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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Drudgery Divine" 1장

by 방가房家 2023. 5. 8.

조너선 스미스의 <<Drudgery Divine>> 1장에 대한 간단한 발제. 이 책은 스미스가 비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쓴 책이다. 그러기 위해 종교개혁기 이래 이루어진 호교론적인 비교 작업들을 열심히 뒤진다. 이 재미없는 자료들을 뒤지면서 그나마 지적으로 계발이 되는 부분을 찾아내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지만 고생한 것에 비해 별로 보람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이 호교론적인 자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에서 ‘아주 약간씩만’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스미스만 해야 할 일은 아닐 거다. 이능화나 최병헌 같은 이들이 쓴 비슷한 내용의 비슷하게 지루할 것 같은 자료들을 나도 볼 일이 분명 생길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기원들의 기원에 대하여

1-1. 제퍼슨과 애덤스는 18세기 이신론과 반삼위일체론적 사상의 분위기에서 형성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의 순수한 가르침이 후대의 사제들에 의해서 오염되었고, 특히 오염의 주범은 플라톤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를) 플라톤화시킨 후계자들은 그들이 예수의 교의에 합쳐 집어넣은 타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들은 원시 기독교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1-2. 종교에 대한 제퍼슨과 애덤스의 생각은 조셉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위의 그림)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저작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를 철학화하거나 플라톤화한 기독교인들은 원시 기독교의 순수성을 오염시킨 당대의 그리스 사상(오리엔트나 플라톤 유파의 사상)으로부터 종교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기독교 우상숭배(교황의 무리들)가 생겨났다.”

1-3. 프리스틀리의 기독교사 이해 형성에는 여러 개신교 호교론자들의 주장들이 원류가 된다. 그들의 주장 중에서 특징적인 면들을 살핀다. (1)다른 종교개혁가들이 기독교의 타락(로마 가톨릭)을 이교와 기독교간의 혼합현상의 결과로 본 반면에, 패티슨(Mark Pattison)은 기독교에 비기독교적 환경, 악마의 창조물들이 침투해 들어온 점진적 타락의 이야기, 기원의 추구 쪽으로 관심을 갖는다. 혼합현상 모델이 외부적 요인을 강조한 것이라면, 침투 모델은 사탄이 내부의 힘을 조정하여 기독교의 오류를 일으킨 것을 주목한다. (2) 오류의 원흉으로 성 유스티노 순교자를 지목한 비들(Joseph Biddle)과 쥐커(Daniel Zwicker)의 저작이 그 예가 된다. (3) 수버랭(N. Souverain)의 논의 중에는 기독교의 타락과 오류들, 이교도들과 ‘같음’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차이’를 놓치지 않는 시각이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유스티노의 로고스 이론은 기독교가 신종교가 아님을 보여야 한다는 당대 쟁점에 대한 반응으로 발전되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같은 단어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의미론적 차이’(semantic difference)에도 주목한다. 같은 삼위(three Hypostases)가 유파에 따라 다른 의미들로 사용됨을 지적하였다. (4)기독교의 ‘차용’의 문제에 있어서, 위의 사람들이 엘리트의 차용에 중점을 둔 반면에, 버질(Polydorus Vergil)의 책과 같은 초기 저작에서는 민중 계층의 ‘미신’에 경도되는 경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5)미들톤(Conyers Middleton)의 경우 백과사전적 서술이 아니라 민족지적 서술을 한 것이 특이하다. 그는 가톨릭 의식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이 향을 사용하는 것은 이교도 풍습과 같다고 주장한다. 가톨릭 성사는 “낡은 오리엔트 이교도의 언어적 변환(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4. 위의 이야기들을 두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념과 사상사에 초점을 둔 반플라톤/반삼위일체 논자들과 의례의 유사성에 집중한 반교황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기독교와 후기 고대 종교들을 비교한 것은, 맥락에 상관없이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가 일치하는 것에 근거하는 표면적 비교이다. 두 비교 대상 간의 동등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신교 논자들이 생각한 ‘진정한’ 기독교에 대비되는 ‘이교’와 ‘교황’이 타자로서 설정되었다.


2-1. 뒤퓌(Charles Francois Dupuis)는 19세기 초의 비교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1795년 출판된 <<모든 숭배들의 기원>>에서 그는 태양신인 보편적 유일신을 통해 세계 종교들을 설명한다. 하나의 같은 신화적 ‘유형’의 다른 현현들로 설명된다. 뒤퓌는 같음을 이야기할 때 신난다. “탐무즈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 밤은, 그리스도, 오시리스, 미트라. 바쿠스를 위해 애도하던 밤과도 같았다.” 반면에 차이에 대해서는 시큰둥하게 차용이나 파생으로 설명한다. 그의 결론은 기독교로 모아진다. “헤라클레스, 오시리스, 아보니스, 바쿠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있을 것이다.” “이야기들과 이름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 바쿠스와 오시리스에 속하지 않은 것은 없다.”
뒤퓌의 비교 역시 단어의 일치를 통해 찾은 표면적 비교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자료에 ‘깊이’를, ‘이야기’ 관념을 부가했다는 것. 그는 각 전통의 항목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전체 덩어리들을 비교했다. 기독교 신화와 다른 신비 종교 신화 간의 비교가 이루어졌다. 그의 비교의 준거는 ‘계절 유형’이었고, 태양신의 일반적 구조 아래 여러 전통들을 예들로 나타난다. 그의 비교는 수평적이었을 뿐 아니라 수직적이기도 했다.

2-2. 초기 기독교와 후기 고대 종교들을 비교하는 작업들의 시작 단계와 초기를 열람해 보았다. 우리는 지금껏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물음들의 기원을 찾아다녔는데, 이 탐사 작업은 우리를 항상 같은 지점으로 데려온다. 바로 개신교의 반가톨릭적 호교론이다. 단순한 고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지금의 연구에 있어서도 동일한 전제, 동일한 수사 기법, 동일한 자료들이 나타난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변환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개혁 시기 논자들이 교황에 부여했던 특성들이 이제는 후기 고대 종교들의 특성으로 전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현대 학자들이 초기 기독교 ‘성사’(특히 바울의)와 ‘신비 종교들’의 의례 간의 차이점으로 가장 흔히 드는 것은 신비 종교들은 사효성(事效性, ex opre operato)으로서의 의례 개념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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