 큰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그 목소리가 현재의 ‘선(禪)바위’라는 공식 명칭에 반영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아야겠다. 그리고 두 전통들 간의 공간점유 경쟁의 추이도 계속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