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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

by 방가房家 2009. 1. 20.

이번에 두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게일의 경우에는 전에 조사한 것을 참고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 구성된 내용이다. 언더우드는 잘 정돈된 연구자라고는 하기 힘들다. 독창적이지 못한 부류의 연구자는 그가 무엇을 읽고 들었는가에 따라서 주장이 확확 바뀌는데, 그런 연구자를 통해 당대의 담론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더 좋은 점이 있다. 언더우드의 관점은 “개신교적인 편견”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데, 그의 서술에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편견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그 편견들 중에는 언더우드에 의해 형성된 것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번에 언더우드의 <<The Religions of Eastern Asia>>를 읽으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신학적인 종교 이론', 특히 자기의 하느님 관념에 꿰맞춘 한국 샤머니즘 구성을 보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된다.

(첨부된 파일:
게일의 <<Korean Sketch>>, <<Korea in Transition>>의 종교 관련부분: a0100509_496ab5e5db288.pdf
언더우드의 <<The Call of Korea>>에서 종교에 관한 부분: a0100509_496ab5e6c3a14.pdf)



세계 각지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은 “알지 못하는 신”(the unknown God, 사도행전 17:23), 즉 이교 문화에 숨어있는 기독교 유일신의 흔적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찾아낸 것은 ‘하느님’이었다. 언더우드와 게일은 한국에 고유한 ‘하느님’ 신앙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선교사들이다.

언더우드의 한국 종교 연구
1-1. 종교에 대한 관념
한국 종교에 대한 언더우드의 입장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으며 노골적인 선교 위주의 시각을 보여준다. 1892년 선교 보고에서 그는 종교의 부재 때문에 기독교 선교가 시급히 요청된다고 주장한다.1) “한국인들은 옛 종교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415) 유교, 불교, 귀신 신앙 등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손길이 길을 닦아 놓은 한국은, 종교가 없는 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415)
1908년 출판된 <<한국의 부름>>에서도 비슷한 입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2) “한국인들은 종교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진다. 분명히 그들은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 사실 오래된 형태의 종교들은 그들에게 거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77) 유교는 종교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며 그보다는 따라야 할 윤리 체계로 서술된다.(78) 유교에서 조상 숭배가 ‘유일한 종교적 요소’로서 주목받고 기독교 신앙과의 충돌을 지적하지만(81, 제사에 대한 반대 입장이 명시된다), 그럼에도 그것은 공허한 의례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신앙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종교적 본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81) 유교에 대한 ‘개신교적 상식’이 언더우드에 의해 제시됨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복음 전파에 의해 기존 전통들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사람들의 이성적 힘에 의해 인간이 만든 신앙들의 공허함과 그릇됨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 본능에 의해 진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옛 [종교] 체계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로 인해 그들에게 종교적 감정이 부족하다고 믿었지만, 선교 작업의 결과로 한국인이 탁월하게 종교적인 민족이라는 점이 증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한다.(98-99)
(생뚱맞은 이 그림은 언더우드표 타자기. 호레이스 언더우드의 형인 존 언더우드가 설립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상용화에 성공한 최초의 타자기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사전의 항목을 참고. 이 회사에서 번 돈은 한국의 선교자금으로도 유입되었다고 알고 있다.)

1-2. 언더우드의 샤머니즘
1892년과 93년 글에서 언더우드는 한국의 기층 신앙을 “귀신숭배(Demonism), 혹은 도교”라고 부른다.3) 그가 샤머니즘을 언급한 것은 1908년 책에서이다. “한국의 신앙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샤머니즘의 일종이다.”4) 그것은 유교인이나 불교인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당시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85)이다. 샤머니즘은 미신의 총체로 묘사된다. 마을에 화재가 났을 때 불귀신에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선교사들이 용감하게 불을 끈 일화를 소개하면서(85-86), 이 미신이 정복의 대상임을 암시한다. 샤머니즘에 존재하는 귀신들이 예수가 쫓는 귀신임을 암시하는 이야기도 소개된다.(90) “샤머니즘은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맞닥뜨려야 할 가장 완고한 적이다.”(90)
언더우드의 샤머니즘은 신학적 목적에 의해서 재창조된 것이다. 이는 1908년 뉴욕 대학에서 강연하고 1910년 출판한 <<동아시아의 종교들>>에서 잘 볼 수 있다.5) 이 책은 한중일 3국의 종교를 비교하는 시도로서 가치가 있다.6) 전반부에서 동아시아 세 나라의 민족 종교(ethnic religion)로서 중국의 도교, 일본의 신도, 한국의 샤머니즘을 각각 서술하고, 후반부에서 유교와 불교를 서술한 후 신론에 대한 비교 고찰로 끝맺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7)
한국의 샤머니즘 서술(3장)은 유일신의 자취를 찾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하느님 신앙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샤머니즘이다.8) 예를 들어 언더우드는 샤머니즘의 주요 기념물(monument) 셋을 열거하는데(100-7, ①천제 제단②고인돌③미륵), 이중 첫째가 산 위의 제단으로, 마니산 참성단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행해졌다고 생각되는 단군의 천제는 “아브라함 시절”의 번제를 떠올리게 한다.(101) 여기에 언더우드는 고대 자료와 단군 신화를 제시하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여 “순수한 원시 유일신론이 존재했을 강력한 가능성”(106)이 있다고 추론한다. 또한 언더우드는 샤머니즘의 신관 다섯을 열거하는데,9) 그중 처음으로 제시되는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주재하는 아버지인데, 창조자로서의 관념은 일반적 신앙에서는 사라졌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헐버트의 견해가 인용된다. 그 다음으로 논의되는 것은 예배의 방식인데, 이 역시 하늘에 대한 숭배가 중심이 된다. 하늘에 대한 순수한 예배 방식이 존재했으며, 여기에는 무당과 판수가 개입하지 못한다고 주장된다.(119) 마지막으로 그는 불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 대한 형상이 부재함을 지적한다. “한국의 하느님 개념에는 유대인의 여호와 관념보다도 신인동형적 경향이 덜하다.”(132) 이처럼 ‘순수한 유일신론’이 존재했다는 것은 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예비되었음을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1-3. 언더우드의 종교퇴화론
언더우드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샤머니즘을 서술할 때 사용한 개념은 단일신론(henotheism)이다. 헐버트가 한국인을 유일신론자(monotheist)라고 했던 것에서 좀 더 정교화시켜서, 언더우드는 여러 신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우월한 신이 주재하는 상황(즉, 유일신론과 다신론의 공존)을 묘사하기 위하여 막스 뮐러가 고안한 단어 단일신론을 사용하였다. 그는 한국 종교사를 유일신론으로부터의 퇴화의 과정으로 서술한다.

우리는 한국이 원래 순수한 유일신론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았다. 후대에 이것이 다신론을 동반한 자연 종교로 진행되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일종의 단일신론의 형태로 잔존하여 모든 순수 다신론에 공통된 타락으로부터 신격 개념을 대체로 보존하고 있지만 말이다.(131)

동아시아 신 관념을 성서의 신론에 비교하는 마지막 장에서 언더우드는 종교 이론을 전개한다. 그는 당시의 종교 진화론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231-32), 그와 반대로 종교가 고등한 형태로부터의 타락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고대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하고 지고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233) 창조주만 섬기는 단순성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대에 영웅, 조상, 자연의 힘 때문에 범신론, 다신론, 주물 숭배 등으로 귀결된다. “어리석은 신화와 전설의 두터운 구름에 가려” 타락하는 미신의 궤도가 이어진다.(234) 결론적으로, “종교는 문명의 창조물이나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동물에 의해 작업된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종교는 영감에 관한 사안이다. 즉 ‘너희들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다.’”(236)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해서 제안된 언더우드의 반진화론적 종교 이론이 막스 뮐러와는 어떤 영향 관계가 있었는지, 후의 슈미트의 작업과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살펴볼 과제로 남는다.


게일의 한국 종교 연구
2-1. 종교에 대한 언급
게일은 일찍부터 한국 종교를 인식하였다.10) <<코리안 스케치>>에서 그는 “일부 부주의한 관찰자들은 한국에 종교 체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종교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일상의 세부 속에 미묘하게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고 하였다.11) 이 입장은 10년 후의 저서에서 더 정교하게 논의된다.12) 얼핏 보면 한국에는 종교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종교를 인간 내부의 영적인 것으로부터 인간 위에, 그리고 인간을 넘어서는 다른 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인 역시 종교적이다. 그들은 경전을 갖고 있고,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느님, 영, 하늘나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67) 심지어 그가 한국인을 알면 알수록, 한국인들이 본국의 평균적인 기독교인들보다도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69)
그는 한국 종교를 복합적인 것으로 기술한다. “한국의 종교는 조상 숭배에 불교, 도교, 영혼 숭배, 점, 주술, 풍수, 점성술, 주물 숭배가 뒤섞여 있는 특이한 종교이다.”(68) 그 중에서도 조상 숭배가 핵심이 되는데, 그는 조상 숭배가 샤머니즘과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편 <고린도전서>를 이용하여 귀신 신앙을 서술한 다음 부분도 특징적이다. (초기의 설익은 관점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에 두 종교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나는 문명화되고 세련된 것으로, 조상 숭배라고 생각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이교도적인, 주물 숭배의 가장 저급한 형태라고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들 자신은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것을 귀신(kwisin) 숭배라고 부르며, 이 귀신은 중국과 한국 신약성서에서 ‘귀신’(demon)의 번역어이다. 한국인들 자신은 그들의 숭배가 모두 하나의 기원을 가진 것이고, 그것은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딱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게일, <<Korean Sketches>>, 217-18)


2-2. 한국에서 발견한 성서적 배경
게일은 한국 문화에 대하여 가장 깊이 이해한 선교사로 평가받는다.13)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성서 내용과 결부시키곤 하였다. <<전환기의 한국>>에서 그는 귀신에 대한 신앙을 서술하면서 그 내용을 성서에 등장하는 귀신에 바로 연결시킨다. 선교사들은 책에서나 보던 귀신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계기에서 한국의 종교 서술은 귀신 쫓는 예수 선교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국의 문화에서 성경 텍스트를 읽어내는 게일의 성서적 오리엔탈리즘은 5장 “특별한 은총”에서 두드러진다. “그들은 관습과 의식(儀式)의 형태는 성경을 이해하도록 되어 있다. 그들이 숨쉬고 있는 공기에는 그리스도 시대의 향기가 주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세계의 움직임은 고대 팔레스타인의 방식을 따른다. 그들의 내면적 사고는 성경에 적혀 있는 그대로이다. 그들의 미신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멸망기에 가졌던 바로 그것과 같다. 정신적인 힘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유대 주변의 국가가 이해했던 것과 꼭 같다.”(119) 이러한 인식은 나중에 "The Korea's Preparation for the Bible"에 정리되어 제시된다. 이 글에서 게일은 한국이 성서를 위해 예비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유 다섯을 나열한다. 첫째, 하나님이라는 신 명칭, 둘째, 하느님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 셋째, 한국인들의 삶의 조건, 넷째, 한국인들의 문헌에 대한 존중, 다섯째, 한글을 갖고 있음.14) 그 중 삶의 조건에 대해 게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용을 본 적이 있는가? 여기에는 있다.15) 나쁜 왕이 일어나 백성을 억압하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사람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귀신이 요즘 있는가? 여기엔 있다. 사람들이 귀신을 쫓으려 하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한다. 사람들이 안녕하냐고 인사하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새해가 봄에 시작되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첫째 달의 15일이 잊혀지지 않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제사(sacrifice)를 지내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멋진 허리띠를 두른 긴 옷을 입는가? 여기서는 그렇다. 신성한 땅을 밟을 때 신발을 벗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한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나가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한다. 침상을 들고서 걸어가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한다. 곡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가? 여기서는 그렇게 한다.16)

2-3. 하나님
게일이 한국 종교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영향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고유한 하느님 신앙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기에 기발한 언어적인 착상을 덧붙인다. 하늘을 의미하는 ‘하님’에다가 ‘하나’를 연결시킨 것이다. ‘하님’이 크다와 하나의 의미를 지닌 ‘한’의 의미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17) 이것은 'God'의 번역어로서 ‘하님’을 채택하기 위한 논의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언어유희(pun)적 착상을 통해서 ‘하님’이 번역어가 되었을 때 유일신론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는 추가적인 이득을 생각한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70년대 공동성경 번역으로 인해 하느님/하나님 명칭을 놓고 개신교계가 격론을 벌였을 때, 게일의 독자적인 의견은 개신교계의 정론(正論)으로 자리잡았고 오늘날까지 다수의 입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일은 한국인의 하나님 관념을 찾는 작업을 계속한다. "The Korean's View of God"에서는 고대에서부터 한국사의 사료를 망라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존재했던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하였다.18)

이스라엘인들이 엘(El), 엘로힘(Elohim), 엘샤다이(El-Shadday), 여호와(Jehovah) 등과 같이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과 관계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쓴 것처럼, 한국인들도 다양한 이름을 써왔지만 그것들은 모두 영적이고,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같은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비록 그는 보이지는 않지만, 지상의 만사를 주관하는 자이다. 그 이름들에는 하나님(Hananim), 위대한 유일자인 천(天), 최고의 통치자인 상제(上帝), 모든 것을 보는 하나님인 신명(神明), 주인인 태주재(Tai-chu-jai), 신성한 왕인 천군(天君), 천상의 조화주인 천공(天工), 완벽함의 군주인 옥황(玉皇), 창조자인 조화옹(造化翁), 신령을 뜻하는 신(神)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Horace G. Underwood, "Romanism on the Foreign Mission Field," Reports of the Fifth General Council of the Alliance of the Reformed Churches Holding the Presbyterian System (Toronto: 1892): 409-415. 참고. 이 글 중에서 종교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다음 해 선교 잡지에 기고한 글에 거의 그대로 실렸다. Horace G. Underwood, "The 'Today' from Korea,"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Nov., 1893): 813-818. 위 글들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 책에서 참조할 수 있다. 이만열/옥성득 편역, <<언더우드 자료집 I, II>> (연세대학교출판부, 2005, 2006). 1893년 글에서는 “한국은 종교가 없는 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한편 개신교 선교의 시급함의 주된 이유는 천주교가 한국을 선점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개신 교회가 자신의 의무를 각성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가톨릭 국가가 될 것이다. …… 로마 가톨릭이 대신 이교도 국가를 개종시킬 것이다. 이교는 암흑(darkness)이지만, 로마 가톨릭은 눈멀게 하는 것(blindness)이다.”

2) Horace G. Underwood, The Call of Korea: Political-Social-Religious (New York: Fleming H. Revell, 1908).

3) Horace G. Underwood, "Romanism on the Foreign Mission Field"; Horace G. Underwood, "The 'Today' from Korea". ‘귀신숭배’는 로웰과 비숍의 용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4) Horace G. Underwood, The Call of Korea, 84.

5) Horace G. Underwood, The Religions of Eastern Asia (New York: Macmillan, 1910).

6) 언더우드가 비교 연구를 준비했다는 점은 다음 글에서 드러난다. Horace G. Underwood, "Shintoism (A Review)," The Korea Review 6-3 (March, 1906): 87-94. 애스턴(Aston)의 일본 신도에 관한 책에 관한 서평에서 언더우드는 일본의 신도와 한국의 샤머니즘을 같은 기원을 가진 것으로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이 고유 신앙을 신도(神道)라고 부른다는 점도 지적한다. 또한 애스턴이 일본어 발음으로만 용어를 표기해 비교하기 어렵게 해놓았다는 불평도 덧붙인다.

7) 이 강연에 대해, 언더우드가 일본과 중국 부분에서 애스턴, 레게(Legge), 가일즈(Giles)의 저서를 너무 많이 인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다가, 한국에 관한 부분에서 언더우드 자신의 경험담도 들어가기는 했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헐버트의 작업에 의존한 것이 많다는 점을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언더우드가 처음부터 ‘하님’ 개념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897년 5명으로 조직된 성서번역위원회 중에서 마지막까지(1901년) 하님 번역을 반대하고 천주(天主)를 주장하였다. 하님이 번역어로 결정된 이후에야 한국 종교사에서 하느님 찾기 작업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9) ①하느님 관념 ②삼신 ③오방신 ④자연 숭배에서 유래한 여러 신격들 ⑤정령숭배(animism)

10) 게일(1863-1937)의 약력을 간단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생. 1884년 토론토 대학 입학. 1886년 무디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고 선교를 결심. 1888년 토론토 대학 YMCA 선교사로 내한. 1889년 황해도 해주 지방, 경상도 지방 순회 전도. 이창직으로부터 한국에 대해 공부. 1892년 헤론의 미망인 해리엇(Harriet)과 결혼. 1897년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서 목사 안수 받음. 1900년 연동교회 에서 목회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설립, 초대회장으로 선출. 이 무렵 독립 협회 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지식인들(이상재, 홍재기, 김정식, 이원긍, 이승만, 우성준, 안국선)을 방문하였으며 출옥 후 연동교회에 입교하도록 하였다. 190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장으로 선출됨. 평양신학교 교수로 재직. 1908년 부인 사망. 1910년 루이스와 재혼. 1917년 한국음악연구회 조직, 찬송가 개편에 힘씀. 1925년 성경전서 번역. 그러나 성서공회에서 출판하지 못하고 윤치호의 후원으로 기독교창문사에서 출판.

11) James S. Gale, Korean Sketches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1898), 213.

12) James S. Gale, Korea in Transition (New York: Young People's Missionary Move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1909). 이 책의 각 장 마지막에는 생각할 문제와 더 읽을거리가 주어져 있다. 체제나 출판사로 보아 이 책은 한국 선교를 위한 핸드북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13) 게일이 토착화에 대해 가졌던 관심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쓴 독득한 글이 있다. (James S. Gale, “Christmas," Korea Mission Field 19-12 (1922): 259-261.) 이 글에서 게일은 아이들이 설레임을 갖고 기다렸으며, 민속놀이를 하며 즐겁게 놀았으며, 설빔을 입고 돌아다니던 한국의 명절. 그것이 ‘한국의 크리스마스’라고 말한다. 게일은 그러한 명절들이 이제 빛을 잃는 것을 게일은 안타까워하며, 서구에서 이식된 크리스마스는 아직 아이들에게 그러한 명절과 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맺는다: “현대 문명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움직임 앞에서 이러한 축제의 날들은 해가 가면서 점차 그늘 속으로 퇴락해 들어간다. 이제 그것은 단시일 내에 의미 없이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축제의 날이 다가올 것이고 그것은 아마 진짜 종교적인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동방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설날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261)

14) James S. Gale, "The Korea's Preparation for the Bible," Korea Mission Field 14-1 (1918): 86-88.

15) 게일은 용(龍)을 "dragon"으로 번역하고 괴물 신격(monster divinity)로 서술한 바 이다. 그 번역을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성 조지가 용을 죽였을지 몰라도, 동양에서는 아직 번창하고 있다.”고 하였다. Gale, Korea in Transition, 87.

16) Gale, "The Korea's Preparation for the Bible," 87. 한편 <<전환기의 조선>>에서 게일이 언급한 비슷한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인들이 (정말로 땅에 닿을 듯이) 절하는 모습. ‘평안히 가시오’라는 인사(‘샬롬’과 비슷). 신랑이 흰말을 타고 좋은 옷을 입은 채 행진하며, 옆의 사람들은 “길 비켜라, 신랑 나간다”라고 소리치는 모습. 희생의 원리가 살아있는 제사(신에 대한 제물의 필요, 완벽한 희생(제물), 벌이 따르는 죄악, 고백에 따른 용서. 예수의 대속의 기본 원리가 나타남). “그 분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라는 표현.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라는 표현. 유대에서처럼 실내에서는 결코 신을 신지 않고 문지방에서 벗는다는 점.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는 표현(조선인들에게는 이불이 침상이니까). “조선에서 삼베옷이란 아직 구약에서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사람들은 머리를 풀고 그 거친 자루 천으로 몸을 감싼 채 욥처럼 많아서 운다.” 실제로 볼 수 있는 우상인 장승들.

17) Gale, Korea in Transition, 78.

18) James S. Gale, "The Korean's View of God," Korea Mission Field 12-3 (1916): 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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