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책 한 권의 내용 정리하고 평가한 발표를 했다. 알렉산더 헨(Alexander Henn)의 『고아에서 일어난 힌두교와 가톨릭의 만남: 종교, 식민주의, 근대성』(2014)이라는 책. 아래 첨부한 PPT파일이 발표 내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발표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에 쓴 글 중 관련된 내용을 그 아래 실었다.
Alexander Henn, <Hindu-Catholic Encounters in Goa: Religion, Colonialism, and Modernit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
이 책은 동서 종교가 만나는 혼합의 흥미로운 사례를 세밀하게 연구한 동시에, 혼합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주목할 만한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도 고아지역은 포르투갈 항해사 바스쿠 다 가마가 진출한 1510년부터 꽤 최근인 1961년까지 여러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의 지배력이 행사되던 지역이다. 그 영향력으로 인해 인도 내에서 가톨릭 교세가 강한 지역으로, 2011년 기준으로 힌두교 65%, 기독교 27%, 이슬람교 6%의 종교인구 분포를 보인다. 포르투갈의 지배와 예수회의 진출 이후 이 지역에서 강제 개종과 힌두교 사원과 신상 파괴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힌두교 세력이 회복되면서 오랜 공존의 역사를 갖게 된다. 이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고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혼합현상에 반영되어 있다. 이 지역 사원이나 길가 신당에는 힌두교 신과 가톨릭 성인들이 인접해 있거나 동일한 공간에 모셔져 있는 경우가 많다. 두 종교의 신자들이 같은 공간을 참배한다. 신을 깨우기 위해 이 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 의례 자가르는 가톨릭 선교를 위해 전용되었던 적이 있어 오늘날도 의례 연행 중간에 라틴어 기도문이 낭독된다. 그런데 삽입된 라틴어 기도문 안에는 성모와 성인의 이름 사이에 가네샤 신이 등장한다. 인도 전통의 마을신앙의 구조 안에 가톨릭 성인숭배가 편입된 양상도 흥미롭다. 고아의 수호성인 하비에르는 유골이라는 물질적 현존으로 인해 기적을 일으키고 지역을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고아 마푸사 지역의 성모는 지역 신화 속 힌두교 신의 계보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다섯 번째 딸로 등장한다.
이처럼 풍성한 혼합현상의 사례들로부터 어떠한 이론적 쟁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 헨의 저작에서 주목할 만한 주장으로 다음 두 가지 쟁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 고아 사례는 혼합현상을 종교적 정체성의 차원에서 평가하는 견해가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흔히 혼합현상 분석에서, 특히 신학적 혼합주의 담론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 종교적 정체성의 문제이다. 신학적 입장에서 혼합주의는 무원칙한 뒤섞임에 의해서 전통의 순수성을 상실한다는 이유에서 비판받는다. 얼핏 생각하기에 혼합현상은 두 전통의 섞임이고 그 결과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상태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과 힌두교의 혼합의 결과는 가톨릭이라고 할 수도 없고 힌두교라고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헨은 신자들이 종교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가 현지조사에서 만난 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힌두교인이나 기독교인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명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동의 축제에 참여하거나 성소에 참배할 때, 고아의 힌두교인이나 가톨릭교인은 각기 자신의 종교에 속한 실천 양태를 보인다. 힌두교인은 신에게 기름 램프와 꽃을 봉헌하는 반면에 가톨릭교인은 양초와 과일을 봉헌한다. Henn, Hindu-Catholic Encounters in Goa, 64.
그들은 각자 무리지어서 구별된 시간대에 참배하거나 축제 내에서도 구분된 구역에서 활동한다. 두 전통이 뒤섞여서 혼란스럽다는 것은 순전히 외부인의 시각이다.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정합적인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실천되는 행위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종교 전체성이 근대 이후에 형성된 종교 범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힌두교’라는 범주는 19세기 영국 지배 이후 형성되었다. 고아의 혼합현상은 근대에 힌두교와 가톨릭이라는 범주 구분이 확립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근대적 종교 정체성을 기준으로 혼합현상을 평가하는 것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앞서 『혼합주의/반혼합주의』의 출간 이후 혼합현상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강조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헨의 저작은 이에 대한 대안적 이론을 제공한다. 종교 갈등이 심한 인도 사회에서 고아의 혼합주의는 종교간 공존의 모범으로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의미가 그러하다고 해서 혼합현상이 다원주의적 관용의 선구라는 식의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것이 온당할까? 한 현상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과 정치적 의도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혼합현상이 근대적인 정치 아젠다로 모두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설명의 모델을 찾을 필요가 있다.
혼합현상은 교리적 논리나 정치적 의도에 의해 형성되기 보다는, 종교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현실성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헨은 혼합현상에서 의례적인 장, 종교적 기호를 구성하는 이미지와 물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힌두교 신상과 가톨릭 성인이 서 있는 자리의 공간적 인접, 전통적인 마을신이 있던 자리에 모셔진 성인의 유골, 동일한 의례 안에 존재하는 다른 요소들, 교통의 요지에 다른 신들이 함께 모셔질 수밖에 없는 사정 등. 혼합은 논리적 의도성 이전에 물질적인 공유에 의해, 공동의 의례적 장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구체적 물질성에 주목하는 것이 종교현상으로서의 혼합 해석의 관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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