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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쉬가 꿈꾼 유토피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는 다루는 자료의 깊이에 있어서나 그 문제의식에 있어서나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다큐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넷플릭스에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 다큐는 라즈니쉬가 미국에 설립한 공동체가 설립되었다가 와해되는 1980년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놀랍게도 이미 죽은 라즈니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 인물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당시의 영상 자료들이 상당히 충실하게 보존되어 적절하게 활용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다큐의 차분한 관점이다. 다큐는 반대 입장을 충분히 전하면서도 라즈니쉬 교단 추종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았다. 교단이 당시 미국 사회에 일으킨 파문도 놀랍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것은 추종자들이 어떻게 라즈니쉬에 매력을 느꼈는지, 어떻게.. 2023. 6. 4.
종교학 성공담?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보는 많지만 건질 것은 많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인문학이 어떻게 그들의 성공에 기여했는가?)은 조금 언급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핵심에 대한 취재가 잘 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종교학 사례가 책의 1장에 조금 나오는데 그친 아쉬움도 있다.(사실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종교학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종교학 전공자 마이클은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의 일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는 2학년.. 2023. 6. 4.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 (책 광고) 내가 쓴 글이 포함된 책이 나왔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뉴스레터 내용을 골라 뽑아 만든 책 (모시는사람들, 2018). 이 책은 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으로, 이만큼 많은 종교 전문가가 이처럼 다채로운 주제들에 대해 발언해왔다는 연구소의 자부심이 담긴 책이다. 나는 37인의 저자 중 한 명이자 53편의 글 중 두 편으로 참여하였다. (책에 실린 글의 옛 형태는 이 블로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연구소의 30년 생존에 대한 자축의 성격을 갖는다. 연구소를 소개하는 데 주로 할애된 머리말은 이를 보여준다. 연구소와 인연 있는 분들이 나눠 가진 것만으로도 재고가 상당히 충당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일반 독자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도 그것이 궁.. 2023. 6. 4.
메리 더글러스 (책 광고)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책 한 권 번역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혹은 발목이 잡혀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이론을 소개하는 작은 책을 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인류학자 해설서를 쓰다니, 이것은 본업에서 이탈한 것인 동시에 그만큼 더글러스가 종교학에서 중요한 이론가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더글러스에 대해 종교학의 입장에서 쓴 편파해설서이다. 한편으로는 종교를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배운 것에 고마워하며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학문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글을 썼다. 나는 더글러스의 개인사에 대해서 전혀 모른 상태에서 몇 년 전에 그의 책을 번역했는데, 이번에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이런 것도 모르고 번역을 한 게 .. 2023. 6. 4.
차례 상차림의 원칙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와 같은 말들은 유교 경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성균관 의례부장)이 몇 년 전 신문에서 소개되었고 올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법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격식을 갖추느라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뉴스이다. 모르기에 집착해왔던 법도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뉴스에는 그 다음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홍동백서와 어동육서가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분명 홍동백서는 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엘리트의 입장에서 경전적 근거가 없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제사의 법도는 경전의 공백 때문에 실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법도는 조선 시대부터 .. 2023. 6. 4.
치아와 종교 이번에 한국종교문화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실린 글이다. 내가 일하는 곳의 여건 때문에 애정을 갖게 된 종교 현상들을 간단히 언급했다. 언젠가 논문으로 쓰려고 눈독 들인 현상들. 치아와 종교 치의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의료의 목적은 단순한 통증의 경감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소이다. 환자를 단순한 물리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만나야 한다는 각성이 의학계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의료 교육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접근은 중요하며 종교학은 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좋은 의료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인문학 교육은 필수이며, 치의학대학원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새.. 2023. 6. 4.
연애와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개제된 칼럼. 오래 전에 습작한 글 “새로운 주술론, ” 이후에 발전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못했다. 좀 더 현실감 있는 이야기와 엮을 생각도 있었는데 분량이 다 되어 책 메모로만 끝났다. 미리 기고했다가 연구소 사정으로 한 달 묵혀둔 글인데, 그 사이 시국이 급변하는 바람에 세상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생뚱맞은 글이 되었다. [이 글은 수정, 보완하여 다음 책에 수록되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모시는사람들, 2018).] 연애와 종교 사랑은 종교를 비유하여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이다. 당장 떠오르는 아가서와 각종 신비주의 문헌들을 비롯해 종교사 전반에 걸쳐 논할 자료들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중에서도 현대인의.. 2023. 6. 4.
대통령의 현몽들 종교에 의한 국정농락이라고 하여 현재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정작 ‘최순실의 종교’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나도 궁금해 죽겠다. 대통령이 사용한 특이한 몇몇 표현들이 그와 관련 있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아버지 최태민의 종교에 대해서는 손톱만한 정보들이 있지만, 최순실은 최태민의 실질적 계승자이며 현몽과 계시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이다. 무엇을 계승하였고 어떠한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단어는 ‘현몽現夢’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태민이 박근혜와 처음 접촉한 것은 육영수의 현몽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현몽은 환시나 환청과는 구별되는 전통적인 종교체험 방식인데, 이것이 이들 종교의 토대를 이루는 경험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이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맥.. 2023. 6. 4.
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가르치기 거의 몇 년 만에 대학신문을 펴보았다. 내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마음에 들지 않는 내 얼굴 사진이 작게 나오도록 찍었음.) 강사들이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코너에 원고 청탁을 받았다. 코너 성격상 꼰대 스타일의 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각이다. 안 그러려고 종교학 강의 홍보 쪽으로 쓰긴 했지만 훈계조는 어쩔 수 없다. 아래에 비슷한 제목으로 올린 메모(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공부하기)에 좀 저 말랑말랑한 소재를 집어넣고 제법 교훈적인 마무리를 덧붙여 완성한 글이다. 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가르치기 “종교가 없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연애 관련 팟캐스트 '불금쇼'의 한 출연자가 연애 상대의 조건으로 한 말이다. 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출연자가 언.. 2023. 6. 4.
“문화로 본 종교학”으로 수업을 하고 나서 지난 학기에 맬러리 나이의 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했다. 교재의 모든 부분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70% 정도 분량을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여 사용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교재를 많이 활용한 수업이다.(2장 문화와 3장 권력을 상당 부분 생략했다.) 이 교재 덕에 내 수업은 상당히 새로운 수업이 되었다. 그 새로움에 대해 간단히 기록해둔다. 기존의 종교학개론 계열의 교양과목(즉 세계종교 계열이 아닌 종교학 교양과목. 내 경우는 인간과 종교)은 종교현상학적 입장을 강조한다. 같은 교재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종교학 주류의 입장, 엘리아데의 입장을 주로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화나 상징을 이야기하면 엘리아데의 개념(시간의 주기적 소거, 중심의 상징 같은) 위주였다. 즉 상징의 보편적 의미를 설명.. 2023. 6. 3.
종교는 무엇에 담겨 전달되는가? #1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한 무슬림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다. “쿠란의 디지털 파일을 삭제하면 신성모독인가요?” 쿠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도 적용해야 하느냐는 이 질문에 대해 채택된 답글은, 불경한 의도를 갖지 않고 즉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채 파일을 삭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가적인 반응으로는 화면에 디스플레이된 상태의 쿠란은 신성하지만 파일 상태는 그렇지 않으므로 삭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2 몇 년 전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기 위한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창 블로그에 빠져 있던 나는 홈페이지를 연구자들의 팀블로그 형식으로 운영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내 의견에 대해 한 선생님이 게시판에 올릴 같은 내용을 .. 2023. 6. 3.
치통의 기원 신화 전에 스치듯 읽고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이 이야기가 올해 내게 운명처럼 강렬한 울림을 주게 될 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갑자기 치의대학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날 밤 이 신화를 떠올렸다. 종교학과 치의학을 연결해주는 가느다란 끈!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된 토판문서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화로 설명되어야 할 근원적 고통 가운데 이빨 아픈 것도 한 자리 차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한국어 번역은 , 에 수록된 것이 있으며, 다음의 영어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다. R. Paulissian, "Dental Care in Ancient Assyria and Babylonia," 7-1 (1993). 2023. 6. 3.
종교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종교신문”에서 무려 “차세대 종교학자와의 대담”이라는 거창한 표제 하에 내 이야기로 한 면을 채워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자가 달아준 제목은 약간 부끄럽지만 종교인이 대부분인 독자층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다. 내 사진은 부담스럽지만 생긴 대로 찍힌 것이기에 더 욕심을 낼 여지는 없다. 기사 내용 대부분은 내가 말한 내용들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만족스럽다. 내용상 약간 축약된 부분과 부드럽게 처리된 부분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배려로 이해된다. 제도권에 들어왔다고 보기 힘든 나를 신문 지면에 초대해 준 계기는 블로그였다. 그래서 마지막에 내 블로그를 언급해준 것도 의미가 있다. 순전히 블로그를 읽고 이런 인터뷰를 제안해준 기자에게 감사드린다. 종교학은 편협한 생각의 틀을 깨는 혜안의 지혜를 알려.. 2023. 6. 3.
피케이가 본 종교 올 가을에 아주 잠시 개봉했던 인도 영화 (2014)는 지구에 온 외계인 피케이가 종교를 관찰하고 연구한다는 내용이다. 종교학의 입장에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종교를 묘사한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1. 종교현상학적 상황[51:30-1:16:40] 우주선 리모컨을 되찾아야 하는 피케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신에게 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도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신을 찾아 나선다. 종교에 대한 관찰이 시작된다. 이것은 종교학이 꿈꾸는 상황이기도 하다. 아무런 문화적 전제가 없는 관찰자의 눈에 종교라는 현상은 어떻게 묘사될 수 있을까?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내가 완벽한 ‘종교현상학적 상황’이라고 부르고 싶은 상황이 설정되었다. 외부인인 학자가 종교를 연구하는 상황과 크게 .. 2023. 6. 3.
빅데이터와 종교 연구 두 달 전 쯤 연구모임 소식지에 쓴 간단한 글이다. 거창한 제목에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연구자들이여 가끔 엔그램 하고 놀자.” 1.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라는 것이 혹시 내 공부와도 연결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책을 조금 뒤적거려 보았다. (세종서적, 2014)에는 빅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쇼핑카트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여 구매 패턴과 브랜드 충성도를 분석한다. 누군가는 블로그 글들을 수집하여 성향에 따라 인간군을 선별한다. 선별된 인간 유형은 마케팅, 선거 전략, 수사, 연애 사업 등에 활용된다. 이전 같으면 별 쓸모가 없는 잡스러운 정보들이 ‘많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쓸모를 찾아나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하지만 돈을 벌거나 실제적.. 202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