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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First Lady”

by 방가房家 2023. 5. 22.

(2005.3.3)

신세계 백화점에서 우리집으로 “First Lady”라는 잡지가 온다. 상당히 거슬린다.
고급 종이에 멋들어진 사진으로 가득찬 이 책에는 우리나라 돈 많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문화가 담겨있다. 뭐랄까, 고급문화라고 부르기엔 천박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노블’이라는 말을 붙여주면 어떨까 싶다.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소위 명품에 관한 것들이기에. 다만 그들이 언어를 쓰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허위의식에 대해서만 간단히 짚고 넘어간다. 이 책에서 내가 놀란 것은 영어에 대한 동경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영어에 대한 동경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겠으나, 이 책은 한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출판물에서 사용 가능한 최대치의 영어는 어느 정도인지를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 책의 기사 제목에서 한글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다. 아래의 목차에서 두 개의 한글 제목이 있지 않다면 한글 잡지인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이다.


잡지 제작진들의 이름 소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한글은 거추장스러운 언어일 뿐이다. 한글 폰트가 들어가면 디자인에 위해가 된다는 강박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 한글 병기를 뒤에 달아놓은 것을 친절하다고 봐줘야 하는 걸까?

본문은 어쩔 수 없이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내용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다음은 “in the FL”(FL은 First Lady의 약자이다)이라는 섹션의 “DIGITAL MEET A FASHION”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영어 제목은 비문이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더욱 패셔너블해진 디지털 문명
디지털 기기와 패션이 멋진 조우를 시도하고 있다. 스틸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기기의 차가움과 단순함을 스타일리시하게 변신시키는 이 패션 아이템은 트랜드의 새로운 기린아. 패션과 디지털이 잉태한 진화된 문명의 증거를 찾았다.

이런 식의 책들은 우리나라 전역에 널렸을 것이다. 백화점마다 이런 책을 찍어내는 것은 다음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롯데백화점은 3월 중순 서울 소공동 본점 옆에 ‘고품격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명품관 ‘에비뉴엘(AVENUL)’ 개점을 앞두고 지난 1월 25일 동명의 명품 잡지 창간호를 냈고, 갤러리아백화점은 매거진과 카탈로그를 합친 ‘메가로그(MEGALOG)’형식의 ‘THE GALLERIA’ 내놓았다. 현대백화점도 명품잡지 ‘스타일 H’를 선보였다. 일반 사외보보다 기사와 광고를 고급화한 형태의 이들 명품잡지는 독자를 VIP고객으로 한정해 우편 발송한다. 수입자동차와 호텔 등 일부 업종에서 발행하고 있는데, 백화점 업계에서는 국내 최초로 신세계가 ‘FIRST LADY’라는 제호로 2001년부터 발행해왔다.

어차피 이런 책들에 대해 씨부렁거리는 것은 끝도 없을테니 이쯤 하고, 옛날 노래나 하나 들어본다. 우리 문화가 미국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꽤 오래 되었다. 50년대 말 대중문화에서 미국과 영어에 대한 집착은 눈에 띈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샌프란시스코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고, 럭키 서울, 청춘 아베크, 해피 세레나데,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 등이 그 때의 경향을 반영한 가요들이다. 이런 노래들 중에 오늘 듣고 싶은 것은 박재란의 럭키 모닝이다.
럭키모닝 모닝모닝 럭키모닝
찬란한 햇빛 속에 그대와 나
빛나는 가슴에 꿈을 안고서
그대와 같이 부르는 스윗 멜로디
라라라 라라라 라라
단둘이 불러보는 럭키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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