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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라즈니쉬가 꿈꾼 유토피아

by 방가房家 2023. 6. 4.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Wild Wild Country>는 다루는 자료의 깊이에 있어서나 그 문제의식에 있어서나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다큐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넷플릭스에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 다큐는 라즈니쉬가 미국에 설립한 공동체가 설립되었다가 와해되는 1980년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놀랍게도 이미 죽은 라즈니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 인물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당시의 영상 자료들이 상당히 충실하게 보존되어 적절하게 활용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다큐의 차분한 관점이다. 다큐는 반대 입장을 충분히 전하면서도 라즈니쉬 교단 추종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았다. 교단이 당시 미국 사회에 일으킨 파문도 놀랍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것은 추종자들이 어떻게 라즈니쉬에 매력을 느꼈는지, 어떻게 교단에 헌신했는지, 그리고 교단 경험이 여전히 그들의 삶의 일부임을 오롯이 보여준다는 점이 대단하다.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당한 사람들이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큐는 6부로 이루어졌는데, 다음은 보면서 느낀 점을 간단히 메모한 내용이다.

1부: 인도의 라즈니쉬 아쉬람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서양인들이 추종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라즈니쉬를 처음 만난 황홀한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라즈니쉬 명상법도 간략하게 소개된다.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나도 오래된 라즈니쉬 사진에서 그의 광채를 느끼게 된다. 이와 더불어 교단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생기와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들이 공유한 자유로운 경지가 꾸며낸 것은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느낌이다.
바그완(라즈니쉬)는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극우 힌두교인의 위협에서 벗어나 미국에서 장소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젊은 여성 쉴라가 그의 비서로, 교단의 2인자로 등극하여 미국 공동체 건설을 주도하게 된다. 그 악명 높은 쉴라가 등장하여 핵심적인 인터뷰를 제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진다.
2부: 미국 오리건주의 넓은 농장을 사들여 공동체를 건설하는 벅참. 그러나 주변 주민을 포함한 미국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으며, 이는 앞으로의 사태를 예견하게 한다. 미국인의 반응은 컬트, 섹스, 레드로 요약된다. 라즈니쉬 공동체가 만들어진 1980년은 존스타운 집단자살이 일어난 직후였고 그에 대한 경계심이 새 공동체에 적용되었다. 미국에서 이 공동체를 컬트(cult)라고 부른 것부터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은 시작되었다. 라즈니쉬 명상에서 자유로운 섹스가 사용되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그들에 대한 이질감은 극대화되었다. 주민들은 붉은 옷을 입는 추종자들에게 레드컴플렉스를 여지없이 적용하였다. “마을에서 공산주의자를 몰아내자”며 총을 들고 “우린 미국인이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 완고함은 다큐 마지막까지 지배적인 미국의 정서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총기 무장과 테러 위협에 맞서 라즈니쉬 공동체에 다량의 무기가 들어오는 장면은 앞으로의 비극을 예견케 한다.
3부: 라즈니쉬 교단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위치한 앤털로프를 선거를 통해 장악하고 나중에서는 시장을 배출한다. 시 이름도 라즈니쉬로 바뀐다. 교단과 미국 사회의 충돌이 심화된다. 그 과정에서 교단 대변인인 쉴라의 도발적인 언행은 놀랍다. 아마 미국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적이고 오만한 언어는 사회를 경악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4-6부: 메모한 것이 없어 간단히만 말하면, 교단의 반사회적인 행위가 이어지면서 수사망이 좁혀들어온다. 몇 번의 무리한 시도가 실패한 후 2인자 쉴라는 라즈니쉬와 멀어지고, 마지막 순간에 그와 결별하고 교단을 떠난다. 그 이후 라즈니쉬는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미국을 떠나게 된다. 다큐는 그 복잡한 과정에서 추종교와 정부 측의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충실히 전하고 추종자들의 후일담으로 마무리된다.
 

인터뷰 마지막에 쉴라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라즈니쉬 전기를 포함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마치 그가 미국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한 5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루어지고 있다고.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한국에 알려진 라즈니쉬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라즈니쉬 출판붐이 있었고 나도 그때 그의 책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다.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미국의 라즈니쉬 교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랜전 읽은 것이긴 하지만, 라즈니쉬의 사상에는 별로 흠잡을 것이 없다. 인도를 기반으로 동서를 넘나드는 해박함과 탁월한 언변은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나는 그의 글을 많이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건설했던 공동체 실험을 빼놓고서 그의 삶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름다운 말만 떼어 사상가로서 그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의 라즈니쉬를, 그리고 그가 남긴 종교운동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 다큐를 통해 정말 중요한 사실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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