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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278

비숍의 한국 종교 개념 비숍의 에서 종교, 귀신론에 관련된 중요한 구절들. Isabella Bird Bishop,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1898). 서울에는 다른 도시들이 지닌 매력이 없다. 옛 것으로 말하면, 어떤 유적지나 도서관, 문헌도 볼 수 없다. 결정적으로, 종교에 대한 비할 데 없는 무관심으로 인해 서울에는 사원이 남아있지 않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미신들로 인해 서울에는 무덤이 남아있지 않다.(60) 사원들이 없고 종교를 나타내는 다른 표식들도 없기 때문에, 성급한 관찰자들은 한국인들을 종교 없는 민족으로 절하할 위험이 있다. 조상숭배, 귀신(daemons or spirits) 달래기, 자연의 힘에 대한 소심하고 미신적인 두려움의 결과 등이 한국인들에게는 종교의 자리.. 2009. 5. 31.
그리피스, “한국과 선교의 필요” 그리피스의 “한국과 선교의 필요”라는, 선교 잡지에 실린 짧은 글 중에서. Griffis, "Korea and Its Needs," 13 (Aug., 1888): 370-71.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물음은 “그들의 영혼, 성격, 마음의 자원은 무엇인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국인들은 무디기는 중국인에 못지않고 변덕스럽기는 일본인들 못지않다.……한때 이 땅에서 가장 강성했던 불교는 이제 흔적이나 기억만 남았다. 유교는 깊은 의미에서 종교가 아니라 도덕 체계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인은 종교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종교를 기다리고 있다.(371) 2009. 5. 28.
알렌, “한국과 한국 사람들” 알렌의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라는, 선교사 잡지에 실린 짧은 글 중에서. Allen, H. N., "Korea and Its People," 16 (Sep., 1891): 418-22.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종교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현재 왕조가 시작되기 이전에 불교가 [이 나라를] 지배했다. 그러나 498년 동안 불교는 너무 인기를 상실해서 [이제는] 승려가 도성 안에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승려들은 산중에 사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 도덕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유교주의자들이며, 조상들에 대한 경건한 숭배가 부분적으로 종교로 기능한다. 그들은 고통 받는 시기에 “하늘에 기도”를 드리며 실로 매우 경건한 성향을 갖고 있.. 2009. 5. 28.
기포드, "Everyday Life in Korea"에서 종교 부분 Gifford, Daniel L.,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1898). 1898년에 간행한 기포드의 단행본이다.(기포드는 1900년에 사망한다.) 책의 부제는 “연구와 이야기 모음”(A Collection of Studies and Stories)인데 말 그대로 전에 발표한 논문들과 겪고 들은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한국종교에 대한 것은 6장과 8장이다. 6장은 ‘연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1892년에 발표한 논문 "Ancestral Worship as Practiced in Korea"이 제목 그대로 실려 있다. 얼마나 수정이 있었는지는 확인해보아야 하겠지만 대부분 그대로 실려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8장 “귀신의 공포”(Fear of Demons)는 ‘이.. 2009. 5. 21.
기포드의 종교 서술(1892) Gifford, Daniel L., "Ancestral Worship as Practiced in Korea," Korean Repository 1 (1892): 169-76.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기포드의 한국 종교 서술. 초기의 서술이니만큼 여러 용어들이 정리되지 못하고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종교"가 있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다른 선교사나 관찰자들은 '종교 없음'을 주로 이야기했기 때문. 논문에서 앞의 두 쪽 주요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종교 신앙은 유교, 불교, 도교의 혼합 양상(blending)을 보여준다. 우리가 알기로 유교의 가르침은 이 나라 교육의 기초를 이룬다. 이 땅의 모든 관리들은 마을 어딘가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두고.. 2009. 5. 21.
헐버트, 종교와 미신(Religion and Superstition) 헐버트, 의 30장을 번역한 것. 원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는 로 번역되었다. 30장에 대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번역하게 되었다. 제30장 종교와 미신(Religion and Superstition) 한국의 종교들에 관해 논의하기에 앞서서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서양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종교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에게는 어느 지점에서 종교가 끝나고 어느 지점에서 단순한 미신이 시작되는지 분간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종교라는 단어를 가장 넓은 의미로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즉 종교는 인간이 초인간적superhuman, 인간이하의infrahuman, 더 넓게 말한다면 인.. 2009. 4. 22.
1920년의 쪽복음들 윌리암 뉴튼 블레어, 김승태 옮김, (두란노, 1995)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자료. 선교사 블레어가 지어 1920년 6월 7일에 발행한 진흥 전도지(1-10호). 2009. 2. 13.
기독신보 1922년 1,2월 사설들 1922년 1월 4일(제7권 제1호 / 제317호) 제목 : 미상(신년을 당하여 묵상할 문제?) 1. 현재를 위하여 생활하라. 현재라는 금일에 가급적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며, 가능한 수단을 다하여 타인에게 봉사할지라. 2. 우리들은 시간마다 절대로 천부를 신뢰할 것이라.-어느 시간에 우리의 영혼을 소환하든지 우리무리에게 부여한 물질상 향락 뿐 아니라 생명 자체까지 잃을지라. 3. 천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생활하라. 1922년 1월 11일(제7권 제2호 / 제318호) 제목 : 敎會新聞에 對하야-그 目的은 무엇이랴 독자 중에 본보 편집상 주의의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많은 곤란과 제한이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동시에 교회신문의 진정한 목적을 유심치 아니하는 경향이 있음으로 이에 몇 마디 제씨에게 .. 2009. 2. 11.
기독신보 1917년 6월 사설들 1917년 6월 6일(제2권 제23호/79호) 제목: 교회의 집회에 대하야 모이기를 힘쓰는데서 단체의 힘이 나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은 모든 순서와 형식에 거리끼는 것을 다 제해 놓고 오직 신령상 인도대로 온전히 따라가야 한다.” 즉 형식보다는 경건한 생각과 성령의 발달에 힘써야 한다. 요즘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쉬려고, 좋은 설교 들으려고, 찬양 들으려고, 누가 혼나나 보려고, 딴 데 가는 길에 들리러 오는 등 하느님과의 교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다. 요즘 집회 참여를 중요시 하는 곳에서는 정한 날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에도 나와 기도회를 한다. 이런 습관이 형성된 곳은 뿌리 깊은 교회이지만, 가령 주일에는 300명이.. 2009. 2. 11.
전도문서 두 개 #1. 5세기 경 인간의 자유 의지와 원죄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논쟁 이후, 기독교의 원죄론이 확립되었다. 죄가 육체적 유전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죄를 벗어날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이단으로 판정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따라, 인간의 원죄는 섹스를 통해 전승되는 필연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옥의 군중’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는 신의 은총 없이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견해가 정통적인 교리로 자리잡았다. 기독교가 전도될 때, 죄에 관한 이론은 전도자와 피전도인의 대화의 첫머리를 장식하였다. 세계를 죄로 채색하는 것은 기독교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바탕이다. 한국.. 2009. 2. 8.
만남 이야기들 에는 한국인들과 기독교의 만남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감사할 노릇. 다만 이 책에서 견지하고 있는 신학적 관점에는 이론이 있다. 전통의 상징체계와 기독교 상징체계의 상호교섭을 일종의 난맥상으로 보고 이런 것을 고쳐 “기독교 정통”을 잘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적인 태도가 은연중 드러난다. 관점의 차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아쉽다. 새로운 이론적 성찰의 조명을 받고, 기독교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언어를 구성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좋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매달리고 있는 게 그런 작업인데, 나 역시 아직 그럴듯한 언어를 제공하지 못하는 마당에 남 작업에 아쉽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처지는 못된다. 이제 다 .. 2009. 2. 3.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 이번에 두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게일의 경우에는 전에 조사한 것을 참고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 구성된 내용이다. 언더우드는 잘 정돈된 연구자라고는 하기 힘들다. 독창적이지 못한 부류의 연구자는 그가 무엇을 읽고 들었는가에 따라서 주장이 확확 바뀌는데, 그런 연구자를 통해 당대의 담론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더 좋은 점이 있다. 언더우드의 관점은 “개신교적인 편견”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데, 그의 서술에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편견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그 편견들 중에는 언더우드에 의해 형성된 것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번에 언더우드의 를 읽으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신학적인 종교 이론', 특히 자기의 하느님 관념에 꿰.. 2009. 1. 20.
트롤로프의 한국 불교 이해 우리나라 성공회 주교를 역임했던 트롤로프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선교사였다. 그의 다음 글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글이지만 이해의 깊이는 충분히 느껴진다. 1914년 글으로, 그전의 한국 불교에 대한 서양인의 논의에 비하면 한국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글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클락(Clark)이 평가했듯이(, 12), 한동안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한 글로 남아있게 된다. M. N. Trollope,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Buddhism in Corea," 8 (1917): 1-40. (첨부 파일: Trollope_Intoro_to_Buddhism_.pdf)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서양인의 이해의 잘못을 잡아주는 글의 도입부나, 삼귀.. 2009. 1. 20.
한국 교회의 성서 해석의 흐름(1930년대) 이 글은 유동식의 [한국신학의 광맥](다산글방, 2000)의 일부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한국의 성서 해석의 흐름이 신학사와 어떻게 맞물리며 전개되었는지를, 유동식 선생은 대가답게 시원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발표문은 그 책의 내용을 세 명의 인물과 여섯 개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약간의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보수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라고 명명된 흐름이 (분량으로 인해) 동등한 세력을 지닌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산술적 균형이 아니라 (아마 유선생님이 바랬을) 기하학적 배분일 뿐이다. 물론 한국의 신학 현실은 압도적으로 보수적이며, 그렇게 보수적으로 되는 과정은 밑에 나열해 놓은 사건들의 경과에서 잘 나타난다. 1930년대는 한국 개신교회가 급격히 보수화된 시점.. 2009. 1. 13.
한문 성서 번역 때 신 명칭 논쟁에 관한 자료 개신교 선교사들은 성서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God”을 무엇으로 옮길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1847년 상하이에서 선교사 메드허스트의 집에서 모인 중국어 성서 개정 대표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기에는 선교사 출신 학자 레게(James Legge)도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 대해서는 자료를 더 찾아보아야 하겠으나 일단은 리진호 선생님의 책에서 읽은 것을 옮겨놓도록 하겠다. 먼저 침례회 선교사들은 회의 이전부터 “밥티즘”을 원어로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채용이 안되자 위원회를 탈퇴한 것이다. 다음에 God의 번역에 있어 처음부터 다른 의견이 속출하여 위원회가 둘로 분리되었다. 모리슨은 “神”이라고 번역하였고 귀츨라프와 메드허스트도 처음에는 그렇게 사용하였다. 중국에 온 다른 선교사들도.. 2009.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