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배움/발제

윌슨의 진화한 뒤르케임주의

by 방가房家 2023. 5. 17.

데이비드 윌슨, <<종교는 진화한다>>, 이철우 옮김 (아카넷, 2004).

이번 주에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봐야 하는데, 그 김에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부터 먼저 읽었다. 그런데 책을 다 볼 때쯤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 이 윌슨이 그 윌슨이 아니구나... 이 분야에서 내 무식함을 절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떠나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1. 진화론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종교이론은 어떻게 재설정될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솔직히 김이 빠진다. 그의 주장은 결국은 상식적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김빠짐이 이 책의 미덕과 연결된다.

 
2. 데이비드 윌슨은 매우 성실하게 종교 연구들을 검토하였다는 점에서 종교를 논하는 다른 진화생물학자들보다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검토의 수준도 높다. 그가 합리적 선택이론을 비판한 내용에 동의하며, 무엇보다도 낡은 이론으로 취급되는 뒤르케임 이론의 진가를 평가한 점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3. 종교는 인간 집단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은 사실 뒤르케임이 강조하려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이를 잘 알았고 그렇기에 뒤르케임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그의 이론은 뒤르케임주의를 계승한 진화생물학적 종교 연구이다. 뒤르케임은 “모든 종교는 주어진 인간 실존의 조건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한다고 하며 오랜 세월 지속된 종교라는 제도가 허위에 기반을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한 바 있다. 나를 심쿵하게 했던 이 발언은 윌슨에게도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그는 뒤르케임의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하고 심지어는 그의 진의는 “별다른 기능을 지니지 않은 듯한 종교의 여러 모습에서 감춰진 기능을 해석해내는 일”이라고 극찬한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4. 종교에 진화론의 통찰을 적용하는 일은 어떤 진화론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그의 작업은 초기 종교학의 진화론과는 같은 점이 별로 없고 도킨스의 작업과도 다르다. 그는 이 차이를 매우 깔끔하게 설명한다.(79) 종교를 “집단수준의 적응/개체수준의 적응/문화적 기생충으로서의 적응/적응에 방해물/문화적 진화의 부산물” 중 어느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론이 나온다. 진화론의 입장은 종교를 적응으로 보는 것이지만 도킨스는 문화적 기생충으로서의 적응을 이야기한 반면 윌슨은 집단수준의 적응으로 본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집단수준을 어떻게 세심하게 정의하느냐이다. 
 
5. 상식적인 결론일지는 모르나 생물학자의 시각에서 종교현상을 이해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유익하다. 꿀벌이나 구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종교 이야기로 확 넘어가는 이야기 방식이 재미있다. 
 
6. 종교 연구들을 다루는 방식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압권은 세계 종교 사례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자기 주장을 검증하는 대목이다. 그는 엘리아데가 편집한 종교백과사전(ER)을 무작위로 펼쳐서 나오는 종교를 조사하려고 한다! “나는 간편하게 눈을 가리 채 종교 체계라는 다트판에 다트를 던지기로 작정했다.”(257) 종교백과사전을 이런 식으로 쓰는 종교 연구가가 있다니. 그렇게 25개 항목을 무작위로 추출했는데 그 중 17번째 항목은 한국의 지눌知訥이다. 설마 진짜로 다트를 던지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접근은 참 귀엽다.


7. 종교의 세속적 효용을 말하기 위해 인용한 사례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한인교회이다.(이 연구는 나도 논문에서 인용한 적이 있다.) 교회가 한인공동체에 얼마나 정착에 도움을 주고 물질적 혜택을 주는지,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 공동체적 도움과 가치는 표면적 교리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는 한인교회 사례를 매우 마음에 들어해서 뒤의 중요한 대목에서 몇 번 더 언급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